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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김 Jan 12. 2024

따로 또 같이_관계

피해자와 가해자, 옳음과 그름, 조종 | 집단따돌림 극복기, 여덟

두번째 퇴원은 갑작스러웠다. 외부기관에서 진행한 보호입원 적격 심사에서 부적격을 받고 다음날 퇴원해도 된다고 공지를 받았다. 퇴원시켜 달라고 교수님을 조르던터라 내딸은 너무나 기뻐했다. 스스로를 혹은 남을 해할 위험이 없는 아이라, 보호입원과 맞지 않다고 했다.  


첫번째 입원 당시 같은 증상에 적격이라고 나왔으나, 두번째 입원은 부적격. 외부 심사는 진행하는 의사에 따라서 다른 의견이 나오기도 한다는 주치의 선생의 설명이었다. 그래도 두번째 입원으로 이미 20일을 보낸 뒤였다. 퇴원시켜 달라며 엄마와 같이 있고 싶어, 귀, 흉통, 두통을 호소하던 너가 퇴원하고 나와 함께 한 시간들 동안 아프다는 소리는 많이 줄었더라.


퇴원 후 마라탕을 먹으러 라공방에 갔다. 거기서 너는 물었지. 그애는 무슨 조치를 받게 되었냐고. 교내봉사, 그리고 부모와 특별 교육을 받기로 했다더라, 난 네게 물었어. 그애 어떻게 생각하냐고.


'그애가 불쌍해,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해서 그런거 같아'


어느새 너무 많은 것을 깨달은 듯한 내딸의 눈빛이 말로 표현하기 어렵게 슬펐다. 네 마음은 어느덧 이렇게 컸구나. 몸은 아직 받아들이지 못해 너를 힘들게 할지라도 말이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우리. 친구와 사귐 속에 상처를 입기도 하지만 그러는 가운데에 우리는 함께 잘 사는 법과 관계 맺기를 배운다. 너와 나처럼 나면서 생긴 관계, 필요를 위한 관계, 좋아서 만나는 관계까지, 받기만 하는 관계도 주기만 하는 관계도 오래 갈 수 없다. 서로 좋아야 오래 간다. 교수님은 네게 이로운 관계에 대해 가르쳐 주었다고 했다. 어떻게 해야 이롭게 관계맺기를 할 수 있을까?


십년, 아니 십오년 전 직장에서 알게 된 김대리와 김과장이 떠올랐다. 고졸 김대리와 일본 유학 김과장. 둘 다 성은 김. 이름마저 비슷해서 선영, 금희같은 흔한 이름이었다.


소처럼 일하던 김대리는 마음씨가 고왔다. 급한 일이 생기면 저녁 먹다가 사무실로 다시 돌아가곤 했다. 불평도 없이. 당시 그랬다. 석식 제공에 급하면 야근도 불사, 그래도 야근 결재를 득하고 택시비도 포함.


김대리랑은 퇴사하고도 오랜 기간 연락이 닿았다. 김대리 전 남친과 식사를 하고 전기방석 선물도 같이 받았던 기억이 있다. 점심 시간에 짬이 나면 여럿이 양재역 뒷산을 오른 추억도 있었다.


늘 모가 나 있던 김과장은, 끊임없이 김대리를 디스하느라 골몰했다. 더 높은 직급을 갖고 싶었던지 직장상사에게 메일 보낼 핑계거리를 찾아다녔다. 그리고 그 메일 내용에는 김대리를 공격하는 내용이 대부분.


나도 고래 싸움에 등터질까 싶어 마음 졸였던 적이 여러번이었고, 나를 조종하고 싶은 김과장의 의지는 여러번 확인했지만 나이 차도 났고 부서도 다른 나를 끝끝내 어떻게 하진 못했다.

출처: 핀터레스트, 나르시스트의 비방 캠페인. 5 Shades of Smeared: The Narcissist’s Smear Campaign


많은 시간이 흐른 후 건너서 듣기로는 김과장은 자궁에 근종이 생겨 수술을 했다. 20년 가까이 근속한 김대리는 부지런히 모은 월급으로 서울에 자기 명의 집도 만들고 동료가 소개해 준 다정하고 유능한 남편을 만나 판교에 둥지를 틀었다.


늦은 결혼이지만 자녀 둘을 별탈없이 출산했고 아마 지금도 너그러운 성품으로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을 거다. 오래 전 직장에서 만난 인연. 긴 시간이 지난 후 그들의 근황은 내게 교훈을 남겼다. 학력 직급이 뭣이 중하나. 증오는 커다란 흔적을 남긴다. 사랑은 끝끝내 향기를 남기고.


주변 사람을 도구로 여기고 남을 미워해서는 건강한 관계맺기를 할 수 없다. 남의 단점만 퍼나르는 사람과 누가 친구할까? 결국, 착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면 좋은 만남이 나날이 쌓여 간다.


내딸, 너는 어디에 마음이 향하고 있니. 받기만 해도 주기만 해도 오래갈 수 없더라. 서로 좋아야 오래 간다. 서로 좋은 관계는 아마도 네 담당 교수님이 가르쳐주었다던 서로 이로운 관계이겠다. 나만 혼자 힘쓰는 관계는 놓는게 답이다. 삶은 너무 짧다. 애쓰지 않아도 절로 마음이 이어지는 이들과 서로 이로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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