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확진자 사전투표 선거사무원
네? 한 시간에 15만 원을 준다고요?
평소 들어보지 못한 큰 액수에 놀라 대답했다. 이것은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위한 사전투표 기간 중, 코로나 확진자 사전투표에 투입되는 선거사무원에게 주는 특별수당이었다. 코로나 확진자의 사전투표 시간은 딱 한 시간으로 3월 5일(토) 17시~18시까지다. 한 시간에 15만 원 이라니. 초과근무 수당이 최저임금도 되지 않는 공무원에게는 아주 파격적인 금액이었다.
처음에는 코로나 확진자를 대해야 한다는 두려움에 조금 망설였으나, 이내 모아야 하는 돈과 갚아야 하는 대출이 생각나서 이 업무를 하기로 했다. 사실 원래 투입되기로 하신 주사님이 XL 사이즈의 방호복이 들어가지 않아 대신 투입된 점도 있다.
한 시간에 15만 원 이라니. 나는 내심 신이 났다. 오전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하루 종일 사전투표 사무원을 하면 받는 일당이 10만 원이다. 거기에 밥값으로 한 끼에 7천 원을 준다. 아침, 점심, 저녁 세끼를 계산해주니 하루 수당은 총 12만 1천 원.
오전 6시에 사전투표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행정복지센터에 오전 5시까지 도착해야 한다. 그러려면 집에서 4시 반에 나와야 하고, 그러려면 오전 3시 반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해야 한다. 새벽 공기를 가르고 출근해서 하루 종일 일해도 일당이 대략 12만 원 정도인데, 코로나 확진자 사전투표에 투입되면 겨우 1시간에 15만 원을 준다니. 하루 종일 고생한 것보다 더 많은 액수다.
사전투표를 이틀이나 진행하고 거기다 확진자 사전투표까지 맡아야 한다는 생각에 지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수당의 총금액을 계산하며 흐뭇해하고 있었다. 드디어 이틀에 걸친 사전투표 일정이 마무리되어가고, 마지막 한 시간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오후 4시 40분. 머리를 질끈 묶고, 부랴부랴 방호복으로 갈아입고, 마스트를 단단히 썼다. 그리고 확진자들을 맞이하러 행정복지센터 1층 입구로 나갔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만든 코로나 확진자 사전투표 매뉴얼은 이러하다.
1. 별도의 공간에 코로나 확진자 임시기표소를 만든다.
2. 확진자 본인 확인 및 코로나 확진자임을 확인한다.(확진 문자 및 서류 등 증빙자료 필요)
3. 코로나 확진자는 본인여부 확인서를 작성한다.
4. 선거사무원이 본인여부 확인서를 가지고 투표소에 가서 참관인 입회하에 투표용지를 받는다.
5. 투표용지와 임시기표소 봉투를 확진자에게 전달한다.
6. 확진자는 임시기표소에서 기표 후 임시기표소 봉투에 넣어 선거사무원에게 제출한다.
7. 선거사무원은 임시기표소 봉투를 가지고 투표소로 가서 참관인 입회하에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는다.
오후 5시가 되기 전부터 코로나 확진자 선거인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20명 남짓인가 싶더니 어느새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한 명씩 차례대로 매뉴얼에 따라 사전투표를 진행했다. 본인 확인, 확인서 작성, 투표용지 대리 발급, 투표용지 전달, 기표 한 투표용지 제출받아 투표함에 넣기.
우리 행정복지센터의 투표소는 지상 3층에 위치하고 있고, 확진자 임시기표소는 1층 야외에 마련되었다. 한 명의 선거인이 투표를 하기 위해서는 3층까지 두 번을 왔다 갔다 해야 한다. 투표용지 발급하러 한번, 기표한 투표용지 넣으러 한번. 확진자들 사이를 가로지르며 계단을 수없이 뛰어서 오르내렸다. 원래도 체력이 저질이지만 계단 오르내리기를 열 번 정도 반복하니 방호복은 땀으로 가득 차고, 다리는 휘청거렸다.
그러나 걸을 수 없었다. 길어지는 대기 시간에 화가 난 선거인들이 여기저기서 원성을 쏟아내고 있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냐며 소리치는 사람, 확인서를 작성해 달라는 선거사무원에게 일부러 기침하는 사람, 본인이 왔는데 이런 확인서를 대체 왜 받냐며 화내는 사람. 더 이상 못 기다리겠다며 비 확진자가 줄 서있는 곳으로 가서 투표하겠다는 사람. 그 사람을 따라 우르르 움직이는 사람들. 그리고 막아서는 선거사무원에게 주먹을 날리는 사람.
임시기표소에 투표함이 없다고 항의하는 사람. 본인이 기표한 용지를 제대로 투표함에 넣는지 아닌지 어떻게 믿냐는 사람. 선거사무원들이 투표 조작을 하고 있다고 하는 사람. 이 모든 상황을 신고하겠다고 동영상 촬영하는 사람까지.
물론 확진자 선거인들의 답답한 마음도 이해된다. 아픈 몸을 이끌고, 소중한 권리를 행사하러 오셨는데 쌀쌀해지는 날씨 속에서 계속 기다리라 하고, 진행은 느리고, 모두가 우왕좌왕하는 거 같으니 많이 답답하고 분통 터졌을 것이다. 선거사무원인 나조차도 지금 이 상황이 너무 혼란스럽고 막막한데 그분들은 어떠하랴. 그렇지만 이 모든 혼란의 상황을 오롯이 견뎌야 했던 건 선거 총괄자도 아닌, 선거관리위원회는 더더욱 아닌, 그저 선거사무원으로 투입된 행정복지센터의 직원들이었다.
예정된 시간인 오후 6시가 지나도 코로나 확진자 사전투표는 끝나지 않았다. 확진자 선거인이 10명 정도였다면 이렇게 복잡한 절차여도 1시간 안에 끝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100명은 아니다. 본인여부 확인서를 5개~10개씩 모아서 진행했으나 복잡한 절차에 대기줄은 도무지 줄어들지 않았고,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6시가 지났으니 이제 비 확진자의 사전투표 일정은 모두 종료되었고, 고로 3층의 투표소는 비었다. 방호복을 입지 않은 직원 및 차출된 사람을 모두 돌려보내고, 방호복을 입은 선거사무원과 참관인만 남았다. 동사무소의 입구를 개방해 확진자 선거인을 모두 올라오게 하여 차례대로 선거를 진행했다. 본인이 직접 투표용지를 받고, 바로 기표하고, 투표함에 넣으니 진행 속도도 빨라지고 선거인들도 안심했다. 진정되어가는 상황에 나도 안심되기도 하고, 조금은 억울한 마음도 들어 잠시 눈물이 차올랐다. 하지만 이내 진정시키고는 투표용지를 발급해주며 늦어져서 죄송하다는 말을 수없이 반복했다.
저녁 7시쯤 코로나 확진자의 사전투표가 모두 끝났다. 드디어 투표소의 문을 닫았다. 상황이 종료된 후 선거사무원들은 전부 말이 없었다. 침묵 속에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눈빛으로 위안을 건넸다. 잠깐의 소강상태 후 다시 모여들어 후작업을 진행했다. 관외 투표자들의 투표 봉투를 50개씩 모아서 정리해야 하는데 다들 손이 떨리고 심장이 벌렁거려 숫자를 계속 틀렸다. 여러 번 반복해서 숫자를 센 후에야 겨우 정리할 수 있었다.
방호복과 장갑을 벗고, 마스크를 바꿔꼈다. 투표소를 방역하러 오신 분에게 우리에게도 방역 약품을 뿌려달라고 요청드렸다. 방역 약품 샤워를 하고, 선거사무원에게 배부되는 코로나 자가진단 키트를 받아 들고서 집으로 왔다. 어둠 속 새벽 공기를 가르며 집을 나섰는데, 다시 어둠 속 밤공기를 가르며 집으로 돌아왔다. 긴 하루의 고단함과 혹시 코로나에 감염되었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코로나 확진자 선거인들, 참관인들, 선거사무원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