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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과의 만남 Oct 11. 2019

민법 제107조, "진의 아닌 의사표시"

제107조(진의 아닌 의사표시) ①의사표시는 표의자가 진의아님을 알고 한 것이라도 그 효력이 있다. 그러나 상대방이 표의자의 진의아님을 알았거나 이를 알 수 있었을 경우에는 무효로 한다.
②전항의 의사표시의 무효는 선의의 제삼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오늘부터는 의사표시에 관하여 공부합니다.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법률행위란 의사표시를 요소로 하는 법률요건입니다. 즉, '의사표시'란 법률행위의 중요한 요소인 겁니다. 우선 의사표시에 대하여 공부해 봅시다.


의사표시는 말 그대로 '의사'와 '표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의사'(意思)란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마음속의 생각을 말합니다. '표시'(表示)란 마음의 바깥으로 표출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어떠한 의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바깥으로 표현되지 아니하면 그건 의사표시라고 할 수 없습니다.

다만 법학에서 '의사표시'라고 할 때는 모든 종류의 생각이 바깥으로 표출된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일정한 법률효과를 발생시키려는 의사를 외부로 표출한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사실 법률효과와 무관한 생각의 표현(지나가면서 "아, 오늘 날씨 좋네"라고 하는 것)은 법학에서 신경 쓸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의사'와 '표시'가 불일치하는 사태가 자주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사례1. 회사원 철수는 상사와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철수는 지금 다니는 회사를 그만둘 생각이 전혀 없기는 하지만, 상사의 폭언에 반항하기 위해 시위(항의)의 뜻에서 일단 사직서를 제출하였습니다.
사례2. 영희는 자신의 친한 친구인 민희에게 자신의 부동산을 2억 원에 팔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민희는 부동산 매매에 따른 세금을 덜 내고 싶어 합니다. 영희는 이에 민희와 서로 짜고 실제로는 2억 원으로 거래하되 계약서에는 1억 원으로 기입하기로 합니다.
사례3. 돌석이는 자신이 가진 자동차를 친구 순철이에게 1,000만 원에 팔기로 했습니다. 둘은 계약서를 작성하였는데, 실수로 돌석이가 1,000만 원을 100만 원으로 잘못 썼습니다.


위의 사례는 모두 실제 당사자가 생각하는 '의사'와 외부에 드러난 '표시'가 다른 경우입니다. 하지만 상세히 뜯어보면 3개의 사례는 조금씩 다릅니다.

[사례1]의 경우는 철수의 의사("회사를 그만둘 생각은 없어.")와 표시("사직서를 제출")가 다른 상황인데, 문제는 상대방인 상사는 이 사정을 전혀 모른다는 것입니다.

[사례2]의 경우는 영희의 의사("2억 원에 부동산을 팔아야지.")와 표시("계약서에 따른 거래금액은 1억 원")가 다른 경우인데, 이 경우에는 상대방인 민희가 이 사정을 너무 잘 알고 심지어 서로 합의까지 한 상태입니다. 즉,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것입니다.

[사례3]의 경우는 돌석이의 의사("1,000만 원에 자동차를 팔아야지.")와 표시("계약서에 적힌 금액은 100만 원")가 다른 경우인데, 문제는 돌석이 본인도 자신이 이걸 잘못 썼다는 걸 모른다는 점입니다.


우리 민법은 이 3가지 사례를 유형별로 나누어 각각 제107조, 제108조, 제109조에서 규정하고 있습니다.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제107조를 봅시다.

제107조는 [사례1]의 철수가 한 의사표시와 같은 것을 '진의 아닌 의사표시'라고 부르는데, 줄여서 비진의표시라고도 합니다. 비진의표시란, 표의자가 자신의 표시 행위가 자신의 진짜 의도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의사표시입니다. 말과 마음이 다른 거지요.


다만, 주의할 것은 판례는 “진의 아닌 의사표시에 있어서의 ‘진의’란 특정한 내용의 의사표시를 하고자 하는 표의자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지 표의자가 진정으로 마음 속에서 바라는 사항을 뜻하는 것은 아니므로 표의자가 의사표시의 내용을 진정으로 마음 속에서 바라지는 아니하였다고 하더라도 당시의 상황에서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하여 그 의사표시를 하였을 경우에는 이를 내심의 효과의사가 결여된 진의 아닌 의사표시라고 할 수 없다”라고 합니다(대법원 2003. 4. 25. 선고 2002다11458 판결). 즉, 제107조에서 말하는 진의(의사)는 내심적 효과의사를 말하는 것으로, 표의자가 이상적이고 궁극적으로 바라고 있는 의도는 아니라는 겁니다. ‘진의’란, 특정한 내용의 의사표시를 하고자 하는 표의자의 생각인 것이죠(송덕수, 2022).


그렇다면 다시 [사례1]로 돌아와서, 철수의 비진의표시의 효력은 어떻게 될까요? 제107조 본문에 의하면 일단 말로 내뱉은 대로(또는 행위한대로) 효과가 발생합니다. 즉, 철수의 사직서는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게 맞는 것이, 속마음과 다른 의사표시라는 이유로 모조리 무효로 처리해 버리면 제3자 입장에서는 이 세상에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회사 사장의 입장에서는 어떤 사직서도 믿을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철수의 사직서가 수리되면 철수는 적법하게 회사를 그만두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의 예외가 있습니다. 바로 상대방이 이미 알고 있는 경우인데요,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은 사례를 봅시다.

사례4. 경수는 평범한 회사원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회사에서 큰 업무상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당황하는 그를 상사가 불러 이렇게 말합니다. "자네가 저지른 실수에 사장님이 엄청 화가 나셨어. 그러니까 자네가 죄송하다는 의미로 사직서를 제출하란 말이야. 어차피 수리되지는 않을 거니까, 안심해. 그래서 사장님 화가 풀리면, 그 사직서는 없애 버리면 되지." 경수는 상사의 말을 믿고 사직서를 제출합니다.


순진한 경수는 상사의 말을 믿고 회사를 그만둘 생각이 없지만 일단 사직서를 냅니다. 그런데 그 사직서가 수리되어 버립니다. 상사는 나몰라라 합니다. 경수는 이제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는 걸까요?


제107조제1항 단서는 '상대방이 표의자의 진의 아님(진실로 그것을 원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던 경우 또는 알 수 있었던 상황인 경우에는 그 의사표시는 무효로 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방금 사례에서 상사는 경수의 사직서가 진실한 마음에서 제출된 것이 아님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경수가 제출한 사직의 의사표시는 무효입니다. 물론 상사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를 (만약 소송으로 가는 경우 법정에서) 증명할 책임은 경수에게 있으므로 경수도 완전히 마음을 놓기는 어려운 상황이긴 합니다.


이와 같이 원칙적으로는 표시한 바에 따라 그 효력을 유효하다고 하면서, 예외적으로 상대방이 표의자의 진의 아님을 알았을 경우에는 무효로 하는 제1항의 규정에 대해서, 교과서에서는 “원칙적으로 표시주의 이론을 따르면서 예외적으로 의사주의 이론을 가미하는 절충주의의 입장”으로 평가하기도 합니다(김용덕, 2019).


제107조제1항 단서는 의사표시의 상대방이 있는 경우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방이 없는 의사표시의 경우에는 제1항 단서가 적용될 여지는 없습니다. 오직 제1항 본문만 적용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제107조 제2항을 보겠습니다. 제2항에서는, 제1항 단서에 따라 무효가 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사정을 모르는 선의의 제3자에게는 대항할 수 없다고 합니다.




오늘은 상당히 복잡한 법리 중 하나인 비진의표시에 대해 공부하였습니다. 간단한 사례로만 살펴보았는데, 실제로 비진의표시는 나중에 공부할 대리행위와 관련하여 문제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리인이 진의와 다른 의사표시를 하거나, 본인의 이익과 상충되는 행위는 하는 경우 등이 문제되는 거죠. 상세한 내용은 대리 파트에서 나중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상당히 복잡한 법리 중 하나인 비진의표시에 대해 공부하였습니다. 내일은 의사와 표시의 불일치, 그 유형 중 두번째인 허위표시에 대해 공부하겠습니다.


*참고문헌

김용덕, 「주석민법 총칙2(제5판)」, 한국사법행정학회, 2019, 625-626면(윤강열).

송덕수, 「신민법강의(제15판)」(전자책), 박영사, 2022, 113면.



19.10.11. 작성

22.11.25.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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