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을 걸어서

시골독립기

by 샹송

점심때가 되기 전 산길을 걸어 부모님 집으로 간다. 서로 가까워 거의 매일 왔다 갔다 하는데, 날이 좋으면 이어진 산길을 걸어가기도 한다. 내 걸음으로 이십 분이면 도착이다. 중간에 한눈 안 팔고 걷기만 하면 그렇다. 하늘도 몇 번 쳐다보고 멈춰 서서 가을꽃에 코를 박고 향기를 맡다 보면 시간이 더 걸리기도 한다.


산은 계절이 더 가까이 있는 곳이라 잘 느껴진다. 노래를 들어도 좋지만 산길은 그만의 나긋한 음이 있다. 낙엽 지는 소리, 풀벌레 소리, 새소리가 난다. 꽃 위를 붕붕거리는 벌소리도 있다. 그렇지만 어딘가 한편은 늘 고요하다. 지독히 고요해서 햇살이 내리쬐는 소리도 들은 듯하다.

이렇게 걷을 때면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할아버지도 거의 매일을 윗동네 아랫동네를 걸어서 다니셨다. 나와 다른 길이지만 떠나고 도착하는 곳은 같다. 난 꼭 할아버지가 된 듯하다. 마당을 쓸고, 햇볕에 잘 말린 호두를 돌로 까서 씹어먹을 때나 저녁 어스름한 마당을 찬찬히 걸으며 하늘을 바라볼 때도 그렇다. 할아버지의 외로움을 헤아리느라 그런 듯하다. 할머니를 먼저 떠나보내고 이십 년 넘게 홀로 사셨다. 그래도 그것은 해 없는 외로움이었을 것이다. 나도 가끔 그런 외로움을 느낀다.


비가 잦았던 탓에 벌써 말랐을 물길에 잔잔히 물이 흐른다. 그곳은 쉼터처럼 잠깐 머무르는 곳이다. 나무 사이로 비친 햇살에 물결이 반짝이며 흐르고 있다. 산길의 중간 지점이다. 조금만 가면 금세 도착이다. 점심 한 끼는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한 뒤에 다시 돌아간다.


그때는 이제 오후다. 오후 산길은 분위기가 다르다. 바람기가 더 세지고 더 그늘이 져있다. 낙엽이 우수수 진다. 또 다른 날 내가 걸어갈 길 위로 지난 계절이 쌓인다. 그늘 아래 꽃은 외로이 바람을 맞는다. 걸음이 자연히 빨라진다. 마을이 보이는 내리막에 도착해서야 잠깐 서본다. 어설픈 해의 기운 아래 동네 한가운데 세모와 네모 도형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우리 집이 보인다. 왜인지 홀로 선 빈집에선 따스함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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