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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우미양가 Sep 07. 2024

산방 일기

미안한 얼굴


미안한 얼굴/이수미


적어도 백 개는 되어야지,

감추고 있는 얼굴들 말이야

 

남들은 두 얼굴을 가진 인간이라고

핀잔을 주겠지만 살다 보면

한 얼굴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들 빈번하다


표정으로 만나고

표정으로 이어져나가는 관계 속에

그때그때 돌려 막아야 할 얼굴이 없다면

넘어지고 깨지는 관계 허다할 것이고

표정에 갇힐 일 잦아질 것이다

 

부모의 부음을 듣고도 무대 위에서 끝까지 웃겨야 했다던 어느 개그맨의 이야기도, 불리해지는 점수를 숨겨야 하는 운동선수의 표정도, 몇 년 만에 찾아와 청첩장을 내미는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친구에게도,  골고루 써먹을 수 있는 그런 얼굴 몇 개쯤은 지녀야 모나지 않은 사람 되지 않을까

 

가끔 너무 자주 바꾸고 부려먹은 표정 때문에

얼굴에게 미안하기도 하지만

왜 천의 얼굴이라는 말 있잖은 가

딱 그 말대로

한 천 개의 얼굴은 갖추고 있어야

세상 살아가는 일 수월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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