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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더 Mar 17. 2023

직장을 떠나고 2주간 배운 것들

나의 첫 갭이어 프로젝트

퇴사하고 3주 차가 되었다. 이직을 고려하지 않은 퇴사는 만 10년 경력 중 이번이 처음이었다. 난 올해를 갭이어로 갖고, 프리랜서 에디터이자 콘텐츠를 만드는 크리에이터로서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누군가는 이걸 대책 없다고 보겠지만, 불확실성 속에서 새로운 챕터를 쓸 용기라고 생각하고 밀어붙이기로 했다.


대책 없음 → 용기

멈출 용기

작년에는 유-난히 회사 일이 바빴다. 지금껏 해본 적 없는 그리고 앞으로도 다시는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수많은 프로젝트를 동시다발적으로 해냈다. 동료들의 농담처럼, 정말 뽕 맞은 것처럼 미친 듯이 일에 매진했고 또 그 과정이 즐거웠다. (지금 생각해도 진짜 미쳤던 것 같다)

하지만 회사 일도 넘치는데, 주말에는 남편의 빵집에 출근해 풀타임으로 일해야 했다. 작년은 남편이 새롭게 빵집을 시작한 한 해이기도 하다. 나는 넘치는 회사 일로도 정신이 없어서 평일에는 새벽까지 일하고, 주말도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일해야 했다. 우리 부부는 가게 운영이 처음인 데다가 턱없이 부족한 시간과 걷잡을 수 없이 소진되는 체력으로,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있었다. 자주 다퉜고, 집은 엉망이었다. 가게를 시작하면서부터 점점 돼지우리가 되어가는 집에서 살아남기 위해 청소 앱 서비스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작년 소비한 것 중 1등으로 꼽을 만큼 만족스러웠다) 초겨울에 접어들 무렵에는 번아웃으로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지는 듯했다.

나는 지금껏 일을 오랫동안 쉰 적이 없었고, 일상에서 성실하게 해내는 루틴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 퇴사를 나의 갭이어를 위한 새로운 챕터로 삼기로 했다. 오히려 이번 일을 계기로 월급과 소속감이 주는 안정감을 내려놓고, 더 주체적인 삶을 살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회사는 언제든 나를 내칠 수 있으니까!


휴식

퇴사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휴식이었다. 사실 퇴사하는 순간부터 이것저것 콘텐츠를 만들 계획이었는데, 막상 회사를 나오고 나니 너무 지쳐 새로운 걸 시작할 에너지가 도통 올라오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첫 주에는 수면 시간을 늘려보고자 알람 없이 늦게까지 푹 잤다.

퇴사 전에 받아뒀던 외주 일을 무리 되지 않는 선에서 해내며, 그 외의 시간은 편하게 쉬었다. 천천히 커피를 내려 마시며 멍때리고, 도서관에 가서 책에 파묻혀도 보고, 천천히 아침을 정성스레 먹고, 지인들도 여유를 가지고 만났다. 특히 짧지만 굵게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부터 정신이 환기되면서 에너지도 올라왔다.


루틴 찾기

에너지를 조금씩 회복하고 나서 2주 차부터는 내게 잘 맞는 루틴을 찾기 시작했다. 지금껏 정해진 일정에 따라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 너무 익숙해졌어서, 내게 잘 맞는 루틴을 찾아볼 시간을 가져본 적 없었다. 나는 이참에 새로운 것들을 많이 시도해볼 생각이다.   


1. 불렛저널 쓰기

올해 초부터 새롭게 시작한 습관인데, 아침에 일어나 일하기 전에 불렛저널 쓰기로 시작하는 것이다. 그간 노션이나 시중에서 파는 스케줄러를 써봤지만, 내 방식대로 써 내려갈 수 있는 불렛저널이 마음에 든다. 전체적인 일정과 해야 할 것들-기억해야 할 것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직접 써보고 만져보는 물성이 있다는 점에서 디지털보다 더 좋다.   


2. 운동

두 번째는 운동에 대한 부분이다. 체력이 인생 최저 수준으로 바닥나는 바람에, 꾸준한 운동 습관을 만드는 게 가장 큰 목표이기도 했다. 일단 오전에는 몸이 굼뜨고 기력도 좀 없는 편이라 집 주변을 설렁설렁 산책하는 게 잘 맞았다. 바깥바람을 쐬며 땅을 밟는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도 느꼈다. 잊고 있던 사실인데, 아침의 신선한 공기가 하루를 더 기분 좋게 해준다는 걸 알았다. 특히 3월이 되면서부터 하루가 다르게 연두연두하게 싹이 올라오는 걸 관찰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일을 마치고 난 늦은 오후나 저녁에는 런데이라는 앱으로 인터벌 달리기를 하기 시작했다. ‘30분 달리기 도전’이라는 프로그램으로 훈련을 시작했는데, 초보자를 위해 조금씩 난도를 높여가고 음성 코칭이 잘 되어 있어 유용하다. 예전에는 운동이 괴롭기만 했는데, 이젠 생존을 위한 거라 생각하니 마치고 나서의 뿌듯함이 더 크다. 꾸준히 해서 진짜 몸이 달라진다는 걸 느껴보고 싶다.


3. 반성

퇴사하고 나서는 미라클 모닝까지는 아니어도, 8시에는 일어나서 10시에 책상에 앉으려고 마음먹었었다. 그런데 왜 이리 아침에 눈을 뜨기가 힘든지, 거의 대부분 9시쯤 일어났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는 유독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아침 일찍 일어나 등교하는 걸 힘들어했었다. 평생 야행성 인간으로는 살아봤어도, 아침형 인간으로는 살아보지 못했는데.. 그럼에도 다음 주부터는 작정하고 최소 8시에 일어나서 아침 루틴을 하나씩 만들어가야겠다. 일단 늦게 일어나면 기분이 안 좋은 상태로 하루가 시작되기 때문에, 일정한 기상 시간부터 아침 루틴까지를 잘 지켜나가야겠다.


새로운 목표

‘다운시프트족’이라는 신조어를 보고서는, 딱 내 상황에 들어맞는 말 같아서 신기했다.


다운시프트족[downshifts]
지금까지 눈코 뜰새없이 바쁘게 살아온 삶의 속도를 늦추고 느긋하게 삶을 즐기려는 사람들을 말한다. "저속 기어로 바꾼다"는 뜻의 "다운시 프트(downshift)라는 단어를 활용해 만든 조어다. 이들은 수입이나 사회적 지위에 초연하고 느긋하게 삶을 즐기려는 태도를 견지한다. 또 한 정기급여와 연금을 포기하고 재택근무나 마음에 맞는 자영업을 택 하거나 주거지를 도시 외곽이나 전원으로 옮기기도 한다.


번아웃에 지쳤지만, 올해는 일을 아예 멈추기보다는 저속 기어로 바꿔서 좀더 삶의 균형을 맞추면서 살아볼 것이다. 일과 라이프스타일 어느 한쪽에 너무 치우치지 않으면서, 나를 돌보고 내 가능성을 더 발견하며 나와 타인에게 더 다정해져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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