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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른디귿 Apr 08. 2021

질량 보존의 법칙

모모의 초단편소설

<출처-pixabay>

    


    밀도가 커지면 질량도 커진다. 그 질량은 물질마다 고유한 값을 지닌다고 배웠다. 문과를 나온 내가 저 말을 기억하는 건 순전히 물리 선생님 때문이다. 물리쌤은 두 가지의 별명이 있었는데 하나는 고길동이었고 다른 하나는 둘리아빠였다. 물론 고길동과 닮아서였다. 정작 '아기공룡 둘리'에서 둘리아빠와 고길동은 다른 인물이었지만 우리 모두 암묵적으로 그렇게 알고 있었기에 고길동으로 때로는 둘리아빠라고 불렀다. 고길동의 어렸을 적 꿈이 성우일 정도로 목소리가 좋았다. 바리톤의 음성으로 '지영아~,주희야~상은아~' 하고 성을 빼고 출석을 부를 때면 교실은 은혜받은 소녀들의 아우성으로 가득 찼다. 다른 반 아이들은 우리 반 담임이었던 물리쌤한테 자기들도 이름 한 번 불러달라고 떼를 썼지만 고길동은 우리 반 외에 다른 반에서는 출석을 부르지 않았다. 물론 이름을 부를 때는 세 글자 꼬박 다 불렀다. 오후 수업이 있을 때에는 가끔 기력이 떨어질 시간에 맞춰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금방이라도 소를 몰고갈 목소리로 군대 가기 전에 짝사랑하던 여자에게 불러주었다던 김광석의 '내 사람이여'를 들려주었다. 고길동은 우스갯소리로 얼굴이 못생겨서 고백도 제대로 못했다고 했지만 그 순간 우리 반은 모두 고길동의 연인이 되고 싶어 했다. 쌤은 농담을 잘 섞어서 수업을 진행하였는데 그 덕에 이과 과목은 손 놓고 있던 우리들에게 지겹게 나오는 각종 물리적 법칙에 대해서도 잘 알게 해 주었다. 물론 지금은 기억나질 않지만.

     "너들,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에 대해 들어봤제?"

질량 보존의 법칙을 배우는 시간에 쌤이 말했다. 쌤은 묵직한 목소리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 오리지널 대구 사투리를 썼지만 얼굴 하고는 찰떡같이 잘 어울렸다. 우리는 그런 강력한 무기를 장착한 반전 매력의 고길동을 좋아했다.  

    "너거들, 세상에는 안타깝게도 나같이 완벽한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나중에 사회 나가면 알겠지만 진짜 이상한 사람 많거든. 그때마다 이 쌤이 얘기해준 거 잘 기억해래이. 세상은 넓고 또라이는 많다. 지뢰게임 알제? 그거처럼 지뢰 안 밟겠다고 막 머리 써 봤자 소용없다. 세상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가 아주 많거든. 그게 당장 니 앞에 안 보인다고 착각하지 마라. 그 지뢰가 너일 수 있다는 거. 명심해라. 언제든, 어디서든 일정한 비율의 또라이가 항상 존재한다는 거. 주변에 또라이가 보이지 않으면 너들이 그 또라이라는 거. 잊지 마라. 변화가 일어나기 전 물질의 총 질량과 변화가 일어난 후 원자의 배열은 바뀌지만 물질의 총 질량은 서로 같다.알긋제? 겸손해라. 그럼 적어도 또라이는 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질량 보존의 법칙이 뭔지는 다 잊어버렸지만 미친 듯이 분노가 차오를 때면 물리쌤이 가르쳐 준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 진짜 명언이란 생각이 든다. 15년 동안 의류계통에서 산전수전 공준 전까지 다 겪어봤다 생각했는데 여전히 불쑥 어디선가 또 미친놈 하나가 튀어나올 때면 아직도 폭포 줄기에 앉아 가부좌를 틀어야 할 날이 남았나 하는 생각에 힘이 쭉 빠진다.

    "자기는 오늘 의상이 왜 그래요? 의상도 패스널~리티라구요. 아무리 그래도 의상은 갖춰 입어야 거기에 맞는 에티튜드가 생기는 거라고 생각해요. 집에서는 편한 게 좋겠지만 여긴 직장이잖아요."

    "네, 주의하겠습니다."

    "아무리 편해도 그렇지. 알만한 사람이 그러면 안되죠. 한 두 달만이라도 신경 써줘요. 그래도 불편하다 싶으면 그때 다시 얘기해요."

며칠 전에 부임한 신임 대표는 직선의 말로 교포 특유의 발음을 해 가며 은근한 협박을 했다. 이쪽 계통으로는 일찍이 이름 나 있고 평판이 좋은 사람이었다. 나보다 서너 살은 어려 보였지만 온 몸에 명품을 휘어감은 그녀는 당당한 제스처를 사용했다. 부모님이 일찍이 미국에 터를 잡고 자신의 뿌리는 한국인이지만 생활방식은 외국인이라고 했다. 자기는 언제든 열려있고 칭찬이든 비판이든 모두 포용할 수 있으니 잘해 보자고 했다. 첫 만남은 꽤나 매력적이었던 그녀가 아침 회의시간부터 의상에 대한 지적질이다. 일에 대한 지적이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는 있으나 첫 회의시간에 옷으로 지적을 받으니 자존심이 상했지만 아무런 변명조차 하지 못했다. 헛으로 직장 생활한 것 같아 기분이 말이 아니었다. 나의 정체성을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자기가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나불거려."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대표에 대한 불만을 터트렸다.

    "그러게 말이에요. 일할 땐 사실 편한 게 좋지. 어떻게 맨날 꽂꽂하게 불편한 옷 입고 앉아있어."

    "맨날 화려하게 입고 지시만 해 봤겠지. 우리처럼 이렇게 하루 종일 앉아서 험한 일 하겠어?"    

    "그래, 맞아, 우리도 자기처럼 돈 많이 벌면 맨날 명품 바르고 다니지. 왜 안 그러겠어."

    "맞아요. 얼굴도 다 갈아엎었던데요. 이마는 너무 넣었던데. 요즘은 자연스럽게 해야지."

동료들은 내 기분에 맞춰 한 마디씩 거들었다. 앞에서는 말하지 못했지만 이렇게 밥상머리에서라도 씹어대니 나름 스트레스가 풀렸다. 고길동은 또라이로 오해받지 않으려면 늘 겸손하라 말해줬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도 닦는 마음으로 겸손하기란 맘처럼 쉬운 일이 결코 아니었다.


    이 일을 하면서 얻게 된 나만의 철학은 옷은 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렸을 땐 월급을 갖다 부을 정도로 소비하기도 했지만 앞자리 숫자가 바뀌고 나서부터는 끊임없이 갈구하지 않을 거면 애초에 시작도 말았어야 하는 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루아침에도 몇 번씩 바뀌는 유행을 맞춰가려면 어제 입은 옷도 헌 옷이 되어 있었다. 지난 시즌에 입은 옷을 다시 입게 되면 유행에 뒤떨어진다는 평가가 따라왔다. 무한한 경쟁의 세계는 무서운 곳이었지만 쏟아부어도 채워지지 않는 돈이 지배하는 세계는 더 무서웠다. 보이는 게 8할이고 때에 따라 그것이 능력이기도 했다. 어쩌면 회의감이 들 때쯤 신임 대표를 만난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인정을 받으며 이 자리까지 올라왔으니 능력이 있음이 분명했다.

    "아니 이 색은 별로예요. 라벤다 색으로 바꿔줘요. 그게 훨씬 낫네요."

컨펌을 받으러 가면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선적으로 말했다. 단순하게 말했지만 명료했다. 처음에는 아는 한국어가 많지 않아서 그러려니 했는데 함께 일을 해 보니 생각과 철학이 단호한 사람이었고 그녀의 말처럼 때에 따라 유연한 사람이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녀의 능력에 나는 그동안 뭘 하며 살아왔을까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 날 저녁 사직서를 썼다. 부끄럽지만 사실 반려할 줄 알았다. 하지만 대표는 이미 맘 떠난 사람 붙들고 일 하는 건 다른 사람에게도 실례가 되는 행위라면서 망설임 없이 수리했다. 별도의 인수인계는 필요 없다고 말했다. 플라스틱 쓰레기처럼 꾸깃꾸깃 찌그러져 버려지는 느낌이었다.


    몇 달 뒤 동료에게 연락이 왔다. 내 자리는 여전히 공석이었지만 프로젝트는 성공리에 잘 마무리되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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