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는 어떻게 캣맘을 죽였을까
A는 아침 늦게까지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이불을 덮고서는, 그냥 지금을 무시하고 싶은 심정으로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 빛의 잔상이 깜박거린다. A는 무서운 일이 생기면, 먼저 눈을 감곤 했다. 보이지 않으면, 사라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아침 식탁은 여전했다. 엄마는 말도 안되는 솜씨로 요리를 해놨고, A는 그걸 먹어야 했다. 언젠가부터 아빠의 건강관리를 위한다면서 풀 요리들이 식탁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깨작깨작 좀 먹지 마라, 라고 듣는 잔소리도 그때부터였다. 왜 먹기 싫은 걸 만드는지 A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걸 먹으면 불행해질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풀 한 젓가락을 들어 입 속에 넣는 그 순간부터 말이다. 언제나 해왔던 반찬 투정은 그런식이었다. 그냥 안 먹을래 - 라고 작게 중얼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 A 뒤에서 엄마가 짜증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밥 이렇게 남기면 어째! 그건 그렇고 너, 숙제 다했어?”
A는 할 것이 많았다. 아니, 하고 싶은게 많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것이 엄마가 차린 풀때기를 먹는 것도, 월요일까지 가져가야 하는 과제는 절대 아니다. A는 아파트 옥상에 아지트를 만들어놓고 친구들을 부르곤 했다. 그 동네에서 만난 한살 어린 B군과 K군이었다. 그들에게 A는 대장 노릇을 했다. 집에서 나가고 싶다는 한가지 공감대가 그들을 집결하게 했다. 평균 여덟살의 반항이었다.
“다른 얘들은 집에서 컴퓨터 다 시켜주는데, 우리 엄마 때문에 죽겠어.”
“야, 우리 엄마는 더해. 어제는 우와 진짜…”
B군과 K군의 대화를 듣던 A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둘은 그런 A를 쳐다봤는데, 그 후에 A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야, 집에서 컴퓨터 하는게 좋냐? 답답하지 않아? 그냥 밖에서 노는거야. 여기에서 아무도 못 보는 곳을 찾아서 우리 아지트부터 만드는거야.”
“아지트?”
“그래. 그냥 우리 하고 싶은거 할 수 있는 곳."
첫번째 후보는 지하 주차장이였다. 접근성은 좋았지만, 너무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다. 두번째 후보는 아파트 놀이터 옆에 있는 작은 실내 공간이였다. 하지만 알고보니 경비 아저씨에게 허락을 받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허락을 받아야 하는 아지트 같은 건 없다. 마지막으로 그들의 눈에 들어온 건 아파트 옥상이었다.
“형 여기 들어가면 안되는거 아냐?”
출입금지라고 빨갛게 쓰여있는 문을 보며 B군이 말했다.
“야 봐봐, 우리가 들어가고 난 뒤에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걸로 우리 아지트가 되는거잖아. 어때!”
A의 말이 맞았다. 옥상에는 아무도 올라오지 않았다. 경비원 아저씨는 지상만 돌 뿐이었다. 그때부터 집을 탈출하고 싶으면, 옥상으로 올라왔다. 모두 엄마에게는 서로의 이름을 대며 놀러간다는 말을 했다. 절대 어디로 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재미있게도 그 어떤 부모도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들은 옥상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각자 피아노 학원, 태권도 학원, 미술 학원을 갔다가 모두 옥상으로 집결했다. 집에서 만화책을 가지고 와서 돌려보기도 했고, 휴대용 게임기를 실컷 하기도 했다. 어느날은 용돈을 받은 K군이 과자파티를 열어주기도 했다. A가 문득 물었다.
“너 요즘 학교에서 뭐 배우냐?”
“음… 생각나는게 없네 오늘 뭐 배웠지?”
“야, 형이 좀 알려줄까?”
A는 또래와 조금 달랐다. 한번 본 것은 거의 다 암기할 수 있었다. 이보다 어렸을 때는 엄마 주도로 영재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여느 영재가 그렇듯 A는 자신이 좋아하는 건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지만 그 외에는 보통 학생들보다 낮은 성취도를 보였다. 자신의 아이가 저 옆집의 M군, 친구 아들인 I군, Y군보다 뒤쳐지는 걸 엄마는 더는 볼 수 없었다. 영재교육은 딱 거기까지였다. A는 그냥 평범한 아이가 되었다.
A가 집에 내려갔다 가지고 온 것은 벽돌과 깃털이었다.
“형 그거 가지고 뭐할라고?”
“너 갈릴레오라고 아냐?”
“갈릴레오? 나 그거 알아. 위인책에서 봤어”
“갈릴레오가 뭐 한 사람인데?”
“흠.. 뭐였지. 나 아는데… 아! 지동설?”
“오 제법인데. 오늘은 그 갈릴레오의 유명한 실험을 재현해보겠다”
A가 좋아한 것은 과학이었다. 언젠가 학교 과학책 뒷부분에, 선생님이 잠깐 훝고 지나간 부분에 갈릴레오의 실험이 있었다. A는 동생들에게 이 실험을 보여주면 굉장히 신기해할 거라고 생각했다. 한 학년 위의 위엄을 보여주리라고.
“이거 봐봐. 벽돌이랑 깃털이야. 이 두개를 떨어뜨린다고 하면 뭐가 먼저 떨어질까?”
“벽돌! 벽돌부터 떨어지지!”
“진짜?”
“벽돌이 더 무겁잖아!”
“내기할래?”
“응! 뭐 걸건데?”
“대장 자리”
A는 옥상 옆의 난간으로 다가갔다. 벽돌과 깃털을 한 손에 하나씩 들고서.
“아래 잘 보고 있어봐. 지금 떨어뜨릴테니까. 뭐가 먼저 떨어지는지”
“응!”
“그럼 떨어뜨린다!”
벽돌과 깃털이 동시에 허공에 떨어졌다. 그런데 바람이 많이 부는 탓에 깃털을 다른 곳으로 날아가버리고 말았다. 저 밑 바닥에는 벽돌이 떨어지는 소리만 들렸다. A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아아 이번 건 취소야. 바람을 계산 못했어”
“….형”
K군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A는 K군이 바라보고 있는 곳을 내려다봤다. 어떤 아주머니가 누워있았다. 그 옆에는 벽돌이 있었다. 그리고 피가 그 위에서 보기에도 흥건했다.
한동안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깨닫지 못했다. A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그런 형을 두고 B군과 K군은 먼저 집으로 돌아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밑에서 비명소리가 났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A는 집으로 내려갔다. 엄마는 저녁을 만들고 있었다. A는 그대로 침대에서 누워 일어나지 않았다. 이불을 덮고서는, 그냥 지금을 무시하고 싶은 심정으로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 빛의 잔상이 깜박거린다. A는 무서운 일이 생기면, 먼저 눈을 감곤 했다. 보이지 않으면, 사라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