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호 집으로 이사 가기 전에 살던 집은 서울 외할머니 댁이었다. 만 네 살을 다 채우기 전까지 외가 식구들과 함께 살던 이 집의 구조와 동네 골목들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앞집에서 작은 공사를 하느라 마당에 시멘트 가루를 몇 포대를 수북이 부어놓은 적이 있는데 나는 어른들 말씀하시는 동안 우리 집과 앞집을 들락날락하다가 발을 헛디뎌 그 시멘트 가루 쌓아 놓은 곳에 발이 빠졌었다. 그 가벼운 가루 더미 속에 슬리퍼가 벗겨져 나간 맨발이 폭 들어가 닿는 촉감이 신기해서 계속 발로 밟아댔던 기억이 있다. 씻겨 놓으면 발 담그고 씻겨 놓으면 발 담그고.
할머니 댁에서 오른쪽으로 나가면 양쪽으로 갈라진 골목길이 나왔는데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다가 왼쪽에 구멍가게와 중국집이 있었고 그 중국집 딸은 내 또래의 여자아이여서 같이 놀았던 기억도 어렴풋이 있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오른쪽에 피아노집이 있었는데 대문은 따로 없이 길가에 바로 유리창이 크게 있는 나무 미닫이문이 있었고 그게 출입문이었다. 안쪽에서 커튼을 쳐놓아 내부는 보이지 않았다. 내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한 건 그 커튼으로 가려진 안쪽에서 들리는 멜로디였다. 그때까지 피아노를 본 적이 없었던 네 살 꼬맹이에게 이 미지의 소리는 충분히 매혹적이었다. 아마 나는 이 소리가 무엇인가 물었을 테고 이 궁금하기 짝이 없는 소리는 바로 ‘피아노’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유리문에 붙어 기웃거렸다. 행여 커튼 사이로 높낮이가 다른 소리의 근원을 볼 수 있을까 무척 궁금해했지만, 그땐 그저 궁금증에서 그쳐야 했다.
다섯 살 봄에 100호 집으로 이사를 했고 여섯 살에는 동네 교회에 있는 유치원을 다니게 됐다. 유치원이라고 해봐야 그 교회 교인이 평일 오전과 오후에 자리를 빌려 운영하는 곳이었다. 교회 유치원에는 피아노가 아닌 풍금이 있었다. 서울로 전학해 온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학교에 반마다 있던 것은 피아노가 아닌 풍금이었으니 이 당시 경기도 교회의 풍금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유치원 선생님은 댁에서 피아노를 가르치셨는데 나는 여기서 드디어 피아노의 실체를 접하게 되었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일곱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울 수 있게 되었다.
피아노를 배우는 동안 체르니 30번을 세 번 반복했다. 중간에 두 번이나 쉬느라 다시 시작할 때마다 처음부터 반복해야 했기 때문이다. 뭐든 배우다 보면 하기 싫어지는 시기가 있다. 피아노를 배운 지 얼마나 지났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나는 피아노 치기가 너무 지겨워졌다. 엄마한테는 말하지 않고 피아노집에 가지 않았다. 문방구에서 기다란 종이 피아노를 샀다. 기다란 마분지에 건반 모양이 인쇄된 거였다. 나중에 들켰을 때 이것으로 연습을 대신했다고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댈 요량이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이 작전을 써먹을 순간이 다가왔다. 어이없는 엄마는 네 맘대로 연습을 이 종이에 하면 어떡하냐고 야단을 치셨으나 그래도 피아노집엔 가기 싫었다. 너무 지겨워서 뺀질대다가 이사 예정도 잡혀 있고 하니 쉬게 됐던 것 같다.
3학년 봄이었다. 서울로 전학을 오니 운명적이게도 바로 옆집이 피아노집이었다. 엄마는 내가 거부할 틈도 주지 않은 채 묻지도 않고 다시 등록시켰다. 항상 짜증이 많던 중년의 원장님은 내가 치는 걸 보시더니
“그래, 이번엔 스타카토로 쳐 봐.”
“스타카토가 뭐예요?”
“스타카토 모르니? 안 배웠어? 그럼, 부점은? 부점으로 쳐 봐라.”
“모르는데요”
원장님 미간이 찌푸려졌다. 내가 기본이 되어 있지 않다고 하셨다. 어떻게 스타카토도 부점도 배우지 않았냐고. 먼저 선생님이 안 가르쳐 주시디? 나 참, 이걸 어떡하면 좋아 그래. 예의 그 짜증스러운 말투였다. 사실 내 유치원 선생님이자 피아노 선생님은 유치원 교육 전공이나 피아노를 전공한 분이 아니었다. 그 옛날 시골에서 선생님 경력을 뭐 그렇게 따졌겠나. 이 선생님은 반대로 나를 치켜세워주셨었다.
“atree는 피아노에 소질이 있어요. 아주 잘해요. 다른 아이들은 치다가 틀려도 틀렸는지 모르고 그냥 계속 치는데 atree는 틀리면 지적하지 않아도 자기가 바로 다시 친다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말치레지만 엄마가 레슨비 내러 오셨을 때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안 듣는 척하면서 다 들었다. 나는 어린 마음에 내가 정말 피아노를 잘 치고 감각이 좋은 줄 알았다. 나를 잘 챙겨 주시던 선생님이었는데 그런 선생님이 서울 원장님한테 무시당하는 소리를 듣자니 나도 처음부터 기가 죽었다.
시작부터 이 모양이었으니 또 얼마 안 가 지겨워졌다. 연습도 너무너무 하기 싫었다. 피아노집이 바로 옆집이다 보니 선생님은 우리 집에서 피아노 연습하는 소리가 들리는지 다 듣고 있다고 했다. 하기 싫다고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피아노 앞에 앉아 있으면 몸이 꼬이고 척추와 손이 흐느적거렸다. 고개는 천천히 상모 돌리듯 이리 돌아가고 저리 돌아갔다.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피아노 치기 싫다고 징징대다가 결국 또 쉬게 되었다.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다가 그만두니 얼마나 속 시원했겠냐 마는 그러나 그 홀가분함도 오래는 가지 않았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피아노를 배우는 아이는 반에서 나를 제외한 한두 명이었고 그나마도 나보다 진도가 느렸다. 그런데 어느새 다른 친구들 진도가 내가 멈춘 체르니 30번의 어디쯤을 쫓아오고 있는 게 아닌가? 이러다가 추월당하게 생긴 거다. 이건 아니지. 나는 갑자기 정신이 딱 돌아오면서 피아노를 다시 배우겠다고 자진했다. 이번에는 내가 원해서 하다 보니 예전처럼 하기 싫거나 지겹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초등학교 졸업 전 세 번 만에 체르니 30을 마칠 수 있었다.
이랬던 내가. 학원에 오기는 왔는데 그림은 그리기 싫어서 몸을 배배 꼬는 아이를 못 알아볼 리 없다. 피아노 치기 싫어서 멀미가 날 것 같고 배도 좀 아팠으면 좋겠고, 내가 지금 여기서 왜 이러고 앉아 있나 세상이 다 원망스럽던 기억이 선명한 내가 그 상태를 모를 리 없다. 교습소를 오랫동안 운영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순간은 그 어떤 다른 경우보다 그림 그리기 싫어서 괴로워하는 아이의 수업이었다. 내가 그 상태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는 속담이 딱 맞는 그런 상황, 손톱만큼의 능률도 그 무엇도 기대할 수 없는 그런 경우가 간혹 있었다. 미술 활동이 너무 안 맞는 아이였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는 어쩌다 한 번이긴 했지만, 이럴 땐 학부모님께 상담을 요청하고 아이를 좀 쉬게 하는 게 좋겠다고 권했다. 너무 하기 싫은데 억지로 시키면 당장이야 꾸역꾸역 앉아서 시간 보낼 수는 있겠지만 나중엔 정말 쳐다보기도 싫은 지경이 될 수 있다. 내가 어렸을 때 그렇게 피아노 치기 싫었는데 만약 쉬게 해 주지 않고 계속 시켰다면, 다른 친구들이 내 진도를 추월해 가든 말든 상관없이 피아노라면 다시는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을 것 같다. 아주 학을 떼고 말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 뭔가 막혀서 답답할 때, 또는 기분이 좋아서 흥이 날 때 피아노를 치고 싶다는 생각은 가져 보지 못했을 것 아닌가. 누군가는 그런 고비를 넘겨야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사실 그렇기도 하다. 하지만 예중 예고 입시생도 아니고 취미로 하는 경우라면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나는 내가 피아노를 배우게 된 건 모친께서 시켜서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100호 집에 살 때 피아노 실물을 보고 나서 피아노를 치겠다고, 배우고 싶다고 졸랐다는 것이다. 그렇게 원했던 걸 하는데도 어렸을 때는 또 그렇게 하기 싫어지기도 했다. 위에서 말한 내가 어렸을 때의 경험이나 예시로 든 아이의 경우는 약간의 하기 싫음이 아니라 정말 너무너무 너무하기 싫은 정도의 예이다. 뭔가를 배우는 아이가 하기 싫다고 해서 무조건 쉬게 하는 게 옳은 것은 아니다. 아이마다 성향이 다르고 기질이 다르니 잘하다가도 웅덩이 같은 슬럼프에 빠졌을 때 어떤 아이는 감기 정도 앓고 무리 없이 성실하게 잘 해낼 것이지만 어떤 아이는 칭찬이 주효할 것이고 어떤 아이는 경쟁 심리나 오기를 발동시키면 효과가 좋을 것이다. 누가 시켜서 하기보다 자신의 마음이 움직여야 하는 성향의 아이는 조금 기다려 주며 천천히 가게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