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두 켤레 장갑"

가을과 겨울 사이

by 샹송

오래전에 할아버지께 겨울 장갑을 한 켤레드린 적이 있었데, 그 장갑을 사주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생각지 못하고 지내던 어느 었다.


낡아서 해진 부분이 서툰 솜씨로 삐뚤빼뚤 꿰매진 장갑을 보게 되었다. 장갑이 해지기까지 그토록 오랜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새까맣게 잊고 있던 것을 할아버지는 매년 겨울이면 그 장갑을 꺼내 끼고, 열흘에나 한 번씩 안부 전화를 거는 손녀딸을 내내 생각했을 것이다.


버젓이 새겨진 마음을 너무 늦게 알아차려 속이 상고 장갑 한 켤레에 할아버지의 마음이 다 보여 눈가가 금세 촉촉해졌다.



"며칠 전에는 장갑 한 짝을 잃어버렸다고 온 데를 다 찾아다니더라. 그 해진걸 왜 그렇게 찾아다니나 했더니, 네가 사줘서 그런 거 같아. 한 켤레 다시 사 드려라."

장갑을 빤히 보는데 엄마가 한 마디 했다. 나는 바로 장갑을 새로 하나 주문했고 다음번에는 장갑이 해지기 전에 미리 사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 다짐은 지킬 수가 없었다.




재작년 가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할 때 보니 장갑이 두 켤레 있었다. 할아버지께 남아있던 나의 흔적은 그 장갑 두 켤레가 다였다.


해진 장갑을 버렸을 거라 생각했는데 계속 보관하고 계셨고 두 번째로 사준 장갑은 얼마 끼지 않아 거의 새것 같았다. 둘 중에 어느 것을 간직할까 고민하다 두 번째로 사준 장갑을 택했는데, 첫 번째 장갑은 왠지 간직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였다.


그러면서도 눈은 계속 낡은 장갑에 머물렀다. 할아버지는 그 장갑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고 계셨다. 장갑을 버리면 내 마음을 버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셨을 테지. 나는 장갑과 함께 시계, 안경, 사진 한 장을 따로 챙기며 눈물을 참았다.


할아버지는 가족들 중 가장 먼저 이별을 하게 될 존재였다. 그 사실이 머리가 아닌 마음속에 자리 잡은 이후부터 할아버지 앞에서는 울보가 되어버렸다. 툭하면 눈물을 쏟아내며 할아버지와의 이별을 생각했지만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후회는 또 다른 종류의 슬픔이었다.


내가 준비해야 했던 건 다시 보지 못한다는 슬픔만이 아니라 함께 하지 못했던 수많은 시간이라는 걸 몰랐다. 슬프지 않은 건 아니었는데 후회를 이기지는 못했다.


이번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렸으면 좋겠다. 하늘나라에서 보낸 새하얀 선물 위에 내 마음을 새겨 보여드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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