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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nautes 프리나우트 Jul 19. 2023

BLT의 B

그 집 BLT는 천국의 맛이다. 적당히 짭짤하고 딱 고기가 부드러울 만큼만 적당히 기름이 들어간 베이컨. 입 안에서 사각대는 양상추와 달콤한 토마토. 3박자가 어우러져 자꾸 생각나게 만든다. 요즘은 눈을 뜨면 아침을 먹으러 샌드위치 집으로 향한다. 먹고 나면 내일 아침 먹을 샌드위치 생각에 들떠 하루가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를 지경이다. 특히 그 베이컨. 쫄깃하면서도 부드럽게 씹히는 특유의 비릿한 돼지냄새 같은 게 나지 않는 고기가 신의 한수이다. 기름기가 적재적소라고 불릴만한 곳에 박혀 있는 것이 슈퍼에서 파는 허접한 베이컨과는 차원이 다르다.


언젠가 베이컨을 어디서 사가지고 오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혹시 나도 살 수 있다면 집에 쟁여 놓고 먹고 싶었다. 하루 세끼 반찬에 베이컨을 넣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 적까지 있으니... 인상 좋은 샌드위치 집주인은 이빨이 다 드러나도록 환하게 웃으며 자신의 팔을 툭툭 쳤다. 수제라고 했다. 알려달라는 손님이 제법 오는데 기업비밀이라 어찌할 수가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은근슬쩍 귀에 대고 말하는 그의 태도와 입김에는 자신감이 철철 넘쳐흘렀다. 재료를 사다가 차례대로 넣고 팔기만 하는 줄 알았더니 베이컨을 일일이 손으로 만든다니. 요즘 보기 힘든 제대로 된 가게였다. 샌드위치 휴일까지 겹쳐 꽤 길게 쉬었던 추석 연휴. 나는 베이컨을 좀 팔아달라고 하루종일 가게에서 졸랐다. 사탕이 먹고 싶어서 달라는 어린 꼬마라도 된 것 같았다. 


보다 못한 가게 주인은 곤란한 얼굴을 하더니 특별히 두껍고 크게 자른 샌드위치를 만들어주었다.


“미안하지만 이거 먹고 진정 좀 해요. 베이컨은 말인데. 내가 특별히 고안해 낸 레시피로 만드는 거라서 따로 팔지는 않아요. 정말 미안해요.”


팔뚝만 한 샌드위치를 받아 들고 나는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공짜로 이렇게나 큰 샌드위치를 얻었으니 반의 반쯤은 성공한 셈이지.


아끼느라 싱크대 서랍 속에 고이 모셔두었던 커피를 꺼내어 정성껏 갈았다. 경아와 하와이로 여행을 다녀오며 사온 커피였다. 바리스타 공부를 했던 경아의 강력추천으로 산 희소한 커피라 정말 소중히 아껴먹었다. 커피의 고소한 향이 집 안에 퍼졌다. 군침이 돌았다. 커피 향은 샌드위치의 향과 잘 어울렸다. 훈제된 고기의 향과 살짝 시큼하면서 고소한 향이 뱃속을 뒤흔들었다. 향을 음미하며 천천히 내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음. 이 맛이야.


기름종이로 쓱쓱 둘러 사탕봉지처럼 끝을 돌돌 말아 포장해 놓은 샌드위치를 정성스레 꺼냈다. 도마에 올리고 깔로 자르기 전 참지 못하고 한 입 깨물었다. ‘으드득’ 이상한 소리가 나며 입 안에 딱딱한 것이 느껴졌다. 먹다만 샌드위치를 내려놓고 입에 있는 것을 뱉어냈다. 반지... 보석 같은 것이 테두리에 쭉 박힌 반지였다. 어디서 본 것도 같았다. 안 쪽에 글자 같은 게 쓰여 있었다. ‘MJ ♡ KI’ 아... 오소소 돋는 소름에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건.. 이건... 내가 일주일쯤 전 경아에게 프러포즈하면서 준 반지였다. 생각해 보니 매일 하던 경아와의 전화통화를 하지 않은지 일주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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