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랄 마이크로 단편선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렇게 다같이 모이는게 쉬운 일은 아니라...”
길게 늘어선 탁자에 손을 올리고 남자가 말한다.
“그럼 자기 소개부터 간단하게... 해볼까요”
남자는 웃으며 자기 앞에 앉아있는 세 사람을 바라본다. 아무 대답이 없자, 남자는 아까보다 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간다.
“제가 먼저 해야겠네요. 닉네임 블루를 쓰고 있고 아시다시피 카페 운영자입니다. 나이나 실명은 여기서 중요하지 않은 것 같고.. 음 제 기억으로는 8년 됐네요. 빨강 알러지를 앓은지 말이죠. 어떤 댓글 중에 어떻게 색깔이 알러지일 수 있냐고 묻는게 있었는데...”
한 두꺼운 뿔테를 쓴 남자 참석자가 조용히 손을 든다. 블루는 눈을 맞추고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여기 계신 분이 다 공감하실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됐는지 가늠이 안됩니다. 나름대로 추측을 해볼 뿐인데, 8년 전에 개인적인 사건이 영향을 준 것 같긴 해요.”
“개인적인 사건이라면?”
검은 긴머리 여자가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서 밝히기엔 개인적인 내용인데요.”
블루가 조심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괜찮아요. 그런거 털어놓으려고 만난거잖아요.”
또 긴머리 여자가 말한다.
“대학생 때 알바를 해서 유럽여행을 갔던 적이 있습니다. 스페인도 들렸었는데 거기에 세비야라는 도시가 있어요.”
“플라멩고가 유명한 곳이죠.”
“네, 플라멩고. 그리고 투우가 유명해요.”
“투우. 소싸움 말하는거죠? 요즘에는 동물학대로 금지됐다던데.”
“아니요. 그건 소끼리 싸우는거고. 투우는 소와 인간의 싸움이에요. 동물학대혐의를 갖고 줄어든거는 맞는데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죠. 제가 여행했던 그 당시에는 더 많이 하고 있었구요. 근데 어린 마음에 많이 궁금하잖아요. 인간에게 진 소가 그 다음에 어떻게 되는지. 어떻게 될 거 같아요?”
블루가 물었다. 검은뿔테 남성은 처음으로 대답을 한다.
“뭐, 죽이겠죠.”
“맞아요. 둘 중 하나가 죽죠. 소 아니면 인간. 그 날은 소가 죽는 날이었어요. 대부분의 날이 그랬겠지만. 투우사는 붉은 천을 흔들면서 소를 교묘하게 피하다가 작살을 내리꽂습니다. 소가 비틀거리다가 쓰러지고. 투우사는 그대로 소의 심장을 찌르죠.”
“동물학대.”
검은 긴머리의 여자가 나지막히 말한다.
“동물학대 맞아요. 제가 경기장 1열에서, 바로 앞에서 정말 생생하게 보고 있었거든요. 소가 쓰러진 것도 거의 제 앞에서에요. 집채만한게 쿵. 그런데 그 소와 눈이 마주쳤어요.”
“소가 블루님을 봤다구요?”
“확실치는 않지만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지금 나를 보고 있다. 그리고 투우사가 다가왔죠. 칼을 빼들어 심장을 찌르자 소가 비명을 질렀어요. 눈은 계속 날 보고 있고.”
“굉장히 크리피하네요.”
검은 뿔테 남성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한다.
“굉장히 찜찜하게 경기장을 나와서 그날 저녁으로 잡아둔 레스토랑에 갔어요. 경기장 가까이에 있는 오래된 곳이었는데... 스테이크를 시켰어요. 그런데 서빙하는 쉐프가 하는 말이 자신네의 식당은 최고의 소요리만을 제공한다, 오늘의 요리는 오늘 방금 투우에서 죽은 소를 재료로 했다라고 말하더군요. 접시 위에 작게 놓여있는 살덩이가요.”
“제가 듣기로도 그런 집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 이후부터였어요. 빨강에 알러지 반응을 일으킨게. 빨강을 오랫동안 보고 있으면 열이 나고 미식거리는 정도 반응이 오고 몸에 대면 거의 실신 정도를 해요. 좀 심하죠.”
“어쩐지 오늘 옷에 빨강을 섞어 입고 오지 말라는 거랑 식당을 둘러봐도 빨간색은 하나도 없네요.”
“미리 알아보고 섭외했죠. 실신한 걱정 없이 편하게 대화하고 싶으니까.”
“그래서 그 소의 죽음이 알러지와 관계가 있는 것 같다는 말씀이시죠?”
“뭐 제 생각이죠. 심지어 이런 생각도 했어요. 그 소의 눈을 본 순간 그 영혼이 저한테 들어온게 아닌가 하고 말이에요.”
“설마. 그냥 트라우마 이런거겠죠.”
“저도 그렇다고 생각은 하는데요.”
“블루님의 이야기에 있는 빨강을 따져보면 투우사가 흔들었던 붉은 천. 소를 흥분시키기 위해 흔든다고 하는데 사실 소는 색맹이에요. 색을 못봅니다. 블루님에게 소의 영혼이 들어왔다면 일단 빨강을 보고 구분하지는 못할 거에요.”
검은 머리 여자가 침착하게 말한다.
“듣고보니 그렇군요.”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블루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제 소개가 좀 길었는데 그럼 다음 분이”
“제가 하죠.”
뿔테 남자가 살짝 손을 들었다.
“닉네임은 팩맨이고요. 이런 자리가 많이 어색한데 최대한 많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뒷목에 흥건한 땀을 닦는다.
“팩맨 님 반갑습니다. 직접 만나고 싶던 분 중 하나에요.”
“네, 제가 쑥스럼을 많이 타서. 이해 부탁드립니다. 아무튼 제 소개를 이어서 하면 저는 이성과 단둘이 있으면 안되는 알러지를 앓고 있습니다.”
팩맨이 이렇게 말하자, 블루와 나머지 여자는 서로 쳐다봤다.
“카페에서도 아마 이해하기 힘들 것 같아 주로 눈팅만 했었는데요. 용기를 내서 나와봤습니다”
“근데 이해가 안되는데... 죄송해요. 여자랑 단둘이 있으면 어떻게 되는데요?”
“보통 아시는 알러지 반응이요. 얼굴이 붉게 열이 오르고 숨이 가빠지고... 저도 블루님처럼 실신한 적도 두어번 있고요.”
블루와 나머지 여자는 다시 한번 서로를 겻눈질로 쳐다봤다. 여자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 같기도 하다.
“보통 이성을 만나거나 할때 보통 사람도 하는 두근거림과는 다른 거라는 말씀이시죠?”
“그런거 같아요.”
팩맨은 뭔가 자신이 죄라도 지은듯 고개를 숙이고 안경을 벗어 닦는다.
“처음 증상이 나왔을때가 생각나요. 고등학생 때. 같은 학원에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어요.”
블루와 나머지 여자는 빼박이라는 표정을 짓는다.
“학원 끝나기 전에 같이 컵라면을 먹었어요. 그러면서 진로 같은 진지한 이야기를 했어요. 좋은 아이라고 느꼈어요. 이쁘기도 했고.”
“그때는 괜찮았었는데.”
“네, 그때는 같이 있어도 괜찮았었는데 대학 결정되고 연락이 끊겼어요. 저는 수능을 망쳤거든요. 재수를 했고 그 친구는 그래도 인서울을 했어요.
다음해에 한번 밥 먹자 란 말을 그렇게 밥 먹듯이 하다가 5월 즈음이었나 진짜 만났어요. 대학생 되더니 정말 더 예뻐졌더라고요. 저는 뭔가 찌질해보이고. 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 친구가 갑자기 소개팅을 했다고 하더군요.
소개팅. 뭐 소개팅 할 수 있죠. 우리가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한번 남자 입장에서 괜찮은 사람 같은지 봐달라는거에요. 스마트폰을 뒤적거리더니 카톡 프사를 보여줍니다. 저는 무슨 연예인 사진인줄 알았어요. 키는 180은 되보이고. 근데 프사 메시지가 있잖아요. 거기에 무슨 대학인지 적혀있더라고요. 보통 그런거 안 적는데 자신감이 넘치는 건지 사기꾼인건지. 여튼 저는 그 친구에게 이 남자 별로 같다고 했어요. 그 친구는 그래? 이러더군요. 그렇게 헤어졌고, 다음날 그 친구 프사 사진이 그 남자랑 같이 찍은 사진으로 바뀌었어요. 메시지는 ‘오늘부터 1일’”
“스펙터클하네요”
블루가 말했다.
“그 다음부터 자꾸 그 친구가 생각났어요. 나를 어장관리 했구나, 결국 겉모습으로 사람 판단하는 친구였구나, 속물 근성이 있는 얘였네...”
“잠깐만요. 좋아하던 얘에 대한 생각이 왜 그렇게 확 바뀌었어요?”
“배신감? 그런게 아니였나 싶은데.”
“아니 배신감이 아니라 열등감이고 피해의식이죠.”
팩맨의 말을 검은 머리 여자가 막는다.
“선택 받지 못해서 한마디로 자존심이 상했는데 나의 자존감을 떨어뜨릴 수는 없으니 그걸 외부로 돌려 화살을 여자한테로 향한거죠. 여자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여자가 이어서 말한다.
“그래서 이제 여자들만 만나면 몸이 견딜 수가 없나보죠? 억울해서?”
팩맨은 다시 좀 얼굴이 붉어진 듯 보였다.
“그러는 당신은 정상인가요?”
“자자, 여기서 얼굴 붉힐 건 아니죠. 다 같은 고민하는 사이 잖아요”
블루가 중재에 나섰다. 이어 여자가 말했다.
“...제가 너무 감정적이였던 것 같네요. 좀 답답하기도 하고. 죄송해요. 팩맨님. 나름대로 고충이 있을텐데.”
팩맨은 고개를 숙였고 여자가 이어말한다.
“제 이야기 차례네요. 닉네임은 유코. 저는 평범해요. 참깨 알러지에요. 참깨.”
“아무리 평범한 것도 자기 이야기가 되면 특별한 것이 되죠”
“참깨. 맞아요. 저한텐 특별해요. 어렸을 때 김밥에 들어간 깨를 먹고 토하고 난리도 아니였는데 내가 이 작은 것에 알러지 반응을 보인다는 걸 안 것도 최근이에요. 그냥 속이 항상 예민하고 안 좋은 줄 알았죠.”
“원인을 알기 어렵죠.”
“제 알러지를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아요. 아직 어른들 중에는 무슨 알러지를 패기로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분도 많고. 그러다 거품 물고 쓰러지면 가장 도망갈 사람들이 말이에요.”
“참깨 하나가 그렇게 만들 수 있다고 그냥 인정하면 되는데 이해하려고 하니까 그런 것 같아요.”
“자기 세계에서 경험했던 것만이 진리인 사람들. 직접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은 다 거짓이라고 말하죠.”
여자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간다.
“사실 제가 직설적인 편이라 말을 막 하는 편이에요. 아니다 싶으면 아니다, 라고 말해요.”
“그게 맞는거죠.”
“그래서 적이 많아요. 적이 많고 실제로 절 죽이려고 한 사람도 있었고요.”
“죽여요?”
블루와 팩맨이 동시에 말했다.
“오늘 중에 가장 격앙된 반응이네요. 네, 무슨 원한인지는 모르겠는데 암튼 죽을 뻔 했어요. 중학생 때급식을 먹는데 저는 항상 재료를 체크하거든요. 그날 메뉴가 제가 좋아하는 짜장밥이 나왔어요. 싹싹 긁어서 먹었는데 한 친구가 다가오더니 맛있냐고 묻더라고요.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했죠. 그러더니 깔깔 대면서 웃는거에요. 허리가 뒤로 젓힐 정도로.”
“설마.”
“웃음소리를 듣다가 갑자기 숨이 막혔고 발작을 하기 시작했어요. 옆에 있던 선생님이 심폐소생술을 하고 119가 도착해서 살았죠. 조금만 늦었어도 죽었을 거에요.”
“그럼 진짜 짜장밥에 참깨를 넣었다는말이에요?”
“제가 육안으로 봤을 때는 참깨가 없었어요. 아마 가루로 갈아서 넣었겠죠. 하지만 제가 다 먹었고 증거는 없어요. 그 살인미수 친구도 정말 혐의 없음이 됐어요.”
“말도 안돼. 사람을 죽이려 했는데!”
말도 안돼, 라고 원고지를 덮으며 A가 말했다. 초조하게 그의 입술을 바라본다. 이건 알러지로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너무 없잖아 라며 나머지 글을 읽어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말한다. 나는 원고지를 괜히 뒤적거린다.
블루의 소와 팩맨의 여성혐오와 유코의 살인미수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무슨 생각으로 글을 쓴거야? 라는 말에 나는 그냥, 재밌잖아 라고 말했다. 일단 진짜 알러지가 있는 사람부터 만나봐.
너는 알러지 있어?
나는 없어. 아,
뭐, 왜.
있다면 너 정도 일까.
A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자리에서 일어난다. 원래 팩맨이 유코의 밥에 참깨를 넣고 그런 밥을 블루 안에 있던 소의 영혼이 알아챈다는 결말로 가려고 했는데.
다시 써야 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