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을 닮은 오후

시골독립기

by 샹송

요즘 날이 참 좋습니다. 가끔 있는 바람의 변덕이 싫지 않은 날들입니다.


바람이 차긴 해도 부드럽게 불어올 때면 꼭 하고 싶은 얘기라도 있는 듯 고분고분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는 해가 마당을 지나 서쪽을 비추는 오후라도 바깥에 앉아 가만히 바람을 쐬어봅니다. 그 바람 다시금 집 밖을 나서고 싶게도 합니다.

바람이 심한 날에는 우당탕 소리가 나서 마당을 몇 번 내다보게도 하였습니다. 바람이 이불을 널어놓은 건조대를 무너뜨리고 현관문 옆에 걸어놓은 쓰레받기를 내동댕이 쳤습니다. 마당일 할 때 끼는 장갑과 쓰레기를 담아놓은 봉투도 렸습니다.


나가서 정돈을 하고 빨래를 걷고 있으면 바람이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의 냄새와 소리를 천천히 배달해 옵니다.


어린 시절에 자주 맡았던 희미한 나무 냄새가 퍼집니다. 건넛집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새들이 저녁밥을 먹느라 지저귀는 소리, 개들이 저들끼리 나누는 대화소리, 가족 간의 소소한 말소리도 들립니다. 모든 것들이 기억 속의 어느 날엔가부터 그대로 있었던 듯 친숙합니다.


고개를 돌려 아직 햇살이 드는 길 한가운데 담장을 바라봅니다. 날이 저물도록 바깥에서 놀고 있던 어린 시절, 그때의 그 소리가 어땠을지 모르겠습니다. 늘 그 안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은 모른 채, 어른들만이 그 소리를 기억하고 그리워할 것입니다.

나간 김에 호두를 몇 개 까먹고 껍데기를 치우는 김에 마당도 씁니다. 추워지면 그렇습니다. 일어선김에, 나간 김에 이일 저 일을 하게 됩니다. 혼자 살면서는 일이 많아져서 시간이 아주 잘 갑니다. 바쁘게 하루가 지나갑니다.


그런데 또 싫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게 홀로 사는 매력입니다. 밥도 있는 반찬과 간소하게 챙겨 먹고 빨래랑 청소도 미룹니다. 마당 낙엽도 굴러다닐 만큼 굴러다니게 두다 언제고 마음이 들면 빗자루를 듭니다.


이 오후의 시간들은 늦가을을 닮았습니다. 바람이 불고 찬 공기가 흐르는 가운데 하루를 정리하고, 찾아드는 그리움으로 가슴을 물들이다 이내 고요하게 저녁을 맞이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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