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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nautes 프리나우트 Jun 16. 2023

그녀는 그렇게...


유아는 조용한 병실에서 눈을 떴다. 조명을 받아 환한 실내에는 가구 하나 없었다. 내려보는 발끝너머 침대 프레임마저 하얀색이었다. 물론 덮고 있는 이불도. 어디가 천장이고 바닥인지. 침대가 시작되는 곳은 어디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잠시 왜 이곳에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멍하게 머리위만 바라보았다. 노려보고 있으면 잊어버린 기억이 되살아나 하얀 천장 위를 흘러 다닐 것만 같았다.


희미하게 아랫배에 통증이 느껴졌다. 뻣뻣한 고개를 돌려보니 왼쪽 팔에 링거가 꽂혀 있는 것이 보였다. 투명한 약이 똑. 똑. 가느다랗고 기다란 줄을 타고 흘러내렸다. 몸이 침대에 녹아내려 딱 달라붙은 것 같았다. 팔다리가 머리로 내리는 명령을 거부했다. 유아는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내버려 두고 조각난 퍼즐처럼 둥둥 떠다니는 기억을 억지로 짜 맞혔다. 자꾸만 눈이 감겼다. 몽롱해지는 와중에 노골노골했던 찜질방에서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회사에 휴가를 내고 돌아와 오랜만에 찜질방에 갔었다. 뜨뜻한 바닥에 몸을 지지며 뜨거운 밤을 불태우겠노라 다짐했다. 특별한 시간을 위한 찜질방을 고르는데만 해도 한참이 걸렸다. 깨끗한 시설. 분위기 있는 내부 인테리어. 맛있는 음식. 혼자서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사우나와 목욕시설. 따지고 따져 고른 찜질방은 유아의 마음에 들었다. 호캉스 아닌 찜캉스랄까. 옷을 갈아입고 찜질방에 들어서며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기분이 좋아서인지 모든 음식이 입에 맞았다. 평소보다 많이 먹었음은 물론이고 잘 마시지 않는 맥주까지 마셔댔다. 노골노골해지는 몸이 기분 좋았다. 그대로 바닥을 구르다가 사우나를 하고 나오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같이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는 개운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유아는 관심도 없던 사우나에 들어가고 싶어져 바닥에 눌어붙었던 몸을 벌떡 일으켰다. 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오기만 하면 근심 걱정은 물론이고 아픈 곳도 줄줄 흐르는 땀과 함께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망설임 없이 사우나 문을 열었다. 소리 없이 지글대는 공기 속으로 한걸음 딛일 때에는 첫 도전에 대한 희열에 몸이 떨렸다. 


안 하던 짓은 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거기 들어가는 게 아니었다. 유아는 5분을 견디지 못했다. 뜨거운 공기에 놀란 몸은 숨 들이마시는 것을 거부했다. 있는 힘껏 억지로 들이마신 숨은 폐를 녹여버릴 것 같았다. 용수철에 튕기듯 일어나 나오는 순간 가슴속이 시원해졌다. 안도의 한숨을 내 쉬려고 했다. 세상이 빙글 돌았다. 몸의 감각이 이상했다. 발이 어디를 딛고 있는지 느껴지지 않았다. 언뜻 공중에 이상하게 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저 앞에 꺼진 티브이에 비친 것 같기도 했다.


다행히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빠르게 대처해 주었다. 찜질방에는 삶의 경험을 오래 쌓은듯한 머리가 희끗희끗한 분들이 많았다. 그분들은 위기상황에 당황하지 않았다. 마치 원래 하던 일인 듯 자연스럽고 신속했다. 덕분에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유아는 뇌졸증이었다. 머릿속 혈관이 급격한 온도변화를 이겨내지 못하고 바늘로 쑤신 풍선처럼 뻥 하고 터져나갔다. 구급대원들은 유아를 병원으로 옮겼다. 그들 중 누군가 일부러 그랬는지 하필이면 산청(産庁)과 연계된 병원이었다. 


산청(産庁).

출산장려를 위해 나라에서 만든 기관이었다. 고령인 비율이 40%에 가까운 메가고령 사회에서 젊은이의 비율을 높이겠다며 대대적인 홍보를 했다. 갓 결혼한 부부, 다둥이 세대등에 대한 지원을 아낌없이 했다. 그러나 출산율은 쉽게 높아지지 않았다. 돈만 가지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문에 의하면 뒤에서 출산에 문제가 없는 젊은 여자들을 데려다 대리모를 시킨다고 했다. 대리모의 대부분은 주로 연고지가 없는 이들이었다. 알게 모르게 돈을 받고 정자와 난자를 기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제법 손에 들어오는 돈이 짭짤하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유아는 기억 속에 늘 혼자였다. 부모님이라는 존재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산청 산하에 있는 병원에서 유아는 뇌수술과 동시에 인공수정 시술도 받았다. 수정이 성공하기까지 4번에 걸친 시술이 있었다. 그동안 회복을 겸해 약과 영양제를 맞아야만 했다. 정신이 가끔 돌아오긴 했지만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깨닫기에는 너무 많은 약에 취해 있었다. 산달이 되어 수술로 아이를 출산하기까지 일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유아는 전문 간호사의 극진한 돌봄을 받았다. 고령사회에서 보석 같은 존재인 젊은이를 출산할 몸이었다. 


유아는 건강한 3.5 킬로그램의 여자아이를 출산했다. 이 여자아이는 훗날 훌륭한 대리모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터였다. 출산을 마치고서야 늘 흐리멍덩하던 머릿속이 맑아졌다. 왼쪽 팔에 너줄너줄 달린 수액줄과 오른쪽 팔목에 채워져 있는 이름과 날짜가 적힌 팔찌가 낯설었다. 오늘이 며칠일까 생각하며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멀리서부터 달그닥대는 소리가 다가오더니 바로 옆까지 왔다. 돌아본 곳에는 작은 침대와 그 위에 누워 미라처럼 돌돌 말려 진 아기가 있었다. 


"수유 시간입니다. 일어날 수 있겠어요?"


간호사인듯한 여자가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하고 말했다.


"여..."


말을 하려는데 온몸의 힘이 어디론가로 주욱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뻥긋 대는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일어나려고 했던가. 여전히 누운 자세에서 움직일 수가 없다. 힘을 주면 배가 찢어져 나갈 것 같은 아픔에 무서웠다.


"기억 안 나시나 보다. 어제. 제왕절개로 출산하셨습니다. 아직 못 일어나실 거예요. 옆으로 조금만 누워서 수유 연습 좀 해볼까요. 우리?"


유아는 영문을 모른 채 간호사의 손놀림에 따라 돌덩이 같은 몸을 옆으로 돌렸다. 내장이 밑으로 쏟아져 내리는 것 같은 착각에 비명이 튀어나왔다. 힘이 없어 신음에 가까웠다. 


"많이 아프시죠? 진통제 좀 더 넣어드릴게요. 수유 좀 하고요."


바로 옆에 한 줌도 되지 않을 것 같은 작은 생명이 눕혀졌다. 간호사가 눈을 감고 있는 아기의 입을 손으로 톡톡 건드리자 입이 벌어져 쫓아왔다.


"나이스타이밍. 지금 딱 배고플 때 잘 데리고 왔네. 자, 한번 물려볼게요."


간호사는 손가락으로 아기의 뒷 목을 받치는가 싶더니 고개를 살짝 뒤로 해 유아의 젖꼭지에 아기의 머리를 붙였다. 아기의 입이 유아의 맨닥한 젖꼭지를 야무지게 물고 쪽쪽 빨아댔다. 아직 힘이 없어 자꾸 빠지긴 했지만 그때마다 간호사가 아기의 머리를 유아의 가슴으로 붙였다.


"생각보다 잘 먹네. 유아씨, 정말 좋아요. 이제 또 세 시간 뒤에 다시 해봅시다. “


유아는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다시 눕혔다. 뭘 했다고 땀이 뻘뻘 났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침대로 옮겨지는 아기를 지켜보았다. 좀 더 가슴팍에 붙여 놓고 싶었다. 따뜻하고 촉촉한 입의 감촉이 남아있었다. 손으로 쓰다듬어볼 걸 그랬나 싶어 팔을 들어보았지만 이미 문쪽으로 향해가는 중이었다. 이게 모성이라는 건가. 그렇게 그녀는 엄마가 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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