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단비
나는 영어를 잘 못한다. 내게는 지금까지도 어디 가서 말하지 못하는 부끄러운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언젠가 아마 십 년도 훨씬 전, 티셔츠에 적혀있는 영단어를 보고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나티오날이 뭐야?” 처음 들어보는 단어에 언니는 갸우뚱했고, 나는 티셔츠를 가리키며 다시 물었다. 잠깐의 침묵 끝에 언니가 했던 말이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내셔널(national)"
이렇게 알게 되는 단어들은 절대 잊히지 않는다. 이제는 뜻은 물론 스펠링까지 정확하게 안다. 가족들은 지금도 가끔 신기해한다. 영어도 못하는 애가 어떻게 미국에서 먹고살지? 신기하네...
나는 여전히 영어를 잘 못한다. 그러나 십 년 전과 비교하면 멀리 왔다. 제자리걸음은 아니다. 영어도 못하면서 어쩌다 보니 미국에 왔고 여기서 강산이 변할 만큼 살았다. 사는 내내 영어는 늘 숙제였다. 한국인과 일을 하더라도 만나야 하는 바이어는 모두 미국인이었고, 아예 미국인들과 함께 일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처음에는 말 한마디 할 때마다 번역기를 돌렸다.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적도 많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영어를 써야 하는 상황에 계속 놓이다 보니 어설프게나마 기본적인 영어는 하게 되었다. 특히 업무용 메일을 쓰는 일은 초반에는 영어 자판이 익숙지 않아 메일 하나 쓰는데 독수리 타법으로 2,30분이 넘게 걸렸다. 그러다 어느새 자판을 보지 않고도 메일을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처음으로 영어가 조금 늘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들에겐 여전히 부족하고 서툴러 보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워낙 기준치가 낮았기에 이것만으로도 대견하다. 미국에 사는 한인 중에도 영어를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영어가 확실하게 빨리 느는 법으로 원어민 친구를 사귀거나 한국인이 없는 동네로 이사 가는 방법을 추천하기도 한다. 일상 대화를 전부 영어로 하는 상황에서 언어의 습득 속도가 빠르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학창 시절에 배운 것보다 미국에 와서 부딪히며 배운 영어가 훨씬 많다. 음식점에서 주문을 하고 관공서에 가서 일을 처리한다. 이제 아주 가끔은 조금씩 늘어가는 게 재미있기도 하다. 로스앤젤레스에는 한인타운도 있고 통역서비스도 많이 있지만 그래도 여기는 미국이다. 이곳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영어고 그렇기 때문에 어딜 가나 영어를 해야 소통할 수 있다. 실생활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기본적인 영어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처음에는 단어를 제대로 읽는 법 조차 몰랐으니 어디서든 주눅 들고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지금은 부족하더라도 최대한 또박또박 이야기하고 가능한 쉬운 단어를 사용해서 내 의견을 전달하려고 한다. 영어에 처음처럼 스트레스받거나 긴장하지 않는다. 미국 사람들, 특히 엘에이에 사는 사람들은 영어를 못하는 것에 크게 개의치 않는 경우가 많다.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들도 언어 때문에 불편한 내색을 보인적은 한 번도 없다. 오히려 내가 늘 영어가 부족해서 미안하다고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며 괜찮다고 대답한다. 더 귀를 기울여주고 가끔 내가 잘못 말하는 단어는 지적하는 게 아니라 네가 이야기한 게 이게 맞아? 하며 다시 물어봐준다. 한 번은 함께 일하던 미국인 세일즈가 "너는 외국인이니까 영어를 못하는 게 당연하지. 나는 한국말을 못 하잖아" 하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영어가 점점 더 두렵지도 싫지도 않아졌다. 오히려 한국인 친구들 앞에서 영어로 말하는 게 더 긴장된다. 특히 미국에 온 기간과 상관없이 유창하게 말하는 친구들을 볼 때면 부러워진다. 일상에서 습득하는 언어로 모든 것을 채울 수는 없다. 모르는 단어는 찾아보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나중에 사용할 수 있으니 처음으로 공부 욕심이 생겼다.
그렇게 싫어하던 영어가 잘하고 싶어졌다. 가장 큰 변화다. 역시 억지로 하는 것보다는 경험해보고 필요를 느끼는 게 동기부여가 된다. 어디선가 읽었는데 사람들이 언어를 배울 때 가장 넘기 어려운 장벽 중 하나가 바보가 된듯한 기분을 견디는 것이라고 한다. 공부한다고 틀어놓은 자막 없는 미국 드라마를 상황만 보고 어림짐작하거나 웃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 함께 웃지 못하거나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대화 속에서 한 단어도 듣지 못할 때는 나도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함께 일했던 동료 중에 한인 2세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한국말하는 것을 싫어했다. 자신의 한국말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알아들을 수 없을 거라고 했다. 사실 그 친구의 한국어는 나와 대화하기에 충분했지만 그 친구는 한국말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어설픈 한국말을 했을 때 우습게 보이는 게 싫다고 했다.
형태와 크기만 다를 뿐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있다. 나 역시 그렇지만 용기 내서 말을 꺼내고 대화를 시도했을 때 다양한 사람들과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대화 속에서 배운 단어와 문장이 있다. 경험으로 배우는 것은 잘 잊히지 않는다.
며칠 전 한 식당에 갔다. 주문을 하는데 점원이 나의 "fruit tart"을 알아듣지 못했다. 프루츠 타르트. 프룻타흐트. 프루트탈흣트. 마지막에는 또박또박 천천히. 프. 루. 츠. 타. 르. 트. 열심히 혀를 굴리며 발음했지만 결국 전달되지 않았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서 메모장에 스펠링을 적어 보여주었다. 예전의 나라면 의기소침해졌을 것이다. 이제는 개의치 않는다. 단어를 검색해 발음을 다시 들어보고 스펠링을 확인한다. 나는 다음번에도 프루츠 타르트를 주문할 것이다. 그다음 또 그다음에도 내가 먹고 싶을 때는 언제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