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한 얼굴
미안한 얼굴/이수미
적어도 백 개는 되어야지,
감추고 있는 얼굴들 말이야
남들은 두 얼굴을 가진 인간이라고
핀잔을 주겠지만 살다 보면
한 얼굴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들 빈번하다
표정으로 만나고
표정으로 이어져나가는 관계 속에
그때그때 돌려 막아야 할 얼굴이 없다면
넘어지고 깨지는 관계 허다할 것이고
표정에 갇힐 일 잦아질 것이다
부모의 부음을 듣고도 무대 위에서 끝까지 웃겨야 했다던 어느 개그맨의 이야기도, 불리해지는 점수를 숨겨야 하는 운동선수의 표정도, 몇 년 만에 찾아와 청첩장을 내미는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친구에게도, 골고루 써먹을 수 있는 그런 얼굴 몇 개쯤은 지녀야 모나지 않은 사람 되지 않을까
가끔 너무 자주 바꾸고 부려먹은 표정 때문에
얼굴에게 미안하기도 하지만
왜 천의 얼굴이라는 말 있잖은 가
딱 그 말대로
한 천 개의 얼굴은 갖추고 있어야
세상 살아가는 일 수월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