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잔별 Apr 20. 2024

선뜻, 반갑게, 편안한 존재

'너네 동네 지나가다가 네 생각이 나서 전화했어'

'너희 집 앞인데 잠깐 얼굴 보게, 나올 수 있어?'

'내가 그쪽으로 갈게, 맥주 한잔 하자!'


이런 말을 들을 때, 기분이 나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다만, 이런 메시지나 전화는 아주 절친일 때 그 기쁨의 가용치가 훨씬 크고, 실패 확률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아무 때나 전화해서 안부를 묻거나 볼 수 있는 친구라면, 집에 있는 편한 차림 그대로 모자만 눌러쓰고 나가서도 충분히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까. 기분 꿀꿀할 때 간단하게 맥주 한잔 하자고 불러낼 동네 친구가 있다는 건 누구에게나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는 정말 필요한 존재이기도 하다.


20~30대가 '각 잡고 나가서 놀 계획'을 많이 세우고 실행하는 시기라면, 이제는 그런 만남이 어쩐지 피곤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일이 많다. 그러다 보니 저절로 혼삶을 즐기는 유형으로 진화하는 것만 같다. 자의적으로든 타의적으로든 혼자가 편해지는 시점이다. 하지만 이 시기가 또 지나가면, 그래도 인간은 관계 속에 섞여 살아야 한다! 단, 아주 편하고 허물없는 사이가 절실히 필요하다. 의 관점에 이르게 된다.


평범한 일상에 살짝 조미료를 쳐서 인생의 맛을 배가시켜 줄 수 있는 존재와 일상적이지만 자연스러운 유희를 추구하는 시기가 오는 것이다. 지금의 내가 그런 경우에 속한다. 혼자도 괜찮지만, 가까이서 자주 보고 우애를 쌓아나갈 친구가 있다면 더 괜찮은 인생이 될 것 같다.


다시 세상에 마음을 조금 더 열어볼까, 다시 관계에 진심을 다 해볼까, 싶은 변화들이 생기고 있다.


새봄처럼 찾아온 이런 보드라운 마음이 기적 같다. 이 시기에 곁에 좋은 사람들을 두고 싶다.


참으로 어려웠던 시기, 섣불리 판단하거나 성급하게 말하지 않고 기다려 준 친구들이나 부러 시간을 내어 나를 찾아 준 고마운 인연들, 새롭게 발견한 인연들을 놓치지 않고 소중하게 대하자고 생각한다.


그간의 인간관계를 돌아볼 때, 굳이 MBTI의 'E'성향이나 'I' 성향으로 따져보지 않더라도, 내가 먼저 다가가는 편은 아니었다. MBTI의 유형으로는 ENFJ이긴 한데, 스스로는 'E'성향을 잘 찾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고맙게도 먼저 손 내밀어준 인연들이 많아서 친구를 사귀는 일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는 건, 정말 큰 축복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특히, 어떤 시기에는 그 존재들 덕분에 살아갈 수 있었다.


제주도에 2년 간 살 때, 동네 친구가 없어서, 아니 그냥 친구도 없어서 외로울 때마다 나를 찾아주는 이들이 있었다. 가끔 그때의 그 순간들을 떠올리면 살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제주도에 놀러 왔는데, 내가 살고 있는 동네로 올 테니 커피나 한 잔 하자, 밥 한 번 먹자, 얼굴 한 번 보자, 하면서 연락을 해 온 지인들이 많았던 것이다. 오랜만에 큰맘 먹고 제주도 여행을 오면서, 반나절 정도 시간을 비워 나를 볼 생각을 해줬다는 것은 실로 고마운 일, 생각할수록 반가운 방문이었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어느 날, 스쿠터를 타고 해안도로에 나타난 친구와는 멋진 카페에 갔었고, 2주 동안 제주 살기를 하러 온 친구와는 해안도로 앞 편의점에서 맥주를 까먹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었다. 동네 커피 맛집에서 산 커피를 들고 바닷바람을 함께 맞았던 날의 기분이 생생하다. 또 한 친구는 제주도에 올 때마다 연락을 해줘서 꽤 자주 볼 수 있었고, 후배들의 깜짝 방문 덕에 대기가 무서워 가지 않던 제주 핫플을 가 보는 날도 있었다. 또 절친들과 제주 여행을 했던 일, 제주도에 살면, 매번 다른 사람들 밥 사주기 힘들지 않나며, 맛집에서 맛있는 밥을 사주었던 고마운 친구, 신혼여행 중에 남편과 들러준 후배 작가와 신나는 불금을 보냈던 일... 친구들을 공항에 바래다줄 때 느꼈던 공기와 미묘했던 기분까지, 지금도 선명하게 남은 추억들이 많다. 그때, 그들이 선뜻 방문해 주어서 나는 어떤 하루를 정말 기분 좋게 보낼 수 있었다.


이제 제주도에 있지 않으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지만, 나 역시 누군가에게 반가운 방문이 되는 존재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아무 때나 연락해도 선뜻, 오케이, 콜! 할 수 있는 친구.


매번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고 먼저 다가간다는 게 쉬워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어느 정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어떨 때는 배려보단 용기가 더 좋은 관계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먼저, 자주 보자고 요청할 수 있고 설사 까이더라도 상처받지 않을 친구(존재)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나 역시 다가가려는 노력들을 먼저 해야 할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손 내밀어 보려 한다.


관계의 대 전환기를 맞은 요즘.

과연, 어떤 관계가 좋은 걸까 사유한다.

지금은 선뜻, 반갑고 편안한 것들에 마음이 향한다.


누군가가 찾아줄 때, 반갑고 감사하게.

누군가를 찾을 때, 한 발 더 먼저, 가깝게.






이전 05화 슬픔은 일상 속에 있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