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의 초단편소설
은하와는 기숙사 룸메이트로 만나 일 년을 함께 보냈다. 살다 보니 조금 불편한 점은 있었지만 나름 잘 맞는 것 같아 서로의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손을 빌려 학교 인근에 자취방을 구했다. 작은 방 두 개와 거실 하나, 화장실 하나의 낡고 작은 평수의 빌라였지만 기숙사보다는 편하고 좋았다. 우선 감시와 통제를 벗어날 수 있어 좋았다. 기숙사 통금 시간에 맞춰 언덕을 전력질주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도 은하와 지혜는 서로의 습성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정해놓은 규칙에 어긋나지만 않으면 서로 다툴거리가 없었다. 첫째 주에 은하가 음식을 하면 모든 청소와 빨래는 지혜가 했다. 그다음 주에는 지혜가 장을 보고 음식을 하고 설거지를 했다. 각자 생활비를 내어 관리비와 식비를 해결했고 부수적으로 필요한 게 있으면 원하는 사람이 값을 지불하기로 했다. 이미 일 년을 함께 지내온 사이라 무엇보다도 이것저것 눈치 보며 맞춰야 할 것들이 없어서 좋았다. 식성이 조금 다르긴 했지만 좋아하는 음식은 비슷했기에 둘이 좋아하는 과일과 채소 위주로 만들어 먹었다. 무엇보다도 양가에서 격주로 맞춰 밑반찬을 보내주셨기에 크게 만들어 먹을 일도 없었다. 간단한 국과 음식은 그 주의 담당이 하면 되는 거라 먹는 거에 관해 크게 트러블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운동을 하고 돌아오면서 은하가 물었다.
"이지. 나 치킨 먹고 싶은데 먹을까? 오늘 진짜 맥주가 콸콸콸 땡겨."
"그래, 그럼 시켜 나는 다리 먹으면 되니까."
은하는 지혜를 부를 때 항상 성을 붙여 두 글자만 말했다.이지. 은하가 부르는 지혜의 별명 같은 애칭이었다. 기숙사 생활하면서 야식이 먹고 싶은 날이면 우리는 분식파라 주로 떡볶이와 튀김, 김밥 위주로 시켜 먹었다. 어쩌다 치킨과 족발을 시켜 먹기도 했지만 지혜는 고기를 먹으면 소화가 잘 안된다고 둘러말하며 한 두 점 하고 말았다. 자취하고 나서 은하는 곧 잘 치킨을 시켜먹었다. 육식을 즐겨하지 않은 은하였지만 치킨의 맛을 알아버렸다고 해야 할까 모든 브랜드의 치킨을 섭렵하고 자기에게 맞는 치킨 브랜드를 찾았다. 처음에는 지혜에게 같이 권했지만 몇 번의 거절 뒤에는 권하지 않았다. 은하가 어쩌다 권하는 날, 지혜가 ok 하면 값을 반 지불하라는 무언의 암시이기도 했다. 은하는 먹을 땐 재밌는 거 봐야 한다며 코믹 영화를 틀었다.
"이지. 근데 나 궁금한 게 있는데 왜 치킨 안 먹게 된 거야?"
"안 먹는 건 아니지. 먹잖아. 다리."
"그러니 왜 다리만 먹느냐는 거야. 부모님이 다리는 다 너한테 양보했었어?"
"아니, 어렸을 때 티브이에서 '어미새의 사랑'이라고 틀어준 적 있었는데 본 적 있어?"
"잘 모르겠는데. 왜?"
"거기에 보면 뻐꾸기가 남의 둥지의 알을 낳잖아. 다른 알에 비해서 알도 커. 근데 얘가 부화하면서 다른 알을 날갯죽지로 밀어 올리는 거야. 진짜 충격이었던 건 뭔지 알아? 깃털도 채 나지 않은 매끄러운 날개로 부화한 새끼를 둥지 밖으로 밀어내는데 그 새끼는 안 떨어지려고 얼마나 몸부림을 치는지. 이건 사투가 아니라 살인이잖아. 잔인한 건 말할 것도 없고 그 어린 나이에 봤으니 얼마나 충격이었겠어. 지금도 그 장면이 아주 생생하게 기억이 나."
"어, 본 것 같기도 하다."
"너무 잔인한데 또 너무 슬퍼. 어미새가 자기 새끼들 다 잃고 둥지를 차지한 뻐꾸기가 자기 자식인 줄 알고 먹을 것을 갖다 나르는데 세상 슬픈 거야. 이미 몸집 어미새보다 커졌는데도 자기 새낀 줄 알고 보살피는 게 너무 슬프고 화가 나더라고. 어미새는 그렇다 치고 그걸 또 권리인 마냥 날개를 퍼덕이면서 받아먹는 데 얼마나 울었다고. 자기 새낀 줄 모르는 건지, 알면서도 헛헛한 마음에 키우는 건지. 그 뒤로 뻐꾸기의 그 '뻐꾹뻐꾹'하는 소리가 너무 잔인하게 들려서 뻐꾸기가 울면 귀를 막았어. 집에 뻐꾸기시계가 있었는데 그것도 엄마 몰래 갖다 버렸어."
"하하하, 뭐 그럴 것 까지야. 그게 다 자연의 이치잖아. 약육강식 몰라?"
"아무리 자연의 이치라도 그렇지 그건 해서는 안 되는 패륜이라고!"
"근데? 그게 왜? 그래서 이 맛있는 치킨을 안 먹는다고?"
"응, 그 뒤로는 못 먹겠더라고."
"이지. 웃긴다. 그러면 아예 안 먹어야지. 다리만 먹는 건 또 뭐야?"
"몇 번 혼났지. 편식한다고. 그래서 또 꾸역 먹었는데 또 먹다 보니 먹게 되더라고. 근데 날개는 아직도 못 먹겠어. 그 모양만 봐도 토할 것 같아."
지혜는 온몸으로 그때의 소름 돋았던 감정을 표해내고 있었다. 학교도 입학하기 전 한참 동. 식물에 관심 있어할 때 본 다큐멘터리는 지혜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지금도 조류를 보면 그 모공각화증 같은 뻐꾸기의 날개가 투시된 것처럼 먼저 보인다. 아마 성인이 되어서 봤으면 닭, 오리 등 날개가 달린 모든 음식은 거부했을 것이다. 음식에 대한 애착이 생기기 이전의 일이라 불행 중 다행으로 음식에 대한 큰 거부감은 없었다. 처음엔 부분적으로 거부하기도 했으나 식사예절이 엄격한 집안에서 통할 리 없었다. 음식은 자고로 남기지 않고 편식하면 안 되는 것으로 알았기에. 무엇보다도 엄마가 해 주는 음식은 100% 지혜의 입맛에 맞았다.
"안타깝다. 이 야들야들한 날개 속살 맛을 모르다니. 근데 그거 심리적인 게 큰 거 아니야? 별 것 아니라고 인식하면 되잖아. 뻐꾸기 걔네들 탁란 하는 거는 자연의 이치고. 그런가 보다. 그러려니 하면 안 되나?"
"모르겠어. 뭐, 아예 못 먹는 거는 아니니까."
"그럼, 순살을 먹으면 되겠네. 순살은 어느 부위인지 모르잖아. 그냥 날개 모양만 아니면 되는 거 아니야?"
"응, 그 모양만 아니면 돼. 근데 순살은 닭가슴살 하고 넓적다리 살인가 아마 그럴 거야. 날개는 안 쓸걸"
"그래? 아쉽다. 너 같은 남자 친구를 만나야 좋아하는 닭날개 내가 다 먹는 건데."
은하는 무심하니 툭 한 마디 뱉고는 티브이를 보며 웃어댔다. 지혜는 두 손가락을 쪽쪽 빨아대는 은하의 모습이 꽤나 얄미워 오천 원을 탁자 위에 두고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