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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른디귿 Apr 08. 2021

누군가에게는 삶

모모의 초단편소설

<출처 -pixabay>

    

    

    독립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로망은 둘째 치고라도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나의 세간살이를 장만하고 싶었다. 온전한 나의 취향이 담긴 투박한 그릇과 폭신한 호텔 침구류. 온전히 나만의 공간에서 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시집가라고 하셨다.

    "결혼하면 돼. 결혼해서 네 살림 살아. 얼마나 좋아. 사랑하는 사람하고 예쁘게 살림 차려 놓고. 안 그래?"

    "아니, 나는 혼자 있고 싶다고 나만의 공간에서."   

    "그럼 네 방에서 그러고 살아. 엄마, 아빠는 터치 안 하잖아."

    "내 방은 너무 좁아. 이것보다는 좀 넓어야지 그래도."

    "그럼 거실로 옮겨. 모른 척 해 줄게. 이도 저도 아니면 시집가. 그게 젤 빨라."

    "아 진짜, 나 진지하단 말이야. 독립할 거야. 다음 달에 적금 만기야. 나 진짜 나가."

    "그래라 그럼. 고생도 해 봐야 부모 귀한 걸 알지. 그동안 네가 누렸던 권리가 얼마나 편한 거였는지 깨닫게 될 거야. 엄마하고 아빠는 말리지 않아. 나가 살아서 남자라도 데리고 오면 더 좋고."

엄마는 모든 이야기의 끝이 결혼이었다. 기승전 결혼. 엄마는 내가 일찍 결혼해서 빨리 할머니가 되는 게 소원이라 말했다.


    적금 만기가 되었다. 생에 첫 적금. 뼈와 살을 갈아 넣는 심정으로 일한 나의 첫 목돈이었다. 우선 부모님 제주도 여행자금으로 100만 원 정도 떼어드릴 생각이다. 그리고 계획대로 독립할 생각이다. 우선 방을 구해야 하기에 회사 근처 부동산으로 갔다. 예산을 말씀드렸더니 오피스텔 월세를 보여주었다.

    "이 정도면 혼자 살기 충분해요. 아가씨 직장 하고도 가까워서 출퇴근하기도 좋고. 요 앞에 공원 있으니 밤에 나가서 운동하기도 좋고. 이번에 지어서 깨끗하고 풀옵션이니까 그냥 몸만 들어오면 돼요. 택배 받기도 좋고 경비 아저씨도 밑에 있으니 안전하고."

부동산 중개사는 누가 봐도 눈에 보이는 장점만 말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몇 평이에요?"

    "요게 한 8평 정도로 나오긴 했는데 실평수는 6평 정도 돼요."   

작은 내 방에서 탈출하고 싶어 나오려고 했는데 따지고 보면 내 방이랑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관리비랑 월세랑 여쭤 물으니 내 월급의 반을 고스란히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거기에다 생활비까지 하면 적금은 저 세상 얘기였다. 시무룩한 내 표정을 보셨는지 인근 빌라의 1.5룸을 보여주었다.

    "여기도 괜찮아요. 여기는 1000에 50만 원. 아가씨도 부동산 둘러봐서 알겠지만 이 정도 가격에 1.5룸 잘 없어요. 알죠? 아까랑 다르게 여기는 주방에 문이 있어서 뭐 해 먹을 때 냄새 빠지기도 좋고. 이 정도면 혼자 살기 충분해요. 여기도 에어컨, 가스레인지, 세탁기 다 있어요. 여기 오는 길에 맛집도 많고. 코너길에 슈퍼도 큰 거 하나 있어요."

한 사람이 겨우 요리할 정도의 주방과 방을 구분하는 문만 하나 있다 뿐이지 비슷한 크기였다. 다만 여기는 오피스텔보다 월세가 20만 원 정도 저렴했다. 가장 차이가 나는 건 관리비였다. 관리비까지 포함하면 한 달에 대략 40만 원 가까운 차이가 발생한다. 다만 출퇴근 시간이 좀 더 늘어나고 시설이 오피스텔에 비해 낡았다는 거. 40만 원 차이면 열두 달에 500만 원가량 저금할 수 있다. 40만 원어치의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살 것인가 500만 원어치의 미래를 보장받을 것인가는 분명 고민해 봐야 할 사항이었다. 500만 원은 일 년 뒤 휴가 때 해외여행을 꿈꿀 수 있는 아주 큰돈이었다. 돈이라는 게 웃긴 게 적금의 일부를 보증금을 넣고 남은 돈으로 원하는 세간살이를 채우면 한 순간에 만져보지도 못하고 목돈이 팔랑개비 날리듯 없어져 버린다. 독립을 꿈꾸며 로망을 그리는 내가 방 컨디션에 대한 눈이 높은 건지 호텔처럼 안락하게 꾸며놓고 살 거란 나의 버킷리스트 하나가 조금씩 멀어지는 걸 느꼈다.


    "엄마, 아빠랑 여행이라도 다녀오라고."

봉투에 5만 원짜리 신권을 20장 준비해 편지와 함께 넣어 드렸다.

    "우와, 우리 딸. 엄마 이렇게 호강해도 되는 거야?"

활짝 웃으며 신이 난 듯 말했다. 엄마는 언제나 리액션이 좋으신 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나를 낳아 케어하시느라 돈을 벌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엄마의 삶 속에도 나름의 고생이 있었겠지만 여전히 밝고 순수한 면이 많아 엄마가 가끔은 철이 없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늘 소녀처럼, 친구처럼 가까운 존재였다. 엄마는 자신의 삶이 평탄한 건 안정적인 배우자를 만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부분에 대해 항상 감사하고 모든 순위에서 가정을 최상위로 두었다. 평화롭고 따뜻한 가정은 엄마의 평생 소원이었고 아빠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엄마의 희생을 높게 샀다. 엄마가 펼치는 결혼예찬론은 따뜻한 가정이 전제했다.

    "나 부동산도 갔다 왔어."

    "진짜 독립하려고? 나가면 개고생이란 말 몰라? 엄마랑 더 살아야지. 그냥 같이 살다 시집가. 그게 편해."

    "그래야 할 것 같아. 생각한 거랑은 달라도 너무 다르더라고."

엄마는 봉투를 열어 돈을 세어 보고 있었다. 편지를 열어 읽으면 엄마가 또 울까봐 그 자리에서 일어나 내 방으로 들어갔다. 핸드폰으로 이런저런 뉴스거리를 보다 헤드라인 하나에 눈이 갔다.


    20대. 다세대 원룸에서 자살 추정 발견

    현장에 외부 침입 흔적 없어 범행 가능성 낮아

    가족에게 남긴 유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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