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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진 Mar 30. 2022

창 밖으로 손 흔들어주시는 거 보려면 어디 타야 해요?

어느 날 항공 덕후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진짜 항덕들이 모여있는 카페를 눈팅하다가 이런 글을 발견한 기억이 있다.


비행기가 활주로로 움직이기 전에 창 바깥으로 지상조업사-또는 정비사분들이 손을 흔들어 인사해주시는 걸 좋아한다면서, 혹시 이런 인사를 받으려면 좌석을 오른쪽 창가로 예매해야 할지 왼쪽 창가로 예매해야 할지 팁을 달라던 내용이었다.


인천공항에서 유도로까지 비행기를 올려놓을 때, 비행기 머리가 어디를 향하게 할지 결정하는 건 우리 관제사의 역할이기 때문에 답은 내가 정확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OOOO OOO."




'AIP'라는 것이 있다. 풀네임은 Aeronautical Information Publication인데, 항공기를 운항할 때 필수적으로 알아야 하는 정보들을 수록해 둔 간행물이다. 국가별, 공항별로 AIP가 존재하며 당연히 우리나라 AIP에는 인천공항의 정보들이 수록된 부분이 있다. 인천공항(RKSI) AIP에도 참 다양하고 많은 정보들이 있지만, 우리 관제사가 마치 바이블처럼 외우고 있는 부분은 <각 게이트별 후방 견인 절차>가 수록되어 있는 페이지들이다. 유도로에 비행기를 끄집어 내 올려두고, 활주로까지 나가기 위한 준비를 할 때 비행기가 어느 방향을 보게 될지 우리가 상황에 맞게 조정한다.


예를 들어, 1 터미널의 17번 주기장은 조금 특이한 절차를 갖고 있는 게이트다. 17번은 1 터미널의 왼쪽 토끼 귀에서도 가장 끝부분에 위치한 탑승구로, 일반적인 절차를 갖는 게이트들과는 다른 모양으로 절차가 설계되어 있다.

- 첫째는 기수(항공기 머리)가 북쪽을 향하도록 하는 PUSH BACK FACE NORTH 절차다. 이 절차는 비행기는 R7/R8 둘 중 어디로도 나가기 편해서 사용 이륙활주로가 1 활주로(33L/15R)냐, 3 활주로(34R/16L)냐에 상관없이 가장 많이 쓰는 절차이다.

- 둘째로는 항공기의 노즈 기어가 53R이라는 특정 지점에 위치하고, 기수가 서쪽을 향하도록 하는 PUSH BACK TO 53R 절차가 있다. 보통은 R1을 지나가야 하는 다른 교통이 있을 때 이 절차를 사용해서 R1 유도로를 개방해준다.

- 세 번째로는 기수가 동쪽을 향하도록 하는 PUSH BACK FACE EAST ON R7 절차가 있다. 이 절차는 항공기를 후방 견인하는 시간이 꽤 오래 걸려 잘 사용하지 않지만, R1에도 뭔가 다른 교통이 지나가야 하는 데다가 A6로 들어오는 항공기가 있거나, 53R에 이미 다른 항공기를 밀어 놨을 경우 대체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미는 데에는 시간이 꽤 걸리고, 주 동선인 R7을 막아버리지만 그 정도로 정말 바쁘고 혼잡한 경우에 사용하는 절차다.



17번 탑승구 후방 견인 절차 도식화



 그럼 이제 만약 내가 17번 게이트에서 비행기를 타고 나가는데(F급 주기장이기 때문에 A380일 가능성이 크다), 지금 1 활주로가 공사 중이니까 3 활주로로 거의 90% 이륙할 것이라고 예측할 때 과연 어느 쪽 창가에 앉아야 손 흔드는 반가운 인사를 건넬 수 있을지 상상을 해보자. 일단 3 활주로로 이륙한다고 할 때 관제사는 위의 세 절차 모두를 사용할 수 있긴 하다. 보통 직원들은 노란색 부근에 서 있을 것이다. 확실히 가능성이 높은 (1)FACE NORTH 절차를 사용한다고 가정하면 왼쪽 창가에 앉아야 터미널 근처에서 손을 흔드는 조업사 인원과 인사할 수 있다. (2)53R은 터미널과 아예 동떨어지므로 제외하고, (3)FACE EAST ON R7으로 밀어졌다면 오른쪽 창가에 앉아야 인사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륙 활주로를 알게 되더라도 게이트별로, 후방 견인 절차별로 인사할 수 있는 쪽의 방향이 매번 바뀌니 좌석을 선택한다고 해서 인사를 할 수 있는게 아니므로, 그냥 확률에 본인 몸을 맡기는 수밖에 없다.



스타 얼라이언스 도장을 입은 아시아나 B767, HL7516



다른 게이트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탑승동 113번의 후방 견인 절차는 간단하게  FACE EAST와 FACE WEST 두 개로 설계되어 있는데, 보통은 1 활주로로 가는 경우 EAST 절차를 많이 사용하고, 3 활주로로 가는 경우에 WEST를 많이 쓴다. EAST로 밀면 왼쪽에 앉아야 하고, WEST로 밀면 오른쪽에 앉아야 인사를 할 수 있는데... 이건 그냥 단순하게 관제 흐름이 유지될 때의 이야기이고, 만약 동시에 111번 항공기가 푸시백을 요청하는 경우에는 두 항공기를 동시에 밀어주기 위해서 원래 생각했던 방향과는 반대로 항공기에게 후방 견인 지시를 해야 할 수도 있다. 그 당시 교통 흐름과 사용 활주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관제사가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에 정말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아까의 대답이 이랬던 것이다.

"그때그때 달라."


인사 해주시는 걸 예측해서 보기는 힘들지만, 일출과 일몰을 구경할 수 있는 자리는 정해져 있다. 서울에서 제주도를 오가거나 할 때 해가 뜨고 지는 방향을 예측해서 항공권을 예매하는 팁이 있다. 아침에 제주도로 내려가는 경우에는, 비행기 머리가 남쪽을 보게 되니까 왼쪽 창가에 앉으면 해 뜨는 보습을 볼 수 있고, 저녁에 상경하는 경우에도 왼쪽 창가에 앉으면 서해로 지는 노을을 구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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