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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별 Mar 26. 2024

누가 두 번 결혼할 상인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3번 정도 사주를 봤었는데, 그때마다 역술가들이 말한 공통 의견이 있었다. 사주를 보건대 결혼은 늦게 하는 게 좋은 사주로군요. 하는 것이었는데,  어떤 곳에서는 20대 초반에 만난 남자와 결혼을 했어야 한다. 그래야 잘 산다는 의견이 있었는가 하면, 또 다른 곳에서는 마흔 언저리쯤에나 해야 좋다는 것이었다. 이유 인즉은 결혼을 일찍 하면 두 번 할 수도 있는 팔자라고.


사주를 맹신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다행히도 나는 마흔에 결혼을 했기 때문에, 두 번 결혼을 할 일은 없겠다, 싶었다. 뭐, 인생이 다 사주팔자대로 펼쳐진다면, 더 고민할 것도 없이 참 심플할 테지만! 우리네 인생은 훨씬 더 복잡하다. 실타래처럼 얽힌 인연들이 어느 순간에는 스르륵 풀려 나와 쉽게 인연이 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꼬이고 꼬여서 결국엔 풀 수 없는 관계가 되기도 하니까. 그리고 그 모습들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당시에는 결코 다 알 수가 없다. 좋아 보였던 것이 독이 되기도 하고, 나쁜 일이 종종 훗날의 전화위복이 되기도 한다.


결국엔 그 과정 과정을 다 겪어낸 뒤에나 겨우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인생은 그러저러하게 흘러왔고, 이러저러한 일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참 좋았노라고.'


다 가보지 않은 지금은, 그러니까 과정 중에서는 결말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섣불리 판단하지도 평가하지도 단언하지도 말아야 한다. 심지어, 남의 인생에 대해서는 더더욱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일이다.


누가, 누구의 인생을 평한단 말인가, 감히!

본인조차도 지금 자신의 인생이 어디로 흘러갈지 다 알 수가 없는데...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 주변에선 남의 상황에 대해 단언하는 이들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그런 모습을 볼 때, 의아하다기보단 놀랍도록 새롭다. '어떻게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가 있지?' '무슨 자신감으로 저렇게 남의 인생을 평가할 수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를 오면서 홀로서기를 시작했을 때 낯선 환경에 적응을 해 나가는데 약간의 진통이 있었다. 다시, 혼자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두려움과 우울감으로 이어졌고 불안하기까지 했다. 대부분의 주변 지인들은 '너는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고, 앞으로 점점 더 나아질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었지만, 놀랍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내가 불안함과 관련된 어떤 에피소드를 꺼내놓고 있었던 어느 저녁, 그 지인은 뜬금없이 이런 소리를 했다.

 

'그래도 우리 중에서 가장 빨리 결혼할 사람은 너 일거야. 우리가 결혼하는 것보다 네가 두 번 결혼하는 게 더 빠를걸?!' (무리 중에 결혼을 안 한 사람이 몇 명 있었다. )


이건, 위로인가, 조롱인가?


저따위 말을 지금 위로라고 하는 건가?


같은 의미의 말이라도, 꼭 저런 식으로 말해야 할까?


예를 들어, 앞으로 네가 좋은 사람을 만나서 지금보다 마음의 안정을 찾으면 좋겠어, 라든가.

시간이 지나면, 좋은 일들이 생길 거야. 라든가. 뭐, 비슷한 의미를 내포하는 다양한 문장들이 있을 텐데, 저건 위로도 뭣도 아니고, 그냥 내뱉는 말, 어쩌면 나를 멕이는 말인가 싶기도 했다.


그러면서 사주 이야기가 나왔을 땐, 한마디가 덧붙여졌다.


'혹시 사주에 결혼한 없었어?'

'......................................................'


그때도 기분이 나빴는데, 몇 달이 지난 지금도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고 놀랍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한테, 해 줄 위로의 말이 그렇게나 없었을까? 그 사람은 무슨 생각으로 나를 두 번 결혼할 사람으로 만든 걸까? 왜 그렇게 말해야만 했을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지만, 이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그 사람은 생각이 깊지 않은 경솔한 사람일 뿐이다.)


두 번 결혼하는 게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그 뉘앙스에 담긴 의미가 몹시 불쾌하다. 내가 두 번 결혼을 하든, 세 번 결혼을 하든, 내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주는 말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생각했다.

그게 뭐든, 보란 듯이 그 사람보다 잘 살아야겠다고.


네가 단언한 모습으로의 삶이 아니라,

나의 의지와 단단함으로

오롯이 행복한 삶을 이어가겠다고 말이다.




영화 '관상'의 어떤 장면이 떠올라, 거침없이 키보드를 눌러보며 손절의 의미를 생각하는 저녁.


단언하건대, 앞으로의 나는 더 행복해질 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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