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봄이 왔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계절,
사랑하고 싶은 계절이다.
나는 이전보다 훨씬 괜찮아졌지만, 괜찮다고 생각하면 항상 허를 찔린다. 사실 나는 완전히 괜찮지는 않다는 걸 금세 알게 되니까 말이다. 그런 일은 너무 뻔하고 흔한 일상 중에 생겨나서 마음의 준비를 전혀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일어난다. 언제나 뻔한 이야기가 가장 아름답고 가장 슬프다는 사실을 이 계절을 통해 또 배워가는 중이다.
벚꽃이 눈비가 되어 내리던 어제, 언니와 엄마와 꽃마실을 갔다. 봄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고, 모든 사람들에게 근심은 없어 보였다. 아름다운 이 계절, 찰나의 순간마다 눈부셨던 지난봄들을 떠올렸다. 나는 그때, 행복하다고 생각했을까? 그 순간들이 소중하다고 생각했을까?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은 언제나 반짝이고 있다는 걸, 그래서 항상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었다는 걸, 왜 그때는 모르고 지금은 알게 되는 걸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달라졌으니까, 당연한 걸까?
나는 지금 꽃놀이도 가고, 예쁜 카페에서 모녀끼리 다정하게 사진도 찍으며 남들처럼 행복해 보이는 일상을 보낸다. 작년에도 언니와 엄마와 꽃놀이를 왔던 장소를 1년 만에 찾은 것인데, 그때와는 또 기분이 달랐다. 그때는 전혀 사진을 찍지도 꽃을 즐기지도 않았으니까. 지금의 나는 그때에 비하면 괜찮아진 듯 보인다. 이렇게 잘 살아가게 되는 것이 지금의 위안이고, 또한 지금의 슬픔이다.
매년 함께 벚꽃을 보자고 약속했던 모습이 지금의 행복과 겹치고, '네가 싫어하는 설거지는 평생 내가 해줄게.' 하는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지친 저녁, 혼자 설거지는 하는 내 모습과 겹친다. 요가복을 입고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다가 '그래도 여보, 요가복만 입고 돌아다니는 건 안 돼.' 귀엽게 항변하던 모습이 떠올라 고개를 흔들며 생각을 떨치던 날들이 있었다. 분명 아무렇지 않았는데,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다가, 커피를 내리다가, 불쑥불쑥 끼어드는 추억들은 그 어떤 슬픔보다도 확실했다.
슬픔은 언제나 일상 중에 있었다.
너무 사소하고 뻔한 이야기들이어서 누구한테 말하지도 못할 수많은 이야기들이.
가슴속에 쌓인 이야기들은
말하지 못할 비밀이 되어 공중에서 흩어졌다.
말하지 않으니 다들 내가 너무 괜찮아진 줄 알아서, 계속 괜찮은 척을 해야 하나, 실은 아직도 많이 힘든 날이 있다고 말해야 하나 혼자 고민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슬픔의 질감은 확실히 예전과는 달랐기에 나는 살아갈 수 있었다. 자주 생각이 났지만, 무겁고 우울한 것만은 아니어서 그 감정에 오래 끌려들어 가 있지는 않았으므로. 나는 햇살이 불쑥 반짝하는 것처럼 슬프고, 눈물이 나면 잠깐 눈가를 훔쳤다. 그리곤 다시 씩씩하게 일상으로 들어갔다.
슬픔이 거기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슬픔의 수렁에 빠지지 않고.
매일 행복할 수는 없겠지만,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믿는 상태로 살아간다.
일상적인 것이 가장 위대하고, 가장 거창한 일이며, 가장 슬플 수 있다는 걸 다시 찾아온 봄날, 흩날리는 꽃비 속에서 생각한다.
오늘도 이만큼 손을 뻗었다.
나는 한 뼘 더 앞으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