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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김 Dec 14. 2023

나 많이 아파_신체화

우리 모두 별반 다르지 않아. 내딸의 집단따돌림 상처 극복기, 셋

들어가는 글


딸이 집을 나갔다. 정신이 제 집을 나갔다. 이번은 두 번째. 보호 병동에서 한 달을 더 살아야 한다. 길었던 24일 입원 끝에 겨우 찾은 웃음이었고 공부하고 싶다던 딸이 다시 찾은 학교였다. 멀쩡히 돌아다니고 심지어 제 반으로 찾아와서 알짱거리는 가해자로 인해 이차 피해가 발생했다. 다시 들어간 보호 병동에서도 내딸은 퇴원하고 싶다를 외친다. 아직 몇 주는 더 지내야 할 텐데. 얼마나 갑갑할까. 나는 못난 엄마다. 그렇게 들어준 게 무슨 소용이었냐는 남편의 말이 가시가 되어 나를 찌른다. 나는 무엇을 물었던가. 네게 쏟았던 시간과 관심은 어디를 향했던가, 다시 후회하고 또 속죄해 보지만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 네가 다시 환한 웃음 짓던 상처 받은 적 없는 너로 돌아와 준다면 난 뭐든 할 것 같다......


나 역시 사는 게 너와 내가 다르지 않았다. 면접 앞두고 들락거리는 화장실이 누구나 겪는 가벼운 신체화 증상이란다. 한 회사에서 만난 후임자는 상세불명의 염증을 온몸에 달고 더라매우 각진 자세로 네, 알겠습니다! 곧잘 대답하곤 하였지만 실상 그 몸은 싫었나 보다. 내가 인수인계를 하기는 했지만 절대 내가 가르칠 때는 그런 모습은 아니다.


그 반듯한 자세로 인사를 하곤 했던 후임자는 질량보존의 법칙에 따라 그곳에 존재한 꼰대 한 분이 나를 원래 하던 일에서 내치기 위해 뽑은 후임자였다. 결국 내가 열심히 이직을 준비하게 만들었고, 그곳에서 가장 중요한 분위기 메이커이기도 했다. 이 분위기 메이커는 말 그대로 분위기 메이커부정적인 분위기를 메이킹했다. 늦은 저녁 혹은 퇴근 시간을 몇 분 남기지 않고 회의를 호출하기는 물론이고 결론도 없고 질서도 없지만 '답정너'식이므로 괜히 입을 떼고 자신 있게 주관을 밝히는 이는 거의 없다. 이 생산적이지 못한 회의에서 더 길고 긴 설교를 낳거나 그날의 욕받이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에서 가까운데다 어린 네가 독감에 걸렸을 때 재택근무를 허했다는 좋은 점도 있었다. 거길 떠나야만 했던 또 다른 이유는 무슨 공문, 고객 실사 보고서, 몇 줄에 불과한 업무 뭐가 되든 간에 글쓰기 교정에 진심이었던 그 꼰대가 한몫했다. 그분은, 6개월 남짓 필리핀 어학연수에 기대어 접속사 뒤에 생략한 주어를 못마땅해했다. 아, 난 영어 전공이란 말이다. 아니 영어를 좀 배웠다면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지적. 이렇든 못난 직장 상사의 무지함과 아집은 가끔 한계가 없다.

웃기지만 나는 거기를 탈출할 결심을 하고 열심히 운동하고 나를 돌보면서 네 동생, 둘째가 찾아왔다. 열 살 터울은 계획임신은 아니다. 그래서 말이지, 너만 신체화를 겪는 건 아니다. 내 딸아, 세상 모든 사람들이 크든 작든 이 신체화를 떠안고 살아간다.


이건 내가 나를 구하려고 쓰기 시작했다만 쓰다 보니 그 동기에 네 지분이 제일 큰 것을 보면 같이 쓰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네가 퇴원을 하면 그런 날이 곧 오리라 나는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라도 해서 너도 네 상처를 객관적으로 보기를 바란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너를 구하기 위해 애쓰는 네 아빠 말대로 너를 벌주는 너 자신을 용서하고 너 자신과 화해하고 또 그애를 용서하기를 우리는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래본다.


아무튼나는 그렇게 난생처음 만난 꼰대와 안녕을 하고, 40개월간 근무한 또다른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한 것도 말이지 이 생 두 번째로 만난 꼰대로부터 내가 나를 구하려고 한 모든 행동의 마지막 마침표였다. 나는 이 두 번째(혹은 마지막) 꼰대를 잘 다루었다고 착각했으며 적절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내 정신적 건강을 최우선으로 챙기며 열심히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즈음이었다. 


그 꼰대는 나를 사측의 경영악화를 등에 업고 조직에서 제거했다. 그 꼰대는 통쾌했겠다. 그 꼰대 역시 제 할 일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니 악감정은 없다지금같이 온통 경영악화로 사람을 자르는게 다반사인 세상에서 사람을 자르라는 지시를 따르는 것도 결국 일의 연장선이다. 마침 그 사람 눈앞에서 유독 내 이름이 한국 지사 소속 명단에서 반짝이는 것까지야 막을 수 없다.


내가 만난 꼰대들에 대해서 풀 썰은 길고도 길지만 내딸과 나눈 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나름 깨달은 교훈과 대처법을 나눌 수도 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네 마음의 상처가 이렇게까지  않았지 않았을까? 괜한 곱씹음과 후회를 또 버릇처럼 해본다. 근 7년의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이기에 하나하나 더 풀자면 길어질 수 밖에......


어제는 병동에서 주치의가 반가운 전화를 걸어왔다. 네 증세가 호전되어 이제 간병사는 곧 그만 와도 될 것이라고. 낯 모르는 분이지만 바로 달려온 친할머니처럼 세심히 챙겨주신 덕분에 네가 잘 웃으며 지냈고 빨리 회복하는 것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한다. 어린 딸과 낯선 이의 동행이 괜스레 걱정되기도 했고 여의치 않으면 내가 병동에 들어가서 네 동생은 밤마다 울어야 했을지도 모르는데, 다시 네게 찾아와 준 복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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