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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진 Apr 20. 2022

공항 내 운전자에게 알립니다 : 항공기 주의

CAUTION : AIRCRAFTS TAXIING ON TAXIWAY

비행기를 타러 설레는 마음으로 공항에 도착하면, 모두가 예외 없이 출국심사를 받으며 내 신분을 증명해야 하는 데다가 위험한 물건을 소지하고 있지 않다는 걸 대변하기 위한 보안 검색도 받아야 한다. 그리하여 탑승교를 따라 기내 안에 안착해도 비행기가 지나다니는 저 공항 위, 터미널 바깥의 땅에는 어지간하면 발을 대지조차 못한다. 혹시 비행기에 타서 이륙 전이나 착륙 후, 공항 유도로에서 이동 중일 때 창문 너머로 공항 표면 위를 활보하는 자동차를 본 기억이 있는가? 사실 나는 없다. 비행기에 앉아서 창 밖을 보면 공항 건물이나 다른 비행기, 관제탑 같은 것에 눈이 가지 땅 위를 다니는 쪼꼬만 자동차에는 눈길이 잘 안 간다. 승객 눈에는 잘 안 띄지만 의외로 비행기가 지나다니는 그 길 근처로, 또는 그 길을 건너서 하루에도 수 십 대, 수 백 대의 자동차가 움직인다.


1터미널은 그 자체의 크기만도 커서 저 끝에서 저 끝까지 걷는데도 15분 정도 걸리는데, 하물며 그만한 건물을 세 개나 가지고 있고 길이 4km에 달하는 활주로를 네 개, 더해서 무지 큰 화물 계류장도 두 개나 가진 전체 공항 이동지역의 크기는 얼마나 클까. 절대 걸어서는 어디로 갈 엄두가 나지 않고, 자동차로 이동해야 원하는 목적지에 오늘 안에 도착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자동차들과 항공기 조업을 위한 장비, 그리고 가끔은 사람들까지 지나다닐 수 있게 만든 공간을 'GSE(Ground Support Equipment) 도로'라고 한다. 모든 자동차, 장비, 인원은 공항 내 GSE도로 위에서 움직여야 하고 비행기 전용 도로인 유도로로는 허가 없이 절대 출입 불가하다. 만약 관제사 지시 없이 유도로에 무단 침입하면 항공안전장애로 신고될 수 있다. 보통은 자재를 나른다든지, 소독을 한다든지의 일을 하기 위해서 왔다 갔다 하는 그 자동차들도 비행기가 댕기는 공항 안으로 들어오려면 승객과 똑같이 신분을 증명하고 보안 검색을 받아야 한다. 아무나 출입할 수 있는 지역이 아닌데 게다가 공항 이동지역에서 운전하려면 교육도 이수해야 하고, 이동지역 면허도 갖고 있어야 한다.



왼쪽에 굵은 노란 선이 유도로, 오른쪽에 하얀 선 안쪽이 GSE도로. 속도제한은 시속 30km.



이 공항 안 GSE도로에서의 운전은 오히려 공항 바깥에서의 운전보다 여유롭고 느긋하고 쉽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시속 50km 이내로 주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 국도나 고속도로처럼 교통량이 몰려서 도로가 막히지도 않는다. 도로 자체도 로터리나 구도심처럼 얽히고설킨 채로 만들어져 있는 게 아니고, 신도시에 있는 도로들처럼 쭉쭉 길게 뻗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신호등도 아주 직관적이고 단순하다. 빨간불이 켜져 있으면 정지, 빨간불이 안 켜져 있으면 주행 가능. 나는 운전을 잘 못하는데도 공항 안에서 운전하는 건 별로 무섭지가 않다.


근데 문제는 이 차량들이 가장! 중요한! 법칙!을 잘 안 지킨다는 점이다. 인천공항 안에서는 반드시 항공기가 GSE도로 차량보다 우선으로 이동한다. 공항 이동지역에서 운전하는 경우에, 내가 탄 차량을 기준으로 반경 250m에 비행기 코끝이라도 보이면 유도로를 교차하는 GSE 도로는 주행하지 말고 일시정지해야 한다. 신호등에 빨간 불이 안 들어와 있어도 일단은 멈춰야 한다. 보통은 VHPL이라고 부르는 신호등이 '근처 유도로로 곧 비행기가 지나가니까 움직이지 마세요.'라는 뜻으로 빨간 불을 켜주는데, 오류가 있는 경우에는 켜지지 않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전하다가 창 밖으로 보이는 저 비행기가 좀 가까운데, 심지어 나에게로 다가오는 것 같다 싶으면 그냥 일시정지 위치선에서 바로 비상등을 켜고 여유를 부리는 것이 좋다.


이 법칙을 운전자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관제석에 앉으면 하루에도 몇 번씩 움직이는 항공기 앞을 후다다다닥 지나가는 차량들을 보게 된다. 가끔은 신호등에 적색 등이 들어와 있는데도 무시하고 지나간다. 비행기가 지나가야 하는데 도로 위를 빠르게 질주하며 근처로 다가가는 차량을 보면 복화술로 <멈춰.. 멈춰... 멈춰....>라고 내뱉기도 한다. 관제사는 저 멀리에서 질주하는 차량과 연락할 수단이 없으니 그저 항공기를 잠시 정지시키거나, '차량 조심하세요.' 하는 등의 주의를 주는 수밖에 없다. 사실 관제사에게 GSE도로의 차량과 항공기 사이까지 분리할 의무는 없지만 그 근처에서 이동하는 항공기가 있는 경우에는 온 주의가 그쪽으로 쏠린다. 심지어 어두운 밤에는 진짜 눈곱만 한 크기로 보이는 차량이 잘 식별되지 않기도 한다. 두 눈을 왕 부릅뜨고 GSE도로 차량만 감시하기에는 내가 다른 관제 일로 좀 바쁘다.



왜냐면 티웨이항공 A330 봐야 하거든요



그러니 공항 안에서 운전을 하게 되는 경우, 꼭꼭꼭 항공기와의 안전거리 250m를 지켜주었으면 좋겠다. 잘못해서 항공기와 부딪히기라도 하는 경우에는 사달이 난다. 아마 99%의 확률로 운전자 부주의가 사고 사유가 될 테니까. 5분 먼저 가려다, 정말로 50년 먼저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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