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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ttagirl Jan 11. 2019

마음을 비운다는 것



이제 제 식으로도 물어보겠습니다. 해저드는 골프코스 상에 존재하나요? 아니면 우리의 마음 속에 존재하나요? 물론 그 문제에 대한 대답으로 샷이 더 쉬워지는 것은 아닙니다만.  


저는 오래 전부터 드문 드문 요가를 배워왔고, 얼마 전부터는 본격적으로 수련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전부터 요가에서 제일 중요하면서도 동시에 제일 어렵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더군요. 그건 바로 마음을 비우는 일입니다. 20년 전 요가를 처음 접했을 때 제 요가 선생님은 수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매번 명상하는 시간을 갖게 하셨습니다. 가부좌로 튼 다리 위로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으로 고리를 만들어 지긋이 올려놓고는 허리와 고개를 꼿꼿이 편 상태로 "마음을 비우라"고 명하셨지요. 하지만 그 주문과 정반대로 제 머리 속에는 온갖 생각들이 떠다닙니다. 단골 고민으로부터 시작해 누군가에게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사소하고 치졸한 생각들에 더해 '마음을 비우라'는 그 생각까지 갖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가득 채웁니다. 가끔은 잠도 듭니다. 명상은 요가를 위한 관문이라는데, 명상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는 요가를 하기에는 글렀구나 하고 단념할 수 밖에요.


2년 전 '아쉬탕가'라는 요가의 한 장르를 접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요가라는 것은 마음을 비우는 것으로 시작되는 게 아니라 마음을 비운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거치는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을 말이죠. 다시 말해, 마음을 비워야 요가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요가를 함으로써 내 몸의 소리에 집중하게 되고, 그렇게 마음으로 들어감으로써 마음의 고삐를 잡게 되는 것(‘요가’라는 말은 ‘고삐에 묶다’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이며, 마음을 가득 채울 때 그제서야 마음이 비워진다는 것을요.


아사나(자세)를 수련하면 우선 신체적인 몸, 감정의 몸, 에너지의 몸에 쌓인 독소들을 태워 없앤다. 요가 자세들은 또한 마음의 기본적인 작동회로를 변화시킨다......요가는 어려운 상황을 피해 도망치거나 방어기제를 강화하는 대신 마음이 그 자리에 가만히 머룰러 있을 수 있도록 훈련시킨다. 요가에는 방어기제가 자라날 공간이 없다. 사실 요가 자세들은 당신이 발달시킨 모든 방어기제를 벗겨 냄으로써 당신 존재의 중심에 있는 내면의 순수함이 드러나도록 고안된 것이다. (키노 맥스레거, 아쉬탕가 요가의 힘,침묵의 향기, 2017)


아쉬탕가 요가의 동작들은 하나도 쉬운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편하게 느껴지면 그건 잘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정도니, 말은 다했죠. '트리앙 무카 에카파다 파스치마따나아사나', '자누 쉬르샤아사나', '나바아사나', '부자피다아사나'  발음하기조차 어려운 자세들을 취하다 보면 어느 날에는 이런 깨달음도 얻습니다. 자세를 제대로 취하기 위해  몸의 상태를 살피고 그것에 집중하다보면 마음이 자연스럽게 비워지고 있다는 , 마음을 가득 채우면 그때서야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진다는 것을요. 몸을 통해서야 마음으로 들어갈  있으며,  몸은 마음의 저장소이며  마음으로 들어가는  통로인 것을 넘어, 애초에 몸과 떨어진 마음이라는 것이 가당키나  것인가를  존재로 느낄 수가 있습니다.


저는 골프에서 해저드는 골프코스 위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 속에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피하는 것은 그것을 피하자고 생각함으로써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가득채움으로써 가능하다고 말입니다. 해저드를 피하기 위해서는 내 마음 속에서 해저드를 지워야 하지만, 그것은 해저드를 생각하지 말자는 주문으로써가 아니라 해저드가 아닌 것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을 가득 채울 때 마침내 가능할 겁니다.


그래서 이제 하루키의 질문에 대한 제 나름의 답변입니다. 도넛의 구멍은 도넛의 맛있음이 최고조로 응축되어 있는 가장 맛있는 '공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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