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나 미안한지
겨우내 얼어 죽은 고무나무를 아내는 버리지 않았다.
지난겨울 베란다에서 추워 얼어 죽은 고무나무를 발견한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죽은 거 같은데?"
타버린 듯 까매진 나무를 보며 아내는 깜짝 놀랐지만, 열대나무인 고무나무가 겨우내 베란다에서 죽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생각해 보니 약간씩 상태가 이상해지기 시작한 것은 몇 주 전부터였던 것 같다. '괜찮겠지' 생각만 하고 나무를 거실로 옮겨두지는 않았던 것이 아쉬웠다.
아내는 죽은 나무를 거실로 옮기고 물을 주었다. 의미 없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말리지 않았다.
"미안. 내가 너무 무심했네. 미안해. 힘을 내서 다시 살아나거라. 미안해"
아내는 슬퍼하며 나무에게 미안하다 말했다. 나도 약간은 슬퍼졌고 조금은 미안해졌다.
"빨리 미안하다고 그래"
아내가 나에게 말했다. '굳이? 책임지지 못한 죄책감을 떨쳐버리려는 걸까?' 생각했지만, 저 정도의 눈빛이면 아내의 말을 듣어야 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미안. 고무나무야.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
"다시 살아나거라. 힘을 내서 살아나거라. 해야지!"
"죽었는데?"
"쉿! 나무가 듣고 있어. 안 죽었다니깐. 미안. 힘을 내서 다시 살아나거라. 해야지."
"..., 미안 고무나무야. 힘을 내서 다시 살아나거라."
아내는 고무나무를 거실 창가 햇볕이 가장 잘 드는 자리에 놔두고 미안하다 말하며 때가 되면 물을 주었다. 그렇게 추운 1월이 지났다. 이 정도면 충분히 기다린 것 같다며 이제 버리자고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는 정색하며 안된다고 말했다. 아내는 화초를 좋아하지만 가꾸는 것에는 그리 소질이 없었는데 제자들이 선물한 이 나무는 쉽게 포기가 되지않는 것 같았다. 나무에게도 미안했겠지만, 선물한 제자들에게 더 미안한 것이 분명했다.
거실 햇볕 제일 잘 드는 곳에 있는 생기 없는 까만 고무나무를 보고 있자니 경부고속도로 부산방향 천안부근 왼쪽으로 햇볕 잘 드는 곳에 있는 무덤이 생각났다.
2월이 지나며 여전히 아내는 나무에게 '힘내라' 말하며 때가 되면 물을 주었다. 나도 나무에게 '힘내라' 말했다. 나무는 더 까매진듯했다. 이제 '힘내라' 말은 어쩌면 아내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인 것 같았다. 아내가 나무를 보며 '힘내라' 할 때마다 나도 '힘내라' 말했다.
누런 잔디 사이로 연초록 새싹이 돋아나던 3월 어느 날 아침, 아내가 나를 불렀다.
"고마워. 너무 수고했다. 너무 고맙다."
아내는 연신 고무나무에게 고맙다, 수고했다 말했다. 아이 새끼손가락 손톱보다 작은 연초록 잎사귀 하나가 보였다. 나도 수고했다, 고맙다 말했다. 마음이 물컹해졌다. 한참을 아내와 함께 아이 새끼손가락 손톱보다 작은 연초록 잎사귀를 보았다. 어찌나 고마운지 그리고 어찌나 미안한지.
아이 새끼손가락 손톱보다 작던 연초록 잎사귀는 이제 아이 손바닥만 해졌다.
어찌나 고마운지 그리고 어찌나 미안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