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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Oct 23. 2023

오후 4시, 김천역

시를 담다


그 날, 붉은 목도리

어린 계집은 홑코트 동여매고

설레임으로 서성였다.

차디찬 입김을 쏟아내며

역사  앞에 서서

혹여나 너를 놓칠까 차마

대합실에 앉지조차 못하고

찬바람 부는 문 앞을 지키던 시간


기차역 광장 가득한 노을빛은

철로 옆 육교를 길게 가르고

성기게 지나가는 사람들

반짝이는 소란함.

그리고 어린 여자아이는

그 기차역에서

홀로 길을 떠난다.


창밖을 지나던 풍경이

눈이 부셔 커튼조차 닫지 못하고

뚫어질 듯 아름다움에 취한 시간

아쉬움은 달려가는 길 뒤로 남겨두고

정신없이 닿은 이 곳은

몇번째 역이던가

마지막칸까지 서성였던 아이는

어느 새인가

그저 길따라 앉아있을 뿐


뿌옇게 스쳐가는 차창밖.

가속도가 붙어 점점 빨라지는

누군가의 시간처럼

정신없이 달려나가다가

허덕이는 피로함

문득 아직 느릇함이 있을

고향역,

그곳으로 가고 싶었다.


철거덩 철컹

기억 속 흔들림에 기대어

철로따라 돌아왔건만

마치 낯선 곳에 들어선 듯

적막한 역사 안은

어쩐지 노쇄한 걸음을 담고

길게-

햇살이 늘어져 있었다.


오후4시, 김천역

비록 계절은 여전히 푸르건만

길건너 시장도,

육교도 그대로, 그저

색만 바래어 고요하다.

아무리 그 풍경따라 둘러보아도

열 아홉 막 역을 떠나던

어린 계집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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