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잔별 Mar 19. 2024

돌싱이지만 이혼은 안 했습니다

완독률이 높은 브런치 글이나 자주 메인에 뜨는 브런치 글을 보면  '돌싱' 혹은 '이혼'이라는 키워드가 눈에 띈다. 그만큼 이혼이나 돌싱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다는 의미일 것이다. 저마다의 성향이나 사정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더 이상 '이혼'이야기를 담아두거나 숨기지 않아도 되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고, 무엇보다 자신의 아픔이나 힘든 이야기를 오픈해서 풀어냄으로써 용기 있게 현실을 마주하고, 극복해 나가려는 분들도 많은 것 같다.


어쩌면 매우 개인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우리 모두는 그 개인적인 이야기에 매우 관심이 많기도 하다. 왜냐하면, 어쩌면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흔하게 벌어지는 평범한 이야기들은 나의 이야기가 되는 순간,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일이 되어 버린다. 돌싱이 되는 일도 그런 경우에 속한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일이 결혼이라면, 불행한 결혼을 청산하고 이혼으로 돌싱이 되는 일 역시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결정일 텐데, 결혼과 이혼의 온도차는 너무 극명하다. 


모든 게 수면 위로 드러난 현실에 직면해야 하고, 감당해야 할 무게도 훨씬 무거워진다. 그 혹은 그녀와 관련된 관계들을 정리하고, 아이가 있다면 아이들 문제와 재산, 경제적인 부분까지 처리해야 하는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고, 이후엔 파탄 난 부부관계의 끝을 주변 지인들에게 알려야 하는 매우 번거롭고, 수고스러운 숙제가 붙는 난제이기도 하다. 저마다의 사정이나 이해관계 때문에 꽤 오랜 기간 '돌밍아웃'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은 듯하다.


'이혼'이나 '돌싱'에는 '실패'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따라붙기도 한다. 어느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세상이 분류해 놓은 실패한 사람의 카테고리에 놓이게 되는 순간이 온다. 일단 그 카테고리에 들어서게 되면, 그 자체로 평범에서 멀어진 것만 같은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돌밍아웃'엔 그 이상의 의미, 누군가에게는 흔하지만, 결코 흔하지 않은 일을 겪었다는 것에 대한 인정과, 타인들의 어떤 시선들을 받아들여보겠다는 '의지'가 내포돼 있다. 그래서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심플하게 말한다면,

돌싱을 알리는 일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나 어쩌다 보니 돌싱이 되었어.'라고 얘기하는 것에서 끝나는 일은 거의 없다. 이렇게 얘기가 나오면, 상대방은 조심스럽게 '왜''어쩌다가'무슨 일 있었어?'라고 물어올 것이 분명하고, 그 사유들을 대충이라도 설명하는 일은, 꽤 에너지 소모가 많이 될 것이다. 서로가 조심한다고 해도 지난 상처들을 들추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그냥 입을 다무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고. 굳이 이렇게 다 내 이야기를 하는 게 지금 무슨 도움이 될까. 지금 이 이야기들은 누구를 위한 이야기 인가 하는 원론적인 고민마저 드는 것이다.


내 경우를 말하자면, 어쩌다 돌싱이 되었지만 이혼은 하지 않았다. 이혼이 아닌 사별로 혼자가 된 케이스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일 앞에서

우리는 자주 무기력해진다.


지금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애써 헤아려야 하고, 현실 자각을 하고 나서야 뭐라도 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원망이든 분노든 좌절이든, 다시 힘을 내고 용기를 내 보는 일조차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거나 그 시간을 기다려주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인가 보다. 내가 연락을 하지 않거나 받지 않는 동안, 무례하다 싶은 연락들도 있었고, 나의 상황이나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연락들도 있었다. 내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동안, 걱정인지 가십인지 모를 추측들이 생겨난 듯하고, 제주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에서 다시 일을 시작했을 땐, '쟤도, 이혼을 했나 보다' 하는 추측의 시선들도 있었다.


뭐, 어떤 이유에서건 그들에게 내 개인사를 다 이야기해 주고 싶지도 않다만, 남 일엔 좀 신경을 꺼주셔도 될 것 같다. 하고 싶은 사람에겐 다 하고 있다. 그게 뭐든.




결혼을 알리는 일은 별로 어렵지 않지만,

돌싱을 알리는 일은 꽤 어렵다.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보자면,

좋은 일(행복)을 알리는 일은 어렵지 않지만,

나쁜 일(불행)을 알리는 일은 꽤 어렵다.


불행을 경험하고 나니 알 것 같더라.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진짜 내 편인 사람이 누구인지, 내가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편견 없이 나를 봐줄, 나를 이해하려고 해주는 이가 누구인지를.




아주 오랜만에 연락을 해 온 친구의 전화를 보류하고, 나중에 연락을 하겠다고 했다. 며칠 내내 심정이 불편하다. 관계에 대한 무수한 상념들이 떠오르고 살짝 마음이 어지러운데 연락을 하겠다고 했으니, 조만간 긴 얘기를 다시 꺼내야 할 텐데... 마음이 편치 않은 걸 보면, 하지 않는 게 나은 것인지 이제는 이 친구에게도 해줘야 할 것인지 심플하게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까.


음. 한 마디로 말야.

돌싱이 되었는데, 이혼은 했어!


이 한 문장으로 끝낼 수 있을까?


몇 줄로 끝낼 수 있는

간단한 일이었다면 좋았겠다,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