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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n Aug 17. 2021

산책 에피소드 조각모음

강아지 뒤에 사람 있어요

다시 생각해도 가슴이 몽글몽글해지는 산책 에피소드들.


1.

자주 산책하는 집 근처의 제천은 길이 좁은 편이다. 한편에는 인도와 자전거 도로가 함께 있지만, 다른 한편에는 자전거 도로를 함께 이용해야 하므로 조심해서 걷는 편이다. 대부분 사람인 내가 바깥에서, 홍삼이는 화단이 있는 안쪽에서 걷는다. 그날도 자전거 도로를 주변을 살피며 걷고 있었다(요즘은 자전거뿐만 아니라 전동 킥보드도 빠른 속도로 오기 때문에 항상 주시해야 한다). 엄마의 도움을 받으며 언덕길을 힘겹게 자전거로 올라오던 꼬마 친구와 마주쳤다. 엄마분이 "강아지가 있다"라고 하니 꼬마가 말했다. 


"강아지야 '운동' 열심히 해!!"

아무래도 꼬마 친구가 자전거 타느라 꽤나 힘들었나 보다. 그래 우리 운동 열심히 할게. 고마워.


2. 

아파트 단지 앞 횡단보도에서 홍삼이를 안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같이 기다리던 초등학생 친구들이 홍삼이를 보고 소곤소곤(이라기엔 다 들렸지만..) 이야기를 하는데... 


"강아지가 아픈가 봐. 눈을 껌벅껌벅여" - (그날 3시간 산책을 하고 피곤해한 상태였다)

"털이랑 수염이 하얗잖아. 할머니인가 봐"

"아니야 아니야 배에 꼬*가 있어 할아버지야"

"저게 꼬*야??? 왜 저기에 있어?"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하며 부끄러워진 나는 넌지시 "얘는 아직 한 살밖에 안됐어. 애기야"라고 외치며 길을 건넜다. 얘들아 그렇게 토론하지 말고 그냥 물어봐줄래...? 큰소리로 막 꼬* 외치고 그러는 거 아니야..


3.

제천에서 산책할 때의 일이다. 유독 가족 단위 무리가 많아서 긴장하고 있었는 데 어느 여자아이가 다가왔다. 순간 긴장이 되어 줄을 고쳐 잡고 있었는데, 아이가 우리 앞으로 오더니 갑자기 뒷짐을 진다. 어쩐지 할머니 같은 포즈로 돌아보며 홍삼이를 한 번 보고는 나에게 말했다.


"아유, 강아지가 참 이쁘네요."

꼬마야.. 그 말투와 걸음걸이는 할머니께 배웠니..? 웃음 참느라 혼났다. 너도 참 이쁘다.


4.

어느 날 집 앞 큰 계단을 오르는데 어떤 꼬마가 소리쳤다.

"나 강아지가 계단 올라가는 거 처음 봐!!"

그래.. 이제 봤으니까 된 건가...? 어쩐지 더 속도를 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5. 

홍삼이가 중성화를 한 다음 날, 넥쿠션을 하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엄마와 아이들이 있었는 데 아무래도 넥쿠션을 한 이유가 궁금했나 보다. 소곤소곤 아이가 눈치를 주자 엄마분이 나에게 물으셨다. 


"강아지가 어디 아픈가요?"

"아~ 안 아파요. 중성화했어요."

당시의 나는 홍삼이가 죽을 고비를 잘 넘기고 건강해져서 중성화까지 온 것에 감격한 상태여서 미처 몰랐다.

집에 가서 아이들에게 설명해줘야 하는 엄마분의 입장을..


"아.. 어디가 아픈 것이 나았을 텐데.."라고 대답하시며 고민 많은 얼굴로 내리셔서 나도 조금은 속상했지만.. 결국 아이들에게 뭐라고 하셨을지 궁금하긴 하다. 그래도 억지로 만들 수는 없었어요..ㅜ


6. 

홍삼이와 다니면서 아이들을 마주치면 대부분 함께 있는 부모님에게 "우리도 강아지 키우면 안 돼?"라고 묻는 모습을 자주 본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아이도 부모님에게 그렇게 물으니 엄마분이 물끄러미 시선을 나에게 돌리며 되물으셨다. 


"강아지 키우는 거 힘들죠?"

열심히 대답했다. "친구야, 아줌마는 벌써 오늘 두 번째 산책이야. 매일 두 번씩 하고 있어. 너는 학교도 가고 학원도 가고 친구도 만나고 놀아야 하는데 매일 할 수 있어?"

꼬마 친구의 눈이 커지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지금도 그 순간은 뿌듯하다. 예쁘다고, 호기심으로 강아지 키우지 말자,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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