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세시
우리 부부는 한 달 만에 결혼식을 치렀다. 결혼 이야기가 나오고 딱 한 달 만에 벌어진 일이다. 사건의 발단은 남자친구의 갑작스러운 이직에서 비롯되었다. 그를 채용한 곳이 미국에 있었기에, 우리의 관계는 자연스레 변화를 맞이했다. 어른들 소개로 만나 일 년 동안 교제 중이던 우리에게는 결혼을 하긴 할 텐데 그게 언제가 될 것인가가 제일 큰 문제였다. 결혼식을 올리고 같이 들어가느냐, 남자친구 먼저 들어갔다 나중에 결혼하고 같이 들어가느냐.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온 결혼 이야기는 비자 문제와 딸이 한 살이라도 일찍 결혼하기를 바라던 부모님의 의견과 환상적으로 맞아떨어졌다. 프러포즈도 없이 시작한 결혼준비는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식장도 마침 비어 있었고, 살 집과 세간살이가 필요 없던 우리는 정말 급작스럽게 식을 올렸다. 그렇게 우리 가족이 탄생했고, 나도 갑작스레 일을 그만두었다.
그렇게 공식적인 9년의 회사생활을 정리했다. 항상 바라왔던 이별이었다. 잦은 야근과 주말출근. 그 안에서 다른 대책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쳇바퀴 돌듯 지내왔던 익숙한 시간들. 회사 생활은 버거웠지만, 한 사람의 몫을 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하나의 지표가 되어주었기에 포기할 용기도 가지지 못했다. 부끄럽지만, 그 시절 나는 그랬다. 그렇다고 그 9년이 마냥 힘들지만도 마냥 지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보람도 즐거움도 희열도 재미도 있었기에 그토록 힘들어하면서도 꾸역꾸역 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맞이한 끝을 모를 휴가는 너무나 달콤했다. 그 시절 가장 좋아하던 시간은 오후 세시였다. 노곤노곤해지던 그 시간이면 으레 창가에 앉아 햇살을 맞으며 책을 읽거나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여유로움인 듯 천천히 그 시간을 음미하고 싶었다. 사치스럽던 오후 세시는 얼마 후엔 태교시간이 되거나 낮잠시간으로 바뀌었다.
사치스러울 만큼 여유롭던 그 시간도 오래가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아이는 나에게 또다시 9년 동안의 오후 세시를 선물해 주었다. 그보다 더 다이내믹한 시간이려나. 그녀는 그 어떤 상사보다도 빡빡하고 예민했으며 일절의 휴식도 용납하지 않았다. 내 인생의 최고의 분주함을 보내다 문득, 꿈같던 얼마 전의 오후 세시를 떠올려 본다. 더 아름답게 미화되어 가던 그 여유로움들.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여유로움이 아닌 반짝이는 것들로 가득 채워야지. 그렇게 나는 다시 그때의 추억들을 양분 삼아 알록달록한 현실로 돌아온다. 언젠가 지금의 알록달록함도 ‘지나간 소중함’으로 남을 테니, 이번엔 부끄럽지 않게 하루를 하루를 채워 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