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기억의 보호색, 초록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

by 은섬


그것이 순식간에 나를 덮쳤다. 속도 방지턱도 없는 곳, 방향 표시등도 없었다. 그 강렬한 등장에 나는 이유도 모른 채 맹목적으로 빠져들었다.


지금은 시절인연이 되어버린 그녀는 내가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이었다. 키가 컸고 옷 입는 스타일이 좋은 데다 옷태까지 좋아서 나와는 다른 세상 사람처럼 느껴졌다. 마지막 만남(물론 그때는 그럴 줄 몰랐지만)에서 그녀는 초록색 맨투맨 티셔츠를 입었다. 그때의 공기와 온도, 습도까지 생생하다. 그때 나는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 오래지 않았기에 그녀가 내 소설에 관심을 보일 때면, 나는 진짜 작가가 된 것 같았다. 이후로 괜찮다고 느끼는 물건엔 빠지지 않고 초록이 있었다. 그때마다 과거의 그녀가 생각나는 건 덤이었다.


초록은 그저 색에 대한 취향의 문제라고 생각한 나를 멈칫하게 하는 일이 있었다. 기억 속의 초록은 흐릿해진 반면 나의 블로그는 봄을 맞아 초록으로 물들던 때였다. 배내골 트레킹을 다녀와 포스팅한 글에 이웃이 댓글을 달았다.


매번 볼 때마다 참 신기해요. 저는 산보단 바다 쪽을 더 선호하거든요. :)


그런가? 고개를 갸웃하며 과거를 더듬어보니 확실히 나는 바다보다 산을 좋아했다. 처음엔 바다가 친숙하지 않아 그런가 보다 했다. 바다는 10살이 넘어서야 겨우 가봤고 바닷물이 끈적인다는 것을 안 건 대략 10여 년 전이었으니까. 물론 10대 후반, 20대 초반에 ‘겨울바다’에 대한 로망으로 해운대 일대를 찾은 적이 있긴 했다. 그러나 나만의 충전 시간을 가질 때는 역시 바다의 푸름보단 산야(山野)의 초록이 편안했다.


이게 유년시절을 어디서 보냈냐가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저는 내륙에 살아서 바다보다 산이 좋거든요 ㅎㅎ 생선도 비린내 나는 등 푸른 생선보단 흰 살 생선을 좋아하구요.☺️


나름 꽤 합리적인 추론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웃의 댓글은 내 예상과 달랐다. 그도 내륙 출신이지만 자신은 바다를 더 좋아한다고 했다. 나의 친구도 똑같이 내륙에서 태어나 자랐는데도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광안리로 달려가더라. 그런 걸 걸 보면 태어나고 자란 곳이 바다나 산에 대한 호오(好惡)를 결정하는 건 아닌가 보다.


가장 최근 바쁜 일을 끝내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 곳도 숲이었다. ‘지관서가 울산대공원점’. 지관서가는 플라톤아카데미와 울산시가 마음을 모아 만든 숲 속 북카페다. 가보니 철학을 위시한 인문학 도서가 가득했다. 갈색의 책장들, 그곳을 비추는 노르스름한 조명과 대비되어 내가 앉은자리 너머의 신록은 더욱 푸르렀고 점점이 만개한 꽃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곳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자니 지금의 내게 무한한 시간이 있길 바라게 되었다.


이후엔 그곳을 나와 대공원의 메타세쿼이아 길을 걸었다. 처음 찾은 그곳은 맨발 걷기가 가능한 곳이었다. 망설임 없이 신발을 벗고 맨땅을 딛자 금세 발의 열기가 빠져나갔다. 최근 요통이 스치고 간 몸 곳곳에서 힘이 빠지며 몸이 느슨해졌다. 머리맡의 초록이 마음을 진정시켰다. 덩달아 예민해지는 후각과 청각이 더 많은 즐거움을 주었다.


이런 편안함은 아마도 나의 유년 시절과 연결되어 있을 터다. 농사짓는 부모님의 일을 거들며 자랐다. 뜯어도 뜯어도 끝나지 않는 상추나 여린 손으로 닦아야 했던 가시 돋친 오이의 초록빛은 내게 너무 당연하고 또 때론 지긋지긋했다.


내게 인상 깊었던 건 흙탕물의 갈색, 모든 소음을 덮은 눈의 흰색 같은 거였다. 그러므로 어른이 돼서 절대 농부와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시골에서 사는 일은 없는 거라고 장담하는 건 그때로선 매우 적절한 다짐이었고 자신감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나의 유년시절을 물들였던 초록에 이렇듯 이끌릴 줄. 이렇게 위로를 받을 줄. 지금껏 내내 내가 발 딛고 있던 길이 초록이었음도 하마터면 모를 뻔했다.


중년들이 도장 깨기 하듯 전국의 산 정상에 오르는 걸 나는 아직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어차피 내려올 산을 죽을 둥 살 둥 오르는 지도 알지 못한다. 사진에 담기지 않은 그들의 고통을 이해해 보려 할 적마다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어린 시절 나의 아버지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병증으로 자리를 보존하곤 했다. 자식은 줄줄 딸렸으면서 구들장을 이고 누운 남자의 맘은 어땠을까? 그는 수시로 잠에 빠져들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연신 불안했다. 저러다 어느 날 눈을 뜨지 않을 것 같아서. 아버지의 잠이 죽음과 익숙해지는 어떤 길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중년들은 끊임없이 산에 오르고, 아버지가 지치지도 않고 잠을 잤던 날들이 내게 주는 메시지는 하나였다. 죽는다는 것은 결국 살이 흝어지고 종내에는 뼈마저 흙의 일부가 되는 일. 즉, 자연 속으로 돌아가는 것. 정해진 결말을 받아들이기 위해, 두려움을 딛고 자연에 더 가까워지며 그 일부가 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한 건 아닐까? 나의 초록도 내 나름대로의 자연과 나아가 죽음과 가까워지는 방법이었다는 생각을 이제서야 한다.


초록에 압도되는 초여름이 좋다. 오늘도 나는 푸르기만 한 벚나무 터널 아래를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쏟아지는 햇빛이 내 팔 위로 떨어져 통 튕기더니 바닥으로 포르르 구른다. 까만 아스팔트 위 잎들이 만들어낸 그늘 위로 햇볕이 점점이 떨어져 있다.


충만한 마음에 자전거를 멈추고 그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 안에는 지금껏 이어온 기억들도 함께였다. 빙긋 미소 지은 나는 다시 천천히 페달을 밟아 천천히, 초록 속으로 녹아든다.



** Image by �♡�♡� Julita �♡�♡� from Pixabay


keyword
이전 17화글 쓰는 아줌마가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