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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토 Jan 14. 2022

욕받이 VS 욕쟁이

두 모습의 한 사람

나는 욕받이인가 욕쟁이인가.

어떤 날은 욕받이가 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욕쟁이가 되기도 한다. 민원이 내뱉는 날카로운 말, 짜증, 불쾌함, 속상함, 화남을 아무 대꾸 없이 받아내야 한다. 욕받이가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는 일은 전혀 유쾌하지 않다. 날카로운 그 말들은 내 속을 갉아먹는 암흑이 되어버린다.


나는 기계가 아니다. 화나고, 속상하고, 짜증도 난다. 일에 치여 사람에 치여 마음이 삐딱해지는 날이 있다. 그럴 때 나는 욕쟁이가 된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 좀 들어보라며 하소연을 하기도 하고, 화나게 하는 사람들을 실컷 헐뜯기도 한다. 이렇게 욕쟁이가 되면 평소 상냥하던 말투는 사라진다. 딱딱한 말투로 사람을 대하게 된다.






내 업무가 아닌 일로 민원을 응대하게 되어 평소와는 다르게 매우 냉담한 태도를 취한 적이 있다. 무리한 부탁을 하는 민원에게도 화가 나긴 했지만, 그보다는 계속 반복되는 이 상황에 화가 났다. 모두가 이 업무가 내 업무가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모두가 해당 민원을 나에게 보냈다. 이쯤 되면 내 업무분장에 해당 업무를 넣어야 할 수준이다.


내내 냉담한 태도로 일관하니 민원도 살짝 불쾌해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도 꾸역꾸역 민원의 업무를 도와주고 마무리는 서로 감사의 인사를 하며 헤어졌다. 그런데 그렇게 민원을 보내고 나니 기분은 더욱 불쾌해졌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은 전혀 유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마음을 더 깊은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것 같았다.


내 업무가 아닌 걸 부탁한다 해도, 안 되는 걸 되게 해달라고 해도, 안내 전화를 했다가 이유 없는 욕을 먹는다 해도 그냥 받아내야 했던 것일까. 9시부터 6시까지는 그저 죽었다 생각하고 그들의 감정을 받아내고, 6시 이후 퇴근하며 그 불쾌한 감정들은 모두 행정복지센터에 남겨두고 집에 가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한 것 같다.(그런다고 모든 불쾌한 감정이 모두 떨쳐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민원이 가고 잠시간 멍하게 앉아있었다. 내 속에 소용돌이치는 나도 어쩔 줄 모르겠는 여러 감정에 혼란스러웠다. 내가 민원에게 그렇게 불쾌함을 드러냈다는 것에서 오는 민망함, 창피함, 그럼에도 차오르는 분노가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쳤다. 민원에게서 받은 불쾌함과 내가 뿜어낸 불쾌함으로 주변 공기가 가득 메워지는 것 같았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분노 속에 잠식되는 느낌이 들었다.


몸을 움직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화장실에 갔다. 세면대에서 손을 씻으며 분노 섞인 내 감정도 함께 씻겨가길 바랬다. 따뜻한 물이 조금은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손을 닦고 심란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차가운 화장실에 잠시 서있었다. 곰곰이 생각했다. 


화내고 나니 오히려 기분이 더 불쾌해지는 이 아이러니한 감정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냉담했던 나의 태도를 조금 반성하고 나니 그제야 민원에게 미안한 마음이 슬쩍 들었다. 그래 나는 욕쟁이가 되느니 차라리 욕받이가 되는 것이 마음이 편한 것 같다.


분노가 휩쓸고 나간 몸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차가운 얼음 속에 있다가 몸이 녹은 느낌 같았다. 다 녹아서 속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빈 껍데기 같은 기분이었다. 불쾌함에 불쾌함으로, 분노에 분노로 응대한 나를 되돌아본다.


다시 그런 상황이 온다 해도 온전한 온화함으로 응대할 자신은 아직 없다. 그래도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분노에 슬기롭게 대응하는 법을 조금씩 알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때까지는 여전히 분노에 폭주하는 폭주기관차일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오늘을 기억해보자. 분노에 분노로 맞대응해서 나아지는 것은 없다. 기분도 상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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