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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Jul 05. 2020

헌신발

난 중년이 된 것 같다.


 
언젠가부터 새 신발보다 헌 신발을 더 좋아하는 내가 되어가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어렸을 때는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신발을 시장으로 사러 갈 적에 느끼던 그 설렘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극한의 기쁨을 주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새 신발을 신은 며칠 동안은 행여나 먼지가 흙이 묻을까 하여 조심조심 길을 걸었던 기억과 혹시 뭐라도 묻으면 즉시로 닦아냈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나의 자아는 (적어도 어렸을 적의 나는) 만화의 주인공과 일심동체가 되어 신발을 신고 세상을 걸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아마도 점점 어른이 되어가던 때부터 새 신발보다는 헌 신발을 좋아하는 내가 되어버린 것을 보곤 한다. 깨끗하고 새로운 유행에 맞는 디자인은 아니지만 이미 나에게 길들여질 대로 길들여져 버린 신발과 나는 항상 어디든 함께 하며 내가 굳이 눈치를 보지 않아도 나를 이해해주고 함부로 대해도 되는 친구가 되어버렸다.
 
새것을 별로 기뻐하지 않게 된 나는 비단 신발뿐이 아니라 옷과 책 그리고 나의 모든 잡동사니에서도 그런 습성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미 내 손에 길들여져 버린 물건들을 보면 그 녀석들은 이미 내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내가 나를 버릴 수 없듯 난 그 녀석들을 버릴 수 없고 나와 너무 많이 친해져서 편안해진 그들을 놓아버릴 수가 없다.
 
아마 부끄러운 이야기 일 수도 있지만 더 나아가 사람마저도 편식하는 내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알아가도 서로 정보를 조금씩 내어주며 서로의 눈치를 보는 시간들이 이제는 너무 지쳐버린 나이가 되었는지도... 이미 내가 적응했고 나에게 적응해버린 사람들을 만나며 삶의 위안을 얻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하지만 이렇게 되어버린 나를 탓하지 않으려 한다. 적어도 새것을 개척해가는 열심은 잃어버렸는지 모르나 내 것들을 지키고 사랑하는 소박한 마음은 지켜내지 않았는가? 이미 새것을 갖으려 애쓰지 않아도 이미 있는 것들이 주는 위안에 만족을 얻으며 사는 지혜는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아닌가?
 
새것이 없어도 새사람이 없어도 아쉬워하지 않으려 한다. 이미 주위를 둘러보면 나를 즐겁게 해 줄 나의 일부는 이미 많으니까 말이다. 오늘도 난 내 방 안을 둘러보며 나를 찾고 이미 오래되어버린 나의 일부를 보며 위안을 얻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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