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 바람도 비도 눈만큼이나 또렷한 흔적을 남지기지는 못합니다. 쌓이고 계속 쌓여서 이렇게나 넓은 세상을 다 하얗게 만들어 놓네요. 역시 눈이 와야 겨울 같습니다. 소복하게 쌓인 눈을 보고 있으면 왠지 포근하고 그 위로 햇살이 비추면 따스한 기운까지 느껴집니다.
저도 꿈도 나이를 먹는데 아직도 눈이 오면 설레어서 좋습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 위로 발자국을 잔뜩 새겨놓고 싶은 마음은 어릴 때와 같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걷다 보면 먼저 남겨진 흔적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밤과 새벽사이에 고요히 내리는 눈만큼 살포시 그 위를 밟고 지나갔을 작은 존재들입니다. 하얀 세상에는 흔적을 남기기 쉬우니까요. 발자국을 끝까지 따라가다 보면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도 생기고 귀여움에 괜스레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남겨진 발자국처럼 요즘은 지난 시간이 남긴 흔적들에 자주 미소 짓게 됩니다. 특히 사진 속의 저를 보고 있으면 그렇습니다. 지금은 왜 그런 미소를 지을 수 없는 건지 꼭 지나고나야만 그 시절이 소중했음을 알게 되는 걸까요. 나는 청춘이야, 하고 그 시절을 보내는 이는 거의 없을 겁니다. 아직은 이라며 기다렸다가 이제는 이라고 보내버렸겠지요.
저는 이제야 지난해의 기록들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쌓인 눈 위로 남겨진 발자국 위에 또다시 눈을 쌓습니다. 깨끗하게 정리된 새하얀 세상에 이번 해를 잘 남겨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