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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른디귿 Apr 09. 2021

캠핑의 탄생

모모의 초단편소설

    

<출처-개인 소장>


    그곳엔 푸른 바다가 있었다. 그거면 됐다 싶었다. O는 평생소원이 바다가 보이는 푸른 언덕에 사는 것이었다. 첫 번째는 평생 좋아하는 낚싯대를 언제든 드리울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고 두 번째는 그 누구도 자신을 찾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혼자이고 싶었다. 


    인터넷으로 집을 구하기 전에 잠시 묶을 방을 찾아봤다. 올려놓은 방 컨디션을 대충 훑어본 뒤 위성사진을 띄어놓고 어느 지역인지 파악했다. 직접 가서 보는 것과는 차이가 있지만 단기로 빌리는 것이기에 일단 저렴한 곳을 찾았다. 비수기니까 펜션도 단기로는 괜찮은 조건이었다. 

    "인터넷 보고 전화드렸는데 단기 임대할 수 있을까요?"

    "낚시하는 분이세요? 몇 분이신데요?"

    "아, 낚시는 할 건데 저 혼자라서."

    "그럼 차라리 민박으로 알아보시는 게 나으실 텐데."

전화기 너머로 쌀쌀한 목소리가 들려 에둘러 끊어버렸다. 펜션은 혼자는 잘 받아주지 않는 것 같았다.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보니 혼자 낚시하러 오셨다 목숨을 끊어버리는 분들이 있어서 1인 단기 임대는 잘 받지 않는다고 했다. O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는데 그런 취급을 받으니 기분이 언짢아졌다. 방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주말에 직접 가 보고 예약하는 게 낫지 싶었다.


    바닷가가 다가올수록 하늘은 더 푸르고 청량한 빛을 띄었다. 미세먼지 하나 없는 맑은 날, 시원한 바닷바람이 머리칼을 간지럽혔다. 마치 휴가 온 기분이 들었다. 고속도로도 잘 나져 있겠다 맘만 먹으면 순식간에 자유를 얻을 수 있는데 그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던 자신이 한심해졌다. 도착하자마자 유명하다는 물회 집에 들렀다. 전국적으로 맛집으로 소문난 덕인지 이미 인산인해였다. 대기 번호를 받고 주변을 둘러봤다. 온통 가족, 연인, 친구들끼리 온 사람들이었다. 혼자 온 사람은 오직 O 뿐이었다. O는 주변에서 잠깐 힐끗힐끗하는 시선을 느꼈지만 개의치 않았다. 잠시 다른 물회 집으로 갈까 생각했지만 어차피 한 번은 먹어야 할 것 같아서 기다리로 했다. 잠시 후 푸짐한 모둠 물회가 나왔다. 전복에 해삼, 오징어, 회, 지역특산물인 가자미 실채가 듬뿍 올라가져 있었다. 소금과 고춧가루로 양념한 매운탕에 밥 한 그릇까지 먹으니 기다렸다 먹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이브하듯 해안도로를 달렸다. 넓게 트인 바다를 보고 있으니 여기 살고 싶은 생각이 더 들었다. 주말이라 차가 조금 막히긴 했지만 드라이브 하기 딱 좋은 속도였다. 가다가 마을이 보이면 차를 세우고 민박을 알아봤다. 민박 할머니는 여기는 낚시하기 좋은데라 주말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사람이 찬다고 했다. 단체손님 위주라 혼자는 잘 안 받는데 남는 방 하나 있으니 보고 결정하라고 했다. 가정식 민박이라 정말 방하나 덩그러니였다. O는 혼자 있고 싶었기에 조금 더 둘러보고 연락드리겠다고 하고 길을 나섰다. 지형은 대충 인터넷을 익혀서 알고 있었지만 맘에 드는 방을 구하는 건 어려웠다. 단기 임대라고 적혀있는 펜션에 들러 값을 물었다.

    "여긴 혼자 오시는 분들도 많아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바다도 바로 앞이고 저희가 식당도 하니까 잡수시는 것도 걱정 없으시고 키 드릴 테니 보고 결정하세요."

펜션 주인은 자신 있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키를 건넸다. 3층으로 올라가 현관문을 열어보니 잔잔하게 일렁이는 푸른 동해바다가 드넓게 펼쳐졌다. 보고 있자니 시끄러운 속까지 달래지는 느낌이 들었다. O는 가격만 맞으면 이 곳으로 결정하기로 했다.

    "괜찮네요. 단기로 머물 거라서요. 한 2주?"    

    "저희는 2주나 한 달이나 별 차이 없어요. 장기 숙박이 아니면 모를까."    

    "장기는 얼마...?"

    "여기는 한 달에 80 정도 받고 장기로 6개월 있으시는 분은 60, 1년 있으시는 분은 50. 뭐 우리는 보증금도 그냥 형식으로 100만 원만 받고 관리비 낼 것도 없으니, 인터넷도 다 되고 신경 쓸 것도 없어요. 딴 데 가 봤자 여기 만 한 곳 없어요."

생각보다 높은 가격에 O는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둘러보고 있는 중이니 한 번 돌아보고 연락드리겠다고 하고 나왔다. 

    

    해안도로를 달려도 방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을과 펜션만 눈여겨 봤는데 가는 곳마다 경치 좋은 곳이 있으면 개조된 캠핑카나 텐트들이 쳐져 있었다. 주말이라서 그런지 캠핑족들이 많이 보였다. SUV 차량에 루프탑 텐트를 올린 차량도 있었고 차량 트렁크 쪽으로 쉘터를 내린 곳도 있었고 아예 캐노피를 설치한 사람들도 있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원래는 근처에 낚시하기 좋은 포인트가 있어서 낚시하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날이 풀리니 캠핑하시는 분들이 많아지는 추세라고 했다. 혼자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차박으로 오신다고도 했다. 편의점 발코니는 바다를 향해 나져 있었다. 테이블에 앉아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O는 생각에 잠겼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의 집은 이야기 속에 나오는 집이 아니라 늘 O가 꿈꾸는 집이었다. O는 솔로고 비혼이니 조기 은퇴해도 먹고 사는 거는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일찍이 로망을 실현하고 싶은 마음에 이곳에 방을 구하고 좋아하는 낚시 하며 소소한 돈벌이를 계획했었다. 주변에 형님들은 좋아하는 게 업이 되면 실증을 쉽게 느낄 수도 있고 아직은 일할 나이니 좀 더 일하면서 취미로 즐기라고 만류했었다. 지금 당장 집을 구하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기 임대에도 큰돈이 들어가고 없어지는 돈이니 차라리 그 돈으로 캠핑장비를 구입해야겠고 결심했다. 처음에는 들어가는 비용이 제법 되겠지만 결국엔 남는 장사인 것 같았다. 캠핑을 하게 되면 좋아하는 낚시도 할 수 있고 혼자일 수도 있고 O가 원하는 두 가지의 이유를 모두 충족했다. 또 전국을 유랑하면서 낚시를 할 수  있으니 이 보다 더 좋은 결정은 없다고 생각했다. O는 아는 형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님, 접니다. 저 캠핑족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방 구하고 사는 것보다 그게 낫지. 요새는 금요일 저녁에 떠난다 하더라."

    "그러게요. 와 보니 고속도로도 잘 되어 있고 집하고  멀지도 않더라고요."

    "그래, 장비는 봐 뒀나? 내가 같이 함 가 줄까?"

    "아, 예 형님. 그렇게 해 주면 좋죠."

형님과의 전화를 끊고 캠핑을 시작하려 하니 왠지 모를 호랑이 기운이 솟았다. 그동안 O를 알게 모르게 잠식했던 조기 은퇴, 먹고 살 걱정, 방 구하는 것 등 등의 고민거리가 한 방에 사라졌다. 아직 시작도 안 했지만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될 새로운 여정이 기대가 되었다. 어느새 바다가 설렘이 가득한 핑크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내 마음에 푸른바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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