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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gal May 16. 2021

2021년 18-19번째 주

붕 뜬 마음 혹은 붕붕 띄우는 마음

드디어 새로 이사갈 집의 키 뭉치를 넘겨받았고 부엌 계약을 완료했으며 회사 동료들의 이삿날 시간을 빌려놓았다. 마침 동료 중 한 명의 친구가 큰 트럭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특별히 차를 더 빌리고 할 필요도 없고, 다들 일꾼들 한 명씩을 더 데려오기로 해서 큰 문제 없이 이사를 진행할 수 있을 듯 하다. 이 건물 이웃들도 아침에 짐을 밖으로 내놓는 걸 도와주기로 했으니, 이모저모로 고작 1인분 이사에 꽤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한국에 있었으면 부담없이 부를 가족과 친구들이 있었을테고 바로 내일 이사한대도 가능하다고 할 업체들도 있었을 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에서는 도움을 받을 일이 거의 없었었는데, 이렇게 해외에 나와 살면서 주거지를 자주 옮기다 보니 도움받을 일이 이따금씩 생긴다. 믿고 부를 사람들도 잘 없는데 그때마다 도움을 주는, 가깝지 않은 사람들이 나타난다. 이러면서 사람들과도 가까워지고 한 명 한 명 더 알아가고 그러는건가. 이번에 이사가면 일 밖의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사귀면서 발을 좀더 땅에 자주 디디는 삶을 살아보겠다고 다짐한다. 다음 격주정리는 아마도 새로 이사간 집에서 쓰게 될 예정. 



<숨결이 바람될 때> 


드라마 틀어놓고 빈둥거리는 시간이 없어지니 빈 시간이 너무 어색해서 이북리더기들을 찾았고, 그렇다고 집중력을 거의 2배나 더 요하는 영문서적이나 타 언어 서적은 부담스러워 킨들을 저기다 내려놓고 크레마를 들었다. 킨들을 쓰다가 크레마를 쓰면 예전에 가끔씩 한국 공인인증서 때문에 쓰던 2008년형 넷북이 생각난다. 디자인도 나쁘지 않고 기계도 여전히 새것인데, 작동하는 방식이 거의 10년 전 수준이라 답답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나는 시간이 많으니깐 그 불편함 속에서도 넷플릭스 트레일러 눌러보면서 뭐 볼까 고민하듯이 폰 예스24 북클럽에서 표지를 뒤적거리면서 북클럽에 추가한 뒤 크레마로 가서 다운로드를 하고 첫 장을 여러 번 뒤적거리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찾은 이 책, <숨결이 바람될 때>. 

 

한국 드라마든 외국 드라마든, 드라마 꽤나 본 사람들은 이제 우리도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은 좀 안다고 생각하기 쉽다. 봉달희부터 하우스까지 우리는 꽤 많은 의사들을 봤으니깐. 매번 의학드라마들은 점점 더 리얼해지고 있고, 우리는 그만큼 더 열심히 보니깐.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난 아직도 몸에 대해, 병원에 대해, 의사들의 삶에 대해, 수술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신경외과 의사 폴 칼라니티가 폐암 말기를 선고받고 죽음을 앞둔 2년 간 써내려간 이야기다. 작가는 의사의 길로 들어가기 전에 문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결과론적으로 연결해보니, 이 솔직하면서도 생생한 이야기가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찾아보니 2016년에 나온 책이라 이미 읽을 사람들은 다 읽은 그런 책이어서 뒤늦게 이렇게 감탄하면서 이야기하는 게 좀 유난스럽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이 책을 읽게 되어 참 다행이다. 코로나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나는 많은 주변인들을 잃었고 그 주변인들이 누군가를 잃어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침 내 나이가 이제 슬슬 부고 알림을 받는 게 익숙해져야 할 시기여서일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부모님 모두를 잃은 아빠를 생각하면서, 나도 언젠가 부모를 잃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한동안 머릿속에 오래 남아 잠들 때마다 힘들었었던 2주가 있었다. 어렸을 때 한번 찾아온 "죽음"에 대한 깊은 생각이 여태까지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었었는데, 아마 저 시기가 바로 나에게 <죽음 인지, 파트 2>가 아니었나 싶다. 그런 시기에 읽은 이 책이 그래서 좀더 특별하게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죽음도 중요한 키워드였지만, 질병과 건강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고 든 첫 번째 테이크는 이기적이게도 '아프고 싶지 않다'였다. 아파서 병원에 가고 수술실에 들어가는 일련의 과정들이 피냄새가 나게끔 생생하진 않아도 사랑하는 가족들과 지인들, 병원에서 그 환자에게 관여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고 나니, 더더욱 아프고 싶지 않았다. 물론 나는 제법 건강하고 건강에 많은 신경을 쓰는 편이다. 조금만 피곤하고 힘들어도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들이 많아 미리 몸이 나에게 브레이크를 걸어주고 있고,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건강염려증도 있어서 :) 증상 검색도 자주 하고 의사선생님을 만나러 가서도 구체적으로 증상을 설명하고 도움을 구하는 편이다. 웃긴 건 이게 나이를 먹으면서 생긴 건 아니고, 어렸을 때부터 쓴 약도 잘 먹고 집에 있던 건강보조식품들도 기꺼이 챙겨먹고 그랬었다. 하지만 가끔씩 예고도 맥락도 없이 찾아오는 그런 병들이 있고 그 앞에서 우리는 많은 경우 할 수 있는 게 없다. 삶에의 의지가 막 엄청 강렬하지 않고 그렇다고 성취에의 욕구가 막 크지 않음에도 죽음이 두렵고 아픔을 피하고 싶은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에게는 폴 칼라니티처럼 누군가의 생사를 칼 끝에 쥐는 것 같은 중대한 직업이 없지만, 자신의 일을 대하는 태도는 배우고 싶었다. 칼라니티의 아버지도 의사였는데 한번은 한 환자가 랍스터가 너무 먹고 싶다고 하자 간호사들에게 이 환자에게 다음 식사 때는 꼭 랍스터를 가져다 주세요,하고 말한 뒤 환자에게 다시, 다음 번엔 랍스터를 먹게 될 텐데 혹시 그 랍스터가 터키 샌드위치처럼 생겨도 놀라지 마시라고 말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나도 내가 하는 일을 저렇게 대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일을 제대로 잘 해내면서도 그 일 너머에 있는 사람들을 볼 줄 아는 그런 자세. 대단한 성취를 이룰 트랙을 타고 가고 있진 않지만, 돌아봤을 때 부끄럽지 않은 그런 직업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같이.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 같은 분위기를 기대했다가 저렇게 다양하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임을 알아채고 나서는 책을 아껴 읽었다. 독후감을 이렇게 쓰면 '참 잘했어요' 도장 받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마인드맵 같은 감상이라도 남겨보는 건 조금이라도 더 잘 기억하고 싶을 만큼 좋은 글이어서다. 



테니스 레슨


내 모든 취미생활은 주로 그 취미활동이 멋있어보여서다. 책을 읽는 이유도 책 읽는 나를 좋아해서다. 테니스도 마찬가지. 테니스 공이 라켓에 맞을 때 나는 그 소리가 좋다. 배드민턴의 가벼움보다 테니스의 둔탁함이 더 좋다. 혼자 하는 다른 운동들과는 달리 공이 오면 곧장 반응해야 해서 그저 생각없이 몸이 먼저 움직이는 지점도 좋다. 하지만 무엇보다 테니스 하는 사람들의 쉐입이 맘에 들고, 테니스하는 내가 테니스 안하는 나보다 멋질 것 같은 게 이 취미의 가장 큰 동기다.


동기야 어찌 되었든, 무언가를 시작하는 건 내 취미이기보다 특기다. 2월의 어느 날, 날씨가 이렇게 우중충하다고 해서 나까지 우중충해질 수는 없다는 생각에 이것저것을 검색해보다가, 아 맞다 테니스! 하는 생각에 주변에 레슨이 있나 찾아봤고 초급 코스를 제공하는 곳의 온라인 등록창을 찾았고 마침 5월에 시작하는 게 있기에 코로나 걱정은 나중에 하고 미래의 나에게 뭔가 설렐 거리를 제공해주자는 마음에 곧장 등록을 했다. 시간은 역시 순식간에 흘렀고 첫 레슨이 시작하는 주에 나는 다시 한번 강사님에게 메일을 보내 확인을 했다. 뭐가 Aktuell인가요? 정말 레슨을 진행하긴 하는 건가요? 음성 결과를 들고 레슨에 가야 하는 건가요? 답은 간단했다. 원래는 8인 대상 강좌였는데 거리두기를 위해 4인 강좌로 바뀌어 진행될 예정이고, 나는 일찍 등록했으니 바뀐 룰에 상관없이 8인용에 해당하는 금액만 내면 된다고. 이럴 때 괜히 행복한 건 좀 후진가. 


독일어가 여전히 제대로 1인분 몫을 못 해내지만, 내가 요즘 시도하는 건 먹고 사는 문제가 걸린 곳이 아닌 데서 온전히 독일어만 사용하는 공간들을 늘려가는 것이다. 테니스 레슨도 그런 공간으로 잡았고 선생님한테 가자마자 독일어가 서투니 천천히 말씀해주시라고 미리 양해를 구했다. 선생님은 그래서 모션과 말을 정확하게 전달해주신다. 언어만 서툰 게 아니라 레슨 내에서 나만 왼손잡이라 선생님은 항상 왼손으로 다시 바꾸어 어떻게 팔을 써야 하는지 보여주신다. 


당분간 매주 토요일 아침을 자전거 타기와 테니스 레슨으로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장을 봐오는 걸로 정했고, 토요일이 좋아졌다. 원래도 좋아했는데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금요일 오후에 금요일이라고 신나서 마시던 술도, 내일 레슨할 때 힘들면 안 되니깐 특별히 금주령이다. 2주인데 이렇게 마치 엄청 오래된 리츄얼처럼 말하는 게 유난스럽지만, 뭐 어때. 이사하는 날이 토요일이라 레슨을 빼먹어야 하는 게 벌써부터 안타까운 걸 보니 나는 이 취미가 제법 마음에 드나보다. 


어제는 돌아오는 길에 큰 해산물 코너가 있는 마트에 가서 신선한 오징어와 연어를 사왔다. 오징어 파스타 레시피를 몇 개 찾아보고 오징어를 지중해식으로 요리할 때는 화이트 와인+올리브오일+마늘+오레가노+토마토면 되는구나를 배웠고, 특별히 내 요리에 관대한 내 입맛에 역시나 큰 만족감을 주었다. 연어는 어떻게 요리할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난 또 easy 같은 단어가 들어간 레시피를 찾아 간단한 무언가를 만들고, 오냐오냐하는 부모처럼 그걸 맛있다고 하며 먹겠지. 



 



이웃 친구 하나가 최근에 그란 카나리아에 다녀와서 예쁘게 그을린 피부를 보니, 백신도 안 맞고 돌아다닌 그 친구의 배려심 수준은 차치하고, 여행이 너무 가고 싶어졌다. 따뜻한 곳에서 수영하다가 음악 들으며 책 읽고 땀인지 바닷물인지 모를 축축함을 햇볕에 잘 말리고 시원한 와인/맥주/스프리츠가 든, 땀 흘리는 잔을 들고선 이게 인생이지 하고 싶은 마음. 그러면서도 한편 드는 생각은, 지금 이 제약이 많은 시기가 어쩌면 내가 그렇게 바라던 시기였던 것 같기도. 시간은 멈췄는데 나만 그 시간 속에서 움직일 수 있고 밀린 일들을 해내고 고요 속에서 내 시간을 충분히 즐기는, 어린 시절에 했던 그런 상상. 아마도 흘러가는 시간에 쫓기면서 정서적 여유가 없었던 10대와 20대 때의 내가 느꼈던 절박함 때문이었었지만, 아마도 좀더 여유가 생긴 지금의 30대인 나에게 다른 의미로 필요한 그런 재점검의 순간. 그런 재점검을 지중해 어딘가에서 했으면 참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한대도 새소리 배경음과 잠시 멈추어갈 수 있음에 감사하며 그 안에서 내 나름대로의 움직임을 끊임없이 시도하길 바라면서. 이쯤 되니 상황이 붕 떠 내 마음도 같이 붕 뜬 건지, 아니면 내가 계속해서 내 마음이 붕붕 떠다닐 수 있도록 밑에서 선풍기를 틀어놓은 건 아닌지 헷갈린다. 모두들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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