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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진 May 07. 2020

아이가 타고 있어요, 그리고 나는 일기를 쓰고 있어요

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구가 있다.


‘아이가 타고 있어요.’

(조금 더 자세히 표현이 된 것들도 꽤나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여아 / A형 / Rh+'같은...)


처음 이러한 스티커 문구를 봤을 때 생각했다. 차량에 아이가 타고 있으니 주변의 운전자들에게 조심히 운전해달라는 뜻을 전하는, 아주 따스한 목적이 담겨있다고(아이들이 타있으니 천천히 달리더라도 배려해달라는).


하지만 이 스티커 문구에는 더욱 깊은 의미가 담겨있다. 해당 차량이 교통사고가 났을 경우, 잊지 말고 아이의 생명부터 구해달라는 것이다. 1980년대 북미 지역 고속도로에서 어느 교통사고가 발생했었다. 어린아이를 태우고 가던 부부가 심각한 충돌로 인한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되었고, 당시 사고의 충격으로 차가 심하게 찌그러지는 바람에 차량에 아이는 발견되지 못했다. 이후 차량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어린아이는 좌석 아래에 죽은 채로 발견됐다. 이 일을 계기로 아이를 태운 차량은 ‘Baby on board’라는 노란색 스티커를 부착하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교통사고 등의 위급한 상황에서는 체구가 작은 아이가 쉽게 발견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스티커로 아이가 차량에 있음을 구조요원이나 다른 운전자에게 알리기 위한 장치인 셈이다.


이와 같은 사연을 알게 된 후로 마주했던 수많은 스티커를 보면 괜히 뭉클했다. 스티커를 부착한 채 차들이 쌩쌩 지나가는 도로 위에서 자신의 생명보다 아이의 그것을 먼저 생각했을 사람들. 오늘도 몇 번이나 봤는지 모르겠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내가 평소 '일기를 쓰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 까닭. 이 또한 깊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아주 나중에라도 내가 슬럼프에 빠지거나 힘에 겨울 때, 누군가 나의 일기를 살포시 열어봐 줬으면 하는. 내가 그냥 투정 부리는 것이 아니라고. 나만의 깊은 슬픔과 이유 있는 행동이었다고. 그날의 어두웠던 표정과 말투들이, 그런 고민과 걱정 때문에 그랬었구나... 하고 누군가는 알아봐 주기를.


지나치는 수많은 자동차의 뒷모습만 잠시 바라봤음에도 스쳐가는 생각은 더 많았던 하루.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황동규, <즐거운 편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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