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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n Aug 30. 2021

'초보자를 위한 강아지'는 없지만, 모든 견주는 초보자

강아지 뒤에 사람 있어요

김희철은 26일 첫 방송된 JTBC'개취존중 여행배틀 펫키지'(이하 펫키지)에서 "유기견을 키운다는 게 진짜 대단하다. 솔직한 말로, 강아지 전문가들은 처음 강아지 키우는 사람들에게 유기견을 절대 추천하지 않는다. 왜냐면 한번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사람에게 '적응하는 데 너무 오래 걸리면' 강아지를 모르는 사람도 상처받고, 강아지도 상처받는다"고 말했다.
- 출처: 2021년 8월 30일 중앙일보




지난주 한 방송에서 '초보 견주에게 유기견을 추천하지 않는다'는 발언이 논란이다. 유기견을 키우는 견주 입장에서 처음에는 이 한 줄이 너무 당혹스럽고 한편으로는 화도 났지만, 김희철 씨의 의도가 어떤 것인지 알 것 같다. 동물농장을 비롯한 티비 프로그램이나 매체, SNS에 노출되거나 홍보자료에 나오는 유기견들은 대체로 상처가 심한 아이들이 많다. 나도 처음에는 그런 부분 때문에 유기견 임시보호가 고민스러웠고, 특히 함께 사는 파트너는 강아지를 키워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되도록 적응이 수월할 것 같은 어리지만 아픈 강아지를 선택했다. 터놓고 말하자면, 마음의 상처가 깊어서 입질이 심하거나 공격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물론 이 역시도 나의 무지함에서 비롯된 생각임을 밝힌다. 결국 홍삼이도 이전 포스팅에서 언급했듯이 강아지를 15년 키웠다는 자만심에 실수를 반복하면서 문제행동이 강화되고 길어지기도 했다.


사실 저 발언의 요지는 '적응하는데 너무 오래 걸리면'에 있다. 강아지와 사람은 서로에게, 또 함께 사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적응시간'은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과 강아지가 협의할 수 없는 기간이다. 지금은 적응한 것 같아도 함께 지내면서 생기는 환경변화나 연령 변화 등 새로운 상황에서는 언제든지 다시 리셋될 수 있는 것이 이 '적응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또, 이건 유기견의 여부와는 상관없다. 어디에서든 강아지를 데려와서 늙지도 않고 끝까지 환경이 변하지 않고 같은 상황일 수만은 없으니까.


유기견에 관심을 갖고 포인핸즈나 인스타 계정, 블로그  어떤 정보에서도 '재파양' 어렵지 않게 찾아볼  있다. 신중하게 고른 입양처임에도 짧게는 하루 이틀 만에, 길게는 10 이상을 키웠음에도  이상은 어렵다며 임시보호처나 기관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사례들이 드물지 않다. 그들이 말하는 '피치 못할 사정' 당사자나 내부 관계자만이 알겠지만, 유기견 임시보호를 고민한 2 여의 시간 동안 매달 '00이가 다시 돌아왔습니다'라는 을 정말 많이 읽었다. 그들의 상처는 구조자, 기관, 강아지들에게 평생 동안 깊이 박혀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얼마나 긴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적응하는 기간을 감내하고 열심히 유기견을 키운 견주들을 위한 존경과 찬사를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그가 간과한 것은 '초보자'와 '유기견'이라는 프레임이다. 홍삼이의 입양 초기에는 아팠던 유기견도 이렇게 예쁘고 건강하고 씩씩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홍삼이의 개춘기가 시작되면서 어떠한 말썽이나 문제행동이 나타났을 때 나 스스로도, 또 주변에서 씌우는 '유기견' 프레임이 불편했다. '아, 이 아이가 유기견이어서 그런가'라는 것은 자칫하면 강아지를 키우면서 무지했던 측면을 인정하고 개선하기보다는 강아지에 대해 더 공부할 필요가 없거나 심하게는 파양이나 유기까지도 합리화하는 마음에 무게를 실어줄 수 있다.


사람도 개인의 성향과 성격이 다르듯, 모든 강아지도 성격, 성향, 체구 등이 모두 다르므로 아무리 강아지를 많이 키워봤어도 우리는 모두가 초보자이다. 개는 훌륭하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등에 나오는 모든 문제견들이 단순히 견주가 '초보자'라서가 아니다. 가끔 평생 강아지를 키워봤어도 강아지에 대해 잘 모르는 견주가 상담을 위해 출연하기도 한다. 또, 시골에 묶여서 키워지는 강아지들도 결국은 견주들이 뭘 몰라서, 혹은 예전에도 이렇게 키웠으니까 더 공부하지 않고 방치하며 그렇게 키우는 것이다. 이런 견주들 중에 누가 중급자이고, 고급자일까? 결국 강형욱씨나 설채현씨와 같은 전문가를 제외한 모든 견주들은 '초보자'이다. 나 역시도 아직도 홍삼이와 적응하는 '초보견주'일 뿐이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유기견들이 기회를 잃을 까 봐 걱정되는 동시에 유기견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경각심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유기견에 대해 개장수를 포함해서 펫샵보다 '저렴하게' 데려올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기관에서는 1인 가족이나 신혼부부, 미성년자를 둔 가족 등에게는 유기견 입양 심사과정에서 탈락시키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심사절차가 신중하다 못해 사생활 침해까지 이어지면서 이를 참지 못하고 펫샵을 선택하는 부작용도 있다. 홍삼이의 입양 과정에서도 이런 찔러보기식 문의를 받은 적 있다.


물론 '초보자'라는 단어의 사용은 아쉽다. '초보자를 위한 것'에는 요리, 언어, 기술 등 사람이 배우고 익히는 '행위나 기술'들이 어울리는 표현이 아닐까. 함께 지내면서 적응하고 노력하며 사는 '반려동물'에게는 적절하지 않다. 초보자라는 단어 대신 유기견과 발맞추고 적응한 시간과 강아지를 키우기 위한 노력을 강조했으면 어땠을까. 물론 방송은 짧고 간결한 한 줄로 모든 것을 말하려 한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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