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립 보행을 확인하다. 5

서울식당. 김치찌개, 두루치기

by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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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 몸이 가볍다. 9시 출발. 걸음 속도를 더욱 빠르게 했다. 몸의 근육들이 점점 익숙해지려고 한다. 짧게 휴식을 갖는 동안 회복력이 좋아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섣부르고 경솔한 판단이었는지는 몇 시간이면 족했다. 그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루기로 하고 먼저 시간이 이끄는 수레에 올라타면 적교 삼거리에 도착하게 된다. 점심을 먹기 위해 배낭을 내려놓았다. 두 다리에게 위로를 보낼만한 공간을 탐색하는데 적당한 그늘이 없다. 너무 허름한 그늘은 노숙자나 거렁뱅이로 보일 수 있다. 여행자의 품격까지는 몰라도 거지처럼 보이면 안 된다. 서울식당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마음은 이미 나보다 저만치 앞서 식당 문을 열고 허름한 등을 보이며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명랑한 목소리가 나를 맞는다. 김치찌개를 주문했다. 주문을 받으며 보이는 얼굴은 무척 밝고 행복해 보인다. 뭐가 그리 좋은 일이 있다고 저렇게 즐거울까. 힘들어 죽겠구만.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하는 법. 주방에서 들리는 경쾌한 칼질 소리는 피로와 땀이 엉겨있는 어둠의 기운을 단칼에 몰아낸다. 그런데 김치찌개에 무슨 칼질 까지? 아마도 객지 손님이라 신경 좀 쓰시나 보다. 아니면 기분 좋은 일이 있어서 인심 한 번 쓰시던지. 그것도 아니면 본래 김치찌개에 필요한 과정일 지도. 날카로운 쇠와 평평한 나무가 만나서 부딪히는 소리는 좁은 식당 안에 울려 퍼지며 활기를 불어넣는다. 한음 한음 정확히 끊어 내며 경쾌하게 귀를 때리는 소리는 입안에 침이 고이게 한다. 파블로프의 실험이다. 나는 지금 개다.


주방에서 들리는 칼질은 그 리듬과 소리의 질에 따라 요리하는 사람의 경륜과 성격도 나타내는 법이다. 악기를 다루지는 못해도 연주가의 솜씨가 훌륭한지는 귀 있는 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듯이 주방에서 요리하는 사람은 머뭇거리거나 뒤섞이지 않은 간결한 발소리, 그릇의 달그락 거림과 물소리 하나까지도 악보처럼 짜임새 있는 형식을 갖추고 있어 그 소리만으로도 소위 짬밥을 가늠할 수 있다. 또한 밥때가 되면 그 소리는 그날의 반찬을 결정했음을 알리는 포고령이 된다. 각종의 재료들은 도마 안에서, 칼에 의해서 썰어진다. 이때 고유한 리듬과 소리의 깊이는 재료마다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다르듯이 음식재료의 성질도 각각 달라서 칼과의 교섭은 당연히 그 재료의 고유한 것을, 열을 가하지 않고 다른 재료들과 섞이지 않은 상태에서는 유일하게 칼날과 접촉하는 그 도마 위에서 분리되며 자신의 속성을 드러낸다. 담백하고 가장 근원적인 것이다.


당근이나 무는 강하고 절도 있는 박자와 소리를 내고 채를 썰때도 박진감이 넘친다. 오이나 양파, 배추는 가볍고 빠르며 경쾌하다. 쪽파나 시금치 같은 종류의 것들은 가장 가볍게 압축된 긴장의 소리를 낸다. 쪽파의 경우 써는 양은 한 손으로 재료를 억압하지 않고 가득 잡을 수 있는 만큼을 지그시 눌러 움켜 잡으면 적당하다. 손아귀에서 잡혀 있는 파들은 자신을 복원하려 저항하며 팽팽하게 탄성을 유지한다. 최대한 높아진 긴장의 선을 넘어 날카로운 칼날이 파의 몸통을 터뜨리며 지나갈 때는 최초의, 하나의 쪽파 줄기가 톡 하고 터지며 비로소 자유를 만끽하듯 튀어 오른다. 부욱 하는 소리와 함께 칼끝이 도마의 표면에 원한이 쌓이지 않을 정도의 상처를 내면, 동시에 잘려 나가며 움켜쥔 손을 떠난 파들은 본래의 부피를 되찾으며 불쑥 부풀었다가 풀어진다. 마치 물 밖으로 나오며 참았던 숨을 최대한 깊이 마시고 뱉어내듯이. 분리를 통해 해체의 자유를 누린다.


배추로 담근 김장김치는 가장 깊이 있고 신중한 소리를 낸다. 김치는 온전한 날것도 아니고 열을 가해 익히지도 않았다. 기다리고 애쓴 충분한 시간 안에서 숙성이 된다. 적당한 크기의 배추를 반쪽으로 갈라 담은 김치는 소금으로 절여져 수분이 갖고 있던 활달함을 적당히 덜어낸 여러 겹의 잎들이 차분하게 서로를 의지한다. 양념이 비집고 들어간 잎과 잎 사이의 친밀함은 보관과 발효에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 부드럽게 꼭꼭 눌러 숨을 가라앉게 하지 않으면 김치는 중2병에 걸리듯 숙성을 거부한다. 나중에 그 맛은 변성기의 목소리같이 이도 저도 아닌 맛을 내게 되는데 우리는 그것을 김치 맛이 미쳤다고 한다. 무엇이든 잘 되려면 적절한 환경과 관리가 필요하다.


숙성된 김치는 항아리나 김치통의 뚜껑을 열어젖히는 순간부터 도마 위에 오르기까지 경건함을 잃지 않고 절차와 의식을 따른다. 잘 익은 포기들이 가지런히 빠알간 뺨을 보이며 부끄러워하듯 잠들어있다. 하나를 선택해 머리를 살며시 일으켜 세우고 미처 따라 일어서기 버거워하는 잎의 끝부분은 치마 자락을 모아 잡듯 다른 손으로 받쳐 국물을 부드럽게 짜내고 조심스럽게 도마 위에 눕힌다. 그릇에 담게 되는 크기를 먼저 결정하고 칼날을 고정한 다음 지긋이 힘을 가해 앞뒤로 한 번 짧게 움직이면 얕은 칼집이 난다. 칼은 주인의 독특하고 일정한 방식에 따라 한 번에 길게 밀어 썰거나 두어 번의 움직임을 통해 과감하게 썬다. 소리의 절정이 칼날과 도마가 닿는 그 순간이라면 재료들의 피부를 가르고 침투할 때의 얕지만 날카로운 소리와 깊숙이 파고드는 질감들의 쪼개짐은 마지막 절정의 순간을 위안 크레셴도가 아닐까.


밀도 있게 포개져 있지만 김칫잎 한 장 한 장을 통과할 때마다 소리는 짧은 화음을 만들어 낸다. 그것은 김치를 담을 때 들어가는 모든 재료들의 숙성된 소리이다. 그러한 이유로 배추김치의 소리가 단일 한 어떤 소리와도 다른 협연의 소리처럼 깊고 풍부한 것이다. 그 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농밀한 침을 고이게 한다.


칼들이 춤을 추고 리듬을 타기 시작하면 그에 비해 조용히 끓고 있는 육수의 냄새가 먼저 주방과 식탁에 바람잡이로 나선다. 재료들은 자신들의 성질에 따라 조리될 차례를 묵묵히 기다린다. 기다리고 인내하는 것은 선한 덕목에 속한다. 그리고 개성 넘치는 개별 재료들이 뜨거운 용액 안에서 뜨거움을 받고 차가움을 내주며 섞이고 변화하여 독특한 하나의 맛을 창조한다. 그렇다고 각각의 맛과 향을 포함한 고유한 특성을 잃지는 않는다. 다만 섞임으로써 다양함을 더해줄 뿐이다. 사람도 그렇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지만 그 모든 것은 '개인'이 구성한다.




요리가 끝날 때까지 주방과 나 사이에 대화가 오고 갔다. 서울까지 걸어서 가는 중이라 말했다. 당연히 납득하지 못하는 수준의 행동이라는 반응이다. 대화는 여전히 밝고 경쾌하게 진행된다. 빨리 차를 타고 가라며 타이르고 충고하며 농담조로 말한다. 친근한 대화는 잦은 핀잔까지도 애정 어린 관심으로 환원한다. 그 여자는 그런 분위기를 발산한다. 얼른 먹고 차 타고 가라며 고기를 수북하게 한 접시 가져와 식탁에 놓는다. 살갑게 핀잔까지 하며 차 타고 어서 집에나 가라고 하더니 서비스를 이리도 주시나. 그런데 뭔가 심상치 않다. 양도 만만치 않을뿐더러 김까지 모락모락 나는 게 자세히 보니 여분의 음식을 데워 내놓은 것 같지가 않다. 양파를 비롯한 고기의 상태가 갓 볶은 모양새다.

" 이건 뭐예요?" 내가 말했다.

" 돼지 두루치기요."

" ? ..."

" 와 두루치기 안시켰능교?"

" 김치찌개 시켰는데."

" 아이고야... 2인분이나 했는데."

기대라도 했던 일이 마침 벌어지기라도 한 양 너무 밝게 웃으며 말한다. 마치 연극의 재미있는 장면 속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한 관객처럼. 난감해하는 표정이 드러날까 시선을 피하려던 나도 그 짧은 소극에 참여하였다. 기쁜 마음으로. 두루치기 2인분에 공깃밥 두 그릇. 많은 양의 식사를 했다. 그렇게 먹고 오천 원. 김치찌개 값을 받는다. 공깃밥도 덤으로. 자리에서 일어서 주섬거리며 떠날 준비를 하는 와중에도 차비를 줄 테니 차 타고 가라며 끝까지 핀잔과 설득을 이어간다. 애정 어린 관심. 서울식당 아지매 고맙습니다.


길 위에서 아지매를 생각했다. 발밑의 시선을 먼 길 끝으로 옮기고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하늘은 아름다웠다. 세상도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숨을 쉴 때마다 가슴속에 그만큼의 공간이 자꾸 생겨난다. 그 속에서 삶을 지속하는 이유들이 날마다 하나씩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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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늘어놓는 게 습관이기도 하지만 쓰는 것도 지루하게 느껴지는 이야기를 중간에 페이지를 찢어버리지도 않고 단어들을 따라 여기까지 내려오신 여러분들께는 진심으로 고마움과 경의를 표한다. 그래서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를 하려고 한다. 물론 방금 두곡에 도착했고 별다른 일없이 잠을 자면 그만이지만 일기에 적어놓은 하찮고 작은 일들을 그래도 기록하고자 해서 다음 편에 계속 이어서 마무리를 할 것이다.


기다리시지 않는다는 것 잘 안다. 그래도 혹여나 마음 둘 곳 없는 외로운 사람이 아무나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듯 친절로 느끼지도 않을 일을 친절이라 생각하며 말하는 것이다.


여러분들의 관용을 기대하며... 매일매일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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