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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과의 만남 Dec 09. 2019

민법 제147조, "조건성취의 효과"

제147조(조건성취의 효과) ①정지조건있는 법률행위는 조건이 성취한 때로부터 그 효력이 생긴다. ②해제조건있는 법률행위는 조건이 성취한 때로부터 그 효력을 잃는다. ③당사자가 조건성취의 효력을 그 성취전에 소급하게 할 의사를 표시한 때에는 그 의사에 의한다.


자, 생소한 단어들이 다시 등장합니다. 조건, 정지조건, 해제조건... 그런데 정지조건이라는 말,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습니다. 해제조건도요.

꽤 옛날에 공부한 일이 되었지만, 제3조로 돌아가 볼까요?

제3조(권리능력의 존속기간) 사람은 생존한 동안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


기억나십니까? 우리는 권리능력에 대해 공부하면서, 특히 '태아'의 권리능력은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지 공부했었습니다. 그때 우리 학설을 간단히 언급하면서 태아의 법적 지위에 관하여 우리의 판례는 정지조건설을 취하고 있다고 한 바 있습니다. 당시에는 조건에 대하여 길게 설명하기 어려워서 간략하게만 언급하고 지나갔는데, 오늘은 한번 본격적으로 알아보도록 합시다.


조건(條件, condition)이란장래에 어떤 사실이 일어나는지에 따라 "법률행위의 효력"이 발생하거나 소멸하는 법률행위의 부관을 뜻합니다. 여기서 부관이란, 법률행위 효력의 발생이나 소멸을 제한하려고 법률행위에 부가한 약관을 말합니다(국가법령정보센터). 표현이 조금 낯설긴 한데 그냥 법률행위에 덧붙인 것이라고 일단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조건을 붙인다'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예를 들어 어린 자녀에게, "이번에 시험에서 90점을 넘기면, 장난감을 사주겠다"라고 한다면, '장난감을 사준다'라는 행위에 '시험에서 90점을 넘긴다'라는 조건을 붙인 셈이 되는 것입니다. '조건'의 의미 자체는 그다지 어렵지 않지요?


법률행위에서도 이처럼 조건을 붙일 수 있다는 겁니다. 이때의 조건은 법률행위의 효력을 발생시키거나, 소멸시키는 조건일 수 있습니다. 아래의 2가지 사례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사례1]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번 중간고사에서 평균 90점 이상의 점수를 받으면 컴퓨터를 사주겠다고 하였다.

[사례2] 철수는 영희로부터 토지 1천 제곱미터를 사들이면서, 만약 추후에 건축 허가를 받지 못하면 계약을 무효로 하기로 하였다.


사례1과 사례2는 똑같이 '조건'을 다루고 있지만 그 의미는 조금 다릅니다. 사례1의 경우, 컴퓨터를 사주겠다는 증여계약(법률행위)은 아들이 중간고사에서 90점을 넘기기 전까지는 효력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평균 90점 이상의 점수를 받게 되는 순간, 아버지는 아들에게 컴퓨터를 사주어야 할 의무가 발생하고, 아들은 채권자가 됩니다. 이처럼 조건의 성취로 비로소 법률행위의 효력이 발생하게 만드는 조건정지조건이라고 합니다. 


반면 사례2의 경우, 철수는 영희와 일단 토지 매매계약을 체결한 것이고, 철수는 계약을 체결한 때부터 그 계약은 별문제 없이 일단 유효합니다. 그러나 만약 철수가 주무관청으로부터 건축 허가를 받지 못한다면, 그 순간부터 철수와 영희 간의 토지 매매계약은 무효가 되어 버립니다. 이처럼 일단은 법률행위의 효력이 발생하되 조건의 성취로 인하여 그 법률행위의 효력을 소멸시키는 조건해제조건이라고 합니다.

정지조건과 해제조건의 차이


제147조제1항을 봅시다. 정지조건이 붙은 법률행위(사례1에서 '중간고사에서 평균 90점 이상을 획득할 것'이라는 조건이 붙은 증여계약)는 그 조건이 성취된 때('중간고사에서 실제로 평균 90점 이상을 획득한 순간')부터 효력이 발생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지조건의 개념에 부합하는 설명입니다.


제2항을 봅시다. 해제조건이 붙은 법률행위(사례2에서 '건축 허가를 못 받는 경우 무효'라는 조건이 붙은 토지 매매계약)는 그 조건이 성취된 때('실제로 건축 허가를 못 받게 된 순간')부터 그 효력을 잃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해제조건의 개념에 부합하는 설명입니다.


정지조건이든 해제조건이든 그 조건성취의 효력은 조건이 성취된 시점으로 규정되어 있으므로, 기본적으로 불소급이 원칙입니다.


그런데 제3항을 봅시다. 이는 불소급 원칙의 예외에 대한 것입니다. 정지조건과 해제조건은 각각 그 조건의 성취를 기준으로 '그 시점'부터 성취의 효력이 발생한다고 되어 있지만, 만약 당사자가 다르게 합의한 내용이 있으면 그에 따르면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조건이 성취되어도 그 성취 시점의 한참 전으로 소급하여 효력이 발생한다고 합의하였다면, 그 합의에 따르면 됩니다.


그러면 이제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민법 제3조로 돌아가 봅시다. 사람은 출생한 때부터 권리능력을 갖고, 사망으로 권리능력을 잃습니다. 다만, 태아의 경우 별도로 보호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우리 민법은 몇몇 조문에서 '~한 경우에는 태아는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라고 하여 권리능력을 인정해 주려는 보호장치를 두고 있다고 하였습니다(자세한 각각의 내용은 제3조 파트 복습). 여기서 '출생한 것으로 본다'의 의미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두고 학설이 대립하는데, 그것이 바로 정지조건설과 해제조건설의 다툼입니다.


정지조건설이란, 태아로 일단 있는 동안에는 권리능력을 인정해주지 않고, 다만 살아서 태어나게 되면(조건), 그 순간부터 문제의 사실이 발생한 시점으로 소급하여 권리능력을 인정해 주자는 견해입니다. 조건의 성취로 인하여 효력이 발생하게 된다는 점에서 '정지조건설'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해제조건설이란, 태아로 일단 있는 동안에도 권리능력을 인정하여 주고, 다만 사산하게 된다면(조건), 그 순간부터 문제의 시점으로 소급하여 권리능력을 잃게 된다는 견해입니다. 조건의 성취로 효력이 소멸하게 된다는 점에서 '해제조건설'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제 예전에 공부했던 부분이 좀 더 이해가 쉽게 가시나요?


참고로 오늘 공부한 조건의 경우, 어떠한 경우에도 막 붙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어느 정도 제한을 받게 됩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내게 1억 원을 준다면(조건), 당신과 결혼하겠다(법률행위)"라는 것은 인정될 수 없는 일입니다. 주로 혼인이나 이혼과 같은 신분상의 행위나 사회질서에 위반하는 조건은 붙일 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구체적인 타당성은 해당 사례를 꼼꼼히 살펴보아야 하겠지요.


오늘 정지조건과 해제조건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만, 말이 쉽지 현실에서는 어떤 것이 정지조건인지, 해제조건인지 헷갈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판례는 약혼할 때 받은 예물에 대해서, “약혼예물의 수수는 약혼의 성립을 증명하고 혼인이 성립한 경우 당사자 내지 양가의 정리를 두텁게 할 목적으로 수수되는 것으로 혼인의 불성립을 해제조건으로 하는 증여와 유사한 성질을 가지므로, 예물의 수령자측이 혼인 당초부터 성실히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고 그로 인하여 혼인의 파국을 초래하였다고 인정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신의칙 내지 형평의 원칙에 비추어 혼인 불성립의 경우에 준하여 예물반환의무를 인정함이 상당하나, 그러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일단 부부관계가 성립하고 그 혼인이 상당 기간 지속된 이상 후일 혼인이 해소되어도 그 반환을 구할 수는 없으므로, 비록 혼인 파탄의 원인이 며느리에게 있더라도 혼인이 상당 기간 계속된 이상 약혼예물의 소유권은 며느리에게 있다.”라고 판시하였던 바 있습니다(대법원 1996. 5. 14. 선고 96다5506 판결). 흥미로운 판결이니 한번 읽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내일은 조건부권리의 침해에 관하여 공부하겠습니다.


*참고문헌

국가법령정보센터 법령용어사전, http://www.law.go.kr/, 2019. 9. 2. 확인.


19.12.9. 작성

22.12.21.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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