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atles
고등학교 시절, 나는 낯선 나라로 첫 이민을 떠났다. 내가 다니게 된 국제학교는 언어와 문화가 다른 각국의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특히 자주 이동하는 외교관 부모님들을 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고, 이곳은 그들이 또 다른 세계에서의 대학 생활을 준비하는 역동적인 공간이었다. 희망은 있지만 확신은 부족했던 그 시절, 학교 운동장 앞 벤치만이 유일하게 변치 않는 장소로 남아있었다. 그 벤치는 매일 통기타를 메고 나타나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마다 비틀즈의 노래를 연주하던 일본인 친구의 지정석이었다.
그의 연주는 오가는 아이들의 배경음악이자, 모두의 감정을 순수하게 연결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원래도 록 음악을 좋아했던 나는, 그 친구를 통해 자연스럽게 비틀즈의 세계에 발을 내딛게 되었다.
그 친구는 학교 아이들에게 비틀즈의 노래, 가사, 그리고 역사를 포함한 많은 것을 설명했다. 언어의 장벽이 있었음에도, 나도 모르게 그 이야기에 심취해 더 많이, 더 깊이 알고 듣고 싶어 했다. 음악은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깨부술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으니까. 그렇게 나의 플레이리스트는 첫 싱글 <Love Me Do>로 시작된 비틀즈의 장대한 역사와 함께하기 시작했다.
비틀즈의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음악을 감상하는 행위를 넘어선다. 나는 그 세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노래 속에 감춰진 1960년대 영국 사회의 분위기와 역사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전 앨범의 노래를 외우고, 리버풀의 노동계급에서 시작된 네 자유로운 청년들의 인생 궤적을 탐구하는 나의 미친 덕질은 마치 역사를 거슬러 오르는 시간 여행과 같았다.
무엇보다도 비틀즈의 서사는 나의 삶의 시기들을 관통하며, 사랑의 철학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어디에서나 논쟁을 몰고 다니던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관계는 예술과 사랑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세기의 드라마였다. 그들의 파격적인 사랑과 이별, 재결합의 서사를 보며 나는 인간으로서의 고통과 기쁨을 삶의 예술로 날것 그대로 드러내는 그들의 진정성과 용기에 감동하기도 했다. 아마도 그들에게 인간적 사랑과 예술적 사랑의 경계는 없었을 것이며, 바로 그 진정성이 내가 그들의 음악에 영원히 몰입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나는 직접 경험하지도 않은 조지 해리슨의 죽음을 애도하고, 존과 요코의 이별 뒤 심연의 슬픔에 눈물을 흘렸다. 그들의 사랑과 고뇌가 곧 나의 이상을 대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수많은 명곡 중에서도 나의 영혼을 가장 깊이 울리는 최애곡은 바로 Blackbird이다. 처음엔 메트로놈인 줄 알았던 딱딱거리는 소리로 시작하는 이 곡은, 1960년대 미국 시민권 운동에서 영감을 받은 인종차별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고독에 잠긴 모든 인간을 위로하는 해방의 노래이기도 했다. 마치 비틀즈의 모든 역사를 관통하는 가장 순수한 메시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틀즈는 나에게 과거의 전설이 아니다. 그들은 현재 진행형으로 내 삶과 함께하는 레전드이다. 여전히 내 차의 플레이리스트는 비틀즈로 가득하고, 심지어 아이들의 재생 목록에도 최소 5곡씩은 들어있다. 막내딸은 Hello, Goodbye를 따라 부르며 단어를 익혔고, 나머지 아이들은 차에서 Here Comes The Sun이 흘러나오면 떼창 하며 학교를 오가곤 한다. 그렇게 비틀즈의 음악은 내가 삶의 철학을 아이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중요한 축이 되었다.
나의 비틀즈 사랑은 국제학교 벤치에서 시작되어 역사적 탐구와 사랑의 덕질을 거쳐, 궁극적으로 아이들과의 따뜻한 떼창의 기억으로 완성되고 있다.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가수를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비틀즈라고 말한다. 나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가족을 묶어주는 영원불멸의 에너지인 비틀즈, 당신들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