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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김 Jan 19. 2024

힘들면 힘들다 말하기_징징징

다시 입원 | 내딸 집단따돌림 극복기, 아홉

그 일도 갑작스러운 퇴원 때문이었다. 세 번째 입원은 그로부터 십일 후.


착한 아이를 알아본 산타클로스의 선물처럼 우리 가족은 다 같이 크리스마스를 지냈다. 외부 심사를 온 사람과 담당 주치의와 결을 달리하고, 외부 심사 기관의 중앙에서 내린 보호입원 부적격 판단 때문이었다. 알고 보니 연말 감사 시기가 겹쳐서 성인과 동일한 기준으로 내려진 비현실적 조치로 인한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고마웠다. 보고 싶은 딸과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 십일 간 먹고 하고 싶은 것 도장 깨기에 바빴다. 딱 한 번 길에서 그애를 마주쳤다. 그애는 매번 길에 있었다. 차로 움직였어야 했나 하는 생각에 후회가 되었다. 물론 딱 한번 마주쳤다고 그게 다였을까? 휴대폰 사용을 허락한 것도 후회막심이었다. 재발한 증세는 쉽게 그치지 않고 이튿날 앰뷸런스를 불러야 했다.


내딸의 세 번째 입원은 응급실에서 하루를 보낸 후 경과가 호전되지 않아 수순대로 안정병동에 들어갔다. 입원 수속 확정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담당 교수가 내건 입원 조건이 간병인을 붙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같이 입원하는 것은 마지막 옵션이었다.


연휴가 겹친 주말에 간병사는 부족했다. 그리고 당직의가 덧붙이기로 상주 보호자로 간병인이 안된다면 아버지가 함께 오는 게 치료에 좋겠다는 게 담당 교수가 전한 말이라 했다. 다음 날 간병인이 구해질 것 같다고 간병협회에서 준 소식에 의하면, 하룻밤 정도면 될 것이기에 그렇게 정했다. 그러나, 약속한 간병인은 앞서 돌보던 환자가 퇴원을 안 했다고 미루었고 연휴를 반납하고 들어오겠다고 나선 간병사가 없어서 아버지가 함께 했다.


다른 병동은 없앤 코로나 검사 의무제도가 안정병동과 중환자실에만 남았다. 간병사가 필요 없는 중환자실 빼고 굳이 외부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서 간병을 자처하는 분 찾기가 쉽겠나. 원내에 없어진 코로나 부스 덕분에 코로나 검사를 하기도 어렵고 간병사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였다.

구하거나, 간병사가 되거나 둘중 하나. 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How I Cope With Becoming My Mother's Caregiver


출근을 해야 하는 아버지를 뒤이어 내가 하룻밤을 보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두 달 전에 코로나에 걸려서 검사 면제를 받으신 간병사 분이 들어왔다. 하늘이 도왔구나 싶었더랬다.


당뇨가 있어서 인슐린을 하루 네 번 맞아야 한다는 분이셨다. 만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너무 힘드니 나가야겠다는 메시지였다. 생각보다 어렵다며, 심지어 초경이라 도통 비치지 않던 월경도 시작되고. 타이밍이 안 좋았다. 아빠와 엄마를 보았으니 또 엄마를 찾는 내딸. 간병사님은 휴대폰 사용을 막으니 가족들이 걱정하고 애타하여 지내기 생각보다 힘들다며......


한 가정을 살린다 생각하고 부탁드린다는 긴 설득 끝에 그분은 적응해 보겠다 하셔서 다시 앉혔다. 스테이션에 부탁해서 휴대전화 소리를 키워 전화를 꼭 받게 해 드리겠다. 내딸 말 한마디 한마디에 너무 마음 쓰지 마시라, 내일 또 간식 및 필요한 것을 넣으러 올 테니 잘 부탁드린다 했다. 그래도 사흘 후에 동생이 귀국을 하니 나가봐야 한다셨다. 내심 그때까지 내딸이 자신을 회복하고 간병사는 나가셔도 되겠다는 말이 스테이션에서 오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어쩌면 이 간병사님처럼 살았어야 하나 싶었다.


내딸도 나도 세지도 않은데 센 것처럼 몸집 부풀리기를 한 것 아닌가. 힘들면 힘들다 옆에 누구든 마구 소리 내서 표현하면 누구든 나서서 위로하고 너 잘하고 있다 조금만 힘내라 한단 말이다.


어디서 어떻게 배운 모양새인지, 힘들어도 꾹 참는 것을 버릇해 습관을 고치기가 쉽지 않다. 앞으로 같이 살면서 힘들 때 힘들다고 표현하는 법을 계속 찾아야 한다.


'다 지나갈 거야'라는 위로가, 위로가 되지 못했다.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지나간다. 내딸의 고통은 길었다. 그리고 터널 끝 빛은 보이지만 예상보다 긴 터널이다. 앞으로 퇴원을 해도 입원한 상황과 다르지 않게 돌보리라 다짐한다. 그래도 또 도돌이표를 하지 않길 바란다.


드라마 '환혼'에서 '서율'은 놀라면 길을 잃는다 그 말에 '무덕이'는 말한다. '너무 많은 곳을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니, 하나만 보라고.' 꼭 내게 하는 말 같다. 이젠 정말 딱 하나, 내딸만 봐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길을 잃기 마련이다.


내딸과 나는 피할 수 없는 것들과 싸우고 있다. 스마트폰, SNS 없는 세상도 없고, 사춘기 없이는 성인이 될 수 없는 데다 전염병은 계속 우리 곁을 맴돌고 있다. 또 어떤 이름의 무엇이 일상을 뒤흔들지 알 수 없다.  죽는다는 각오로 하루를 살아야 겨우 내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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