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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처음으로 자유를 노래하다

Alanis Morissette

by 아타마리에

내가 처음으로 Rock을 접하게 된 건 고등학교 오리엔테이션날 밴드 공연에서였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학교 밴드 보컬 언니의 공연은 에너지 그 자체였다. 비트와 사운드를 가로지르는 보컬의 목소리와 그것을 둘러싼 함성들에 나는 난생처음 '자유'라는 단어의 절대적 정의를 체감했다. 그때 그 언니가 부른 곡은 앨라니스 모리셋의 노래였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나는 밴드의 보컬 오디션에 참가했고, 그것은 나의 정체성을 향해 내딛은 첫 발이었다. 어쩌면 특목고에서 밴드를 한다는 건 성적이라는 견고한 시스템에 대한 가장 비효율적이고 위험한 반항이었다. 그리고 엄마 아빠를 포함한 모두가 예상했듯이, 그것은 성적 하락으로 이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야간 자율학습에서 몰래 나와, 세운상가에서 악기 구경이나 하며 얼쩡거린다든가, 독서실대신 연습실에 더 오래 있었으니. 그때의 나는 세상의 질서와 상관없이, 저항을 위해 존재해야만 하는 아이 같았다.


Rock은 나에게 억압 이전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태어나 처음 접하는 삶의 어두운 면, 무한한 자유,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기성 사회를 향한 비판적 시선은 나를 강하게 끌어당기는 자성 같은 것이었다. 메탈리카, Pink Floyd, 본 조비에 크랜베리스의 얼터너티브 록까지, 나는 락의 모든 얼굴을 사랑했지만, 내가 궁극적으로 매료된 것은 앨라니스 모리셋의 음악이었다.


그녀의 노래들에는 인간 감정의 모든 면, 가령 질투나, 분노, 슬픔 같은 것들이 날것으로 드러난다. 그녀의 히트곡중 하나인 You Oughta Know에서 화자는 전 남친이 고통스럽게 살기를 저주한다. 어쩌면 나도 본래부터 사회가 요구하는 좋은 여성상을 거부하고, 감정의 밑바닥을 드러내는 기가 찬 여성상을 갈망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심한 전 남친들에게, 사회의 부조리들에, 말없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림으로써 자기 자신을 지키려고 했던, 자유를 찾으려 했던 그녀의 노래에 그렇게 끌렸던 거겠지.


듣고 노래하고 또 듣는 것, 그것이 그 시기 나의 행복이었다. 나는 공부할 때도, 버스에서도, 지하철에서도 주구장창 그 음악을 들었다. 그때 나는 겨우 열다섯의 사춘기 소녀였다. 그 전까지 이상적인 세상만 배워온 나는 Rock 음악을 통해, 인간의 감정이 얼마나 사사롭고, 복잡한지, 또 얼마나 지저분하며, 어둡고 밝은지, 결핍이란 무엇이며 그것들을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 방어하고 채워가는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복잡한 진실을 목소리와 음악으로 뱉어내는 '표현의 미학' 또한 배웠을 것이다.


그렇게 내신 성적과 맞바꾼 그 시간은 일탈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의 근원을 처음으로 마주한 순간이었다. 물론 그 이후 이민을 떠나며 나의 음악 취향은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갔지만, 진정한 자아의 과도기를 함께했던 Rock, 나의 희열이여. 너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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