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 아웃 어게인

by atree

일해가면서 대학원 다니던 시절

이르면 새벽 두 세시 늦으면 네 시

적막한 작업실을 나와 집으로 향할 때면



지친 하루에 눌려

아무렇게나 던져 널브러진 가방처럼

맥없이 고개를 젖혀 택시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늦은 시간 마포 용강동 출발 합정역을 지나는 동안

텅 빈 대로에 신호등 한 번 걸리지 않고 파란불 행진을 할 때면

깜깜한 새벽길 초록색 빛나는 사인은

팔월 오후 뙤약볕 아래 한 잔 냉수 같은 위로였다



그때 내게 소망이 있었나

그때 내게 그 어떤 희망이 보였었나

그때 내게 손에 쥐어지는 그 무언가가 있었던가



그저 온통 줄지어 매달린 빨간 신호등처럼

어제 같은 오늘로 오늘 같은 내일을 살고 있다는

숨 막힘 외에는 없었다

지치고 병든 영혼으로부터 피곤에 절은 육신에 이르기까지

파란 사인은 보이지 않았더랬다



시간이 흘러줬으니 다행이다.

그리고 또 잊혔으니 다행이다.

빨간 신호 다음엔 파란 신호 들어오기 마련이며

마음 고단한 인생길에도 비 온 뒤에는

먹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갠다

모쪼록 다행이다


2006.07.07 00:57






작업을 그만둬야 했을 때처럼 나는 또 지쳤고 일이 하기 싫어졌다. 도망가고 싶었다. 내가 의욕을 잃으니, 학원도 시들어 가는 게 느껴졌다. 아이들이 선생님, 선생님 부르는 소리도 귀찮았다. 어느 날은 여태 그래 본 적이 없게 한 아이에게 짜증스럽게 말하는 나를 의식하고 더 힘들어졌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줄 알았는데 괜찮지 않았다. 물론 교습소를 운영하는 동안에 가족과의 갈등이 있었고 정신적으로 황폐했었고 또 그 영향은 신체화 증상으로 드러나 심신이 몹시 고달팠던 탓도 있다.




초등학교 1학년 해솔이 건너편에 앉아 이 아이가 그리는 것을 보고 있었다. 해솔이는 그림을 그리면서 나를 흘낏 보더니 잠자코 있다가 이내 한 마디 던졌다. 아까부터 옆 눈으로 내 눈치를 보고 있던 걸 나도 알고 있었다.


"선생님, 지루해 보여요"


정확하게 '지루해 보여요'라고 말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1학년 아이가 할 수 있는 표현으로 그 의미가 '영혼 없어 보인다'라는 뜻이었던 건 맞다. 무방비 상태였다. 페르소나를 내려놓은 얼굴을 들켜버리고 말았다. 무안하고 당황한 동시에 미안함이 교차했다.




아이들은 선생님에 대해 민감한 촉수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안 보는 척하면서 다 보고 있고 안 듣는 척하면서 다 듣고 있다. 평소 학원으로 들어서는 아이에게 인사를 건네면 못 본 척 못 들은 척했다가도, 내가 상담 좀 하느라 시선이 거둬졌다 싶으면 별것도 아닌 걸 굳이 묻느라 상담실 문을 열어젖히곤 했다. 오래전 액자값이 아까워지면서 아, 이제 작업은 다 했구나! 직감했듯이, 이 1학년 아이의 한마디에 나는 또 깨닫고 말았다. 아, 나 이제 더 이상 아이들을 가르치면 안 되겠구나! 지금의 상태로는 아이들한테 폐만 끼치겠구나 싶었다. 일할 때는 머리에 레이더를 열 개는 심어 놓고 온 신경을 최대치로 가동해 일을 했었다. 그렇게 십오 년을 보냈더니 더 이상 기능하는 레이더가 남아 있지 않았다. 이제는 그저 껍데기로만 앉아 있는 게 1학년 아이 눈에도 다 보일만큼이었던 거다. 맞다.




그 당시 '영혼 없이'는 말이 유행이었는데 내가 딱 그런 모습이었다. 하루하루가, 진액 한 방울을 얻으려 바싹 마른 나무 잎사귀를 한 주먹 있는 힘껏 쥐고 짜내는 것 같던 때였다. 내 안의 모든 에너지가 모조리 소진되어 방전고 말았다. 무기력했고, 마지막엔 영혼 없는 기계처럼 일했다. 워낙 오래 해 온 일이니, 수업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지만, 이 어린아이의 눈에는 선생님이 텅 비어 있는 게 보였던 거다. 아이들은 눈이 맑으니 명하게 보였을 것이다.




만 15년간 세 군데에서 교습소를 했는데 두 번째 교습소와 마지막 교습소는 한쪽 벽면이 모두 통 창으로 된 곳이었다. 첫 교습소에서 밖으로 난 창 하나 없는 막힌 공간에 대한 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겨울 눈이 펑펑 내리는 날엔 실내에 불을 끈 채 퇴근을 잠깐 미루고 테이블에 걸터앉아 있곤 했다. 바깥 풍경에 시선을 던져놓고 어지럽게 날리는 눈발을 보고 있노라면 컴컴한 하늘만큼이나 기분이 가라앉았다. 변덕스럽다. 언제는 퇴근길, 이 풍경을 예상치 못하게 맞닥뜨려서 서러웠다더니 이젠 원 없이 내다보이는데 왜 그렇더냐고 물을 수 있다. 늘 그런 것이다. 배가 부르면 또 다른 배가 고파지는 법이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처럼.




학원을 흔히 '교육사업'이라고 칭한다. 교육+사업. 참 이질적인 단어의 조합이다. 가만히 보면 이 두 가지가 다 되는 원장은 별로 없지 않을까 싶다. 내가 보기엔 '교육' 능력이나 '사업' 능력 중 한 가지만 가지고 있어도 운영할 수 있다. 두 가지 능력이 다 있다면 바로 이 '교육사업'으로 성공할 테고 두 가지가 다 안 되면 오래가지 않아 문들 닫아야 할 것이다. 나도 이 두 가지가 다 됐으면 좋았겠지. 15년간 한 우물을 팠으니, 규모를 크게 키우고 성공적인 서사를 만들어 냈으면 좋았겠지.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어쩌랴. 내 능력이 그것밖에 안 됐는걸.




상가는 분양받았던 걸 중간에 팔고(모친과 크게 다툰 뒤 집을 나가려고) 임대료를 내면서 있었는데 나올 때 임대인과 안 좋게 나왔다. 이 임대인은 다른 층에도 구분소유를 하고 있었고 그곳 역시 미술학원에 임대했다. 동시에 나에게는 더 있기를 바랐다. 이 임대인은 엄마와 지인 사이였다. 더는 힘들어서 제발 그만두고 싶던 차에 경쟁학원이 생긴 거였고 그 학원은 공격적인 홍보를 해대고 있었다. 반면 나는 전투 의지라고는 없었을뿐더러 하루라도 빨리 그만두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았다.




교습소를 정리하고 제주도로 도망을 갔다. 같은 환경에서 같은 일을 오랫동안 했더니 뇌가 돌처럼 굳어버렸다. 내가 내 모습을 생각했을 때, 본실 구석에 지를 뒤집어쓰고 십수 년 째 같은 자리에 서 있는 박제 같았다. 무조건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아침저녁으로 다니는 길, 해 뜨는 아침부터 해 지는 노을까지 다 새로웠으면 했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일, 새로운 공간, 새로운 사람들과의 대화가 절실했다. 한 동창 친구는 그게 바로 현실도피라고 했다. 생각보다 오래 체류하고 있는 나에게 바다를 계속 보고 있으면 우울증이 올 거라고 했다. 나는 날마다 표정을 바꾸는 바다는 그렇지 않다고. 우울증 유발은 높고 낮게 파도치는 바다가 아니라 멈춘 것처럼 보이는 강일 거라고 했다. 그는 바다나 강이나 마찬가지라고 우겼다. 그의 딸은 내 원생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우울증이라면 내가 너보다 잘 알아,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설명하기 귀찮았다.




제주도에 간 지 한두 달이나 지났을까, 일곱 살 아인이 어머님께 전화가 왔다. 아인이는 내 교습소에 오기 전에 여러 군데를 다닌 경험이 있는 아이였다. 아인이 어머님은 수학 과외 선생님이셨는데 수학을 공부한 분이라서 그랬는지 궁금한 건 정확하게 개념을 잡고자 했다. 내가 만났던 학부모 중에 심도 있는 질문을 가장 많이 했던 분이었다. 내가 제주도로 잠깐 여행 간 게 아니라는 걸 모르지 않을 터였다.


"선생님, 언제 오실 거예요?"


"네? 저 당분간 갈 생각 없는데요, 저 한동안 살러 왔잖아요"


"아인이를 지금 새로 생긴 학원엘 보내고 있는데요, 아휴 선생님을 만났던 게 정말 행운이었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아, 네. 아하하.... 그렇게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죠"


"다시 오시면 연락 주세요~"




도망 왔다는 생각으로 마음 편치 않던 와중에 들은 뒤늦은 응원이자 칭찬이었다.

나를 내려놓고 아이들을 가르친 세월에 대한 평가라고 여기자면, 고맙고 꽤 마음에 들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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