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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Sep 15. 2023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롤러코스터

Anthony Burgess의 소설 ‘시계태엽 오렌지’를 보면 ‘알렉스(Alex)라는 청년이 등장한다. 이 청년에게는 양심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불한당 그 자체로 묘사가 된다. 추구하는 것은 폭력과 파괴적인 성(SEX)뿐이다. 나는 때로는 이 선과 악 중에서 악의 만연한 세상에서 알렉스가 되길 꿈꿨다. 이유인 즉 슨 내가 11년 11개월간 일한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직업 특성상 서비스 마인드를 장착하고 속에 분노가 끓어올라도 입 밖으로는 친절함을 내야 했기에 그것은 나에게 고문과도 같은 것이었다. 나의 속사람은 분노에 치를 떨며 살려 달라고 소리를 치는데 나의 바깥사람은 아픈 나를 무던히도 억누르며 살아야 했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이해가 되시는가?

구체적으로 나의 감정을 분노로 만들었던 손님들은 주로 ‘노인들’이었다. 일률적으로 그들 모두를 악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유독 나에게 악을 자행했던 대부분은 노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막말과 욕 그리고 천대와 같은 것을 나에게 반복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어떤 노인들의 몸에서는 냄새가 나기도 했다. 정확히 소변냄새와 똥냄새였다. 추정하기로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뇌의 활동도 더디어지고 그만큼 씻는 작업을 게으르게 하는 것 같았다. 그런 외모의 사람들이 나를 감정의 쓰레기통 취급하는 것은 정말이지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한 번은 눈에 동공이 풀려있고 짐작하건대 뇌에서 도파민이 다량으로 분비되는 사람으로 보여지는 노인이 상담사와 전화통화를 하다가 용역업무로 허드렛일 전문인 나에게 금융 관련 업무를 도와달라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화를 말이다. 난 그 사람에게 아무 잘못을 하지 않았고 그 사람의 분노를 일으킬 만한 일도 하지 않았다. 일이 자기 원대로 풀리지 않자 감정의 쓰레기통이 필요했고 번듯해 보이는 정직원보다 용역업으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내가 그 쓰레기통에 적합했는데 나에게 분통을 터뜨린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죽음의 공포를 맛보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런 도구가 나에게는 없었고 분노를 억누르고 억누르며 그가 보고자 하는 업무를 무사히 도왔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지갑에서 늦둥이 딸 사진을 꺼내 보이며 스위스 유학 중이라고 자랑을 해댔다.

 

이런 일이 직장에서 반복되자 나는 스스로 알렉스가 되기를 꿈꿨다. 나에게 고통을 준 75세 이상의 노인 40명을 모아 눈을 수면안대로 가린 채 좋은 곳에 데려다준다며 에버랜드로 데려가서 나무로 된 롤러코스터를 태울 것이다. 그때까지 수면 안대는 벗을 수 없다. 안전바가 내려온 후에야 도망갈 수 없게 됐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수면 안대를 벗길 것이다. 노인들은 웅성이며 얼른 내려 달라고 소리치겠지... 하지만 소용없다. 나는 과감히 운전 보턴을 눌러 그들을 오래전부터 소멸되어 가던 아드레날린이라는 호르몬이 나오도록 도울 것이다. 75세 이상의 노인들에게 말이다. 공포와 겁에 질린 목소리가 열차가 올라감에 따라 들릴 것이고 혈기가 있는 노인들은 고함을 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마음은 변함이 없다. 이윽고 열차가 정점에 다다르고 그들의 웅성임이 최고조에 이를 때쯤 열차는 땅 아래로 곤두박질을 친다. 노인들의 연약하고 힘없는 비명소리들이 공중에 날린다. 그 소리는 어떠한 오페라의 아리아보다 날 기쁘고 설레게 할 것이다. 열차가 좌우로 방향을 틀며 원심력에 의해 노인들의 몸이 이곳저곳으로 쏠릴 적마다 노인들은 ‘끙! 끙!’하며 앓는 소리를 낼 것이다. 그 소리 또한 나의 오감을 기쁘게 자극한다. 열차의 끝의 다가왔으리라 노인들이 짐작을 해도 아직 멀었다. 두어 번 정도 더 열차는 땅을 향해 고꾸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열차와 노인들이 과감한 운명 교향곡이 끝나면 다소 느리게 원점을 열차는 들어온다. 오줌을 지린 노인들도 있고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얀 노인들도 있고 통곡을 하며 우는 노인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절을 한 노인도 있을 것이고 이런 상상을 하면 안 되지만 유명을 달리한 노인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음산한 기운이 가득한 열차가 원점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아마도 만연한 웃음을 띨 것이다.

 


 

“당신들이 나에게 준 고통이 이 정도란 말이야!”

 

라며 소리 칠 것이다. 내가 오늘 이런 황당하며 글 같지도 않은 글을 쓴 이유는 경우 없고 무례한 노인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싶어서이다. 나이가 들며 갈수록 자유로워지는 인격을 가진 노인이 있고 나이가 들며 좁고 옹졸해지며 생각이 딱딱하게 고착화되는 노인들이 있다.

후자의 노인들에게 여러 차례를 넘어 무한의 괴롭힘을 당했던 내가 소설 시계태엽 오렌지의 알렉스가 되길 꿈꾸며 글을 적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마지막으로 해본다. 롤러코스터가 노인들을 태우고 공중을 향해 치솟을 때 나는 배경음악을 틀 것이다. 그것은...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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