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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른디귿 Apr 06. 2021

고양이와 개

모모 초단편소설

<이미지 출처 - pixabay>


    "시내주행은 충분히 했고 오늘이 마지막 도로주행이니까 외곽으로 나가볼까요?"

    "진짜요? 오, 좋아요. 저희 팀만 가요?"

    "아니요. 저쪽도 같이 갈 거예요. 그 친구 운전 잘하던데."

강사는 민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운동신경이 좋은 민아는 어렸을 적부터 시범을 보이면 뭐든 곧잘 따라 했다. 달리기, 높이뛰기, 멀리뛰기도 잘하는 특급체력을 가진 소녀였다. 우린 시골의 단위면 학교라 초, 중, 고등학교까지 같이 나왔다. 공부는 내가 좀 더 잘했지만 몸으로 하는 건 민아가 월등했다. 뭐든 잘하는 민아랑 같이 있으면 안심이 되었다. 도로주행이 실전이니 조금 두려움도 있었지만 민아랑 같이 간다니 나름 안심이 되었다. 


    "여기는 80이에요?"

    "80인데 처음엔 너무 빠르게 느껴지니까 한 70으로 가도 돼요. 80은 넘지 말아야 하는 거 알죠?"

    "네, 근데 속도가 안 느껴져요. 60이나 70이나 똑같은 것 같아요."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요. 시골길이라도 앞에 잘 보고 천천히. 뭐가 툭 튀어나올지도 모르니."

긴장한 두 팔에 힘이 잔뜩 들어가고 핸들을 잡은 손이 무겁게 느껴졌다. 선두에 있는 민아의 차량은 조금 더 속도를 높였다. 놓치지 말고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에 나도 속도를 높였다. 순간 고양이 한 마리가 반대편 도로에서 아스팔트를 가로질렀다.

    "어, 어떡해요. 고양이." 

순간 속도를 어떻게 줄이는지 뭘 어떡해야 하는지 배운 게 기억나지 않았다.

    "멈추지 말고 그냥 가요. 뒤에 차 와요. 급 브레이크 밟으면 우리가 사고 나요."

    "아 안돼요. 어떡해."

그 순간 고양이를 치었다. 뒷바퀴에 걸려든 물컹한 물체가 운전석을 타고 온 몸으로 전해졌다. 소름이 돋아 눈을 감았다.

    "눈 감지 말고 정신 차려요. 그냥 가 멈추지 말고. 속도 천천히 줄이면서 옆에 세워요."

 울지 말고 정신 차려서 운전하라는 강사의 목소리가 꿈속에 갇힌 말들처럼 멀게 느껴졌다. 강사가 핸들을 돌려가며 갓길에 세웠다. 민아의 차량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액땜했다 생각해요. 차라리 운전 배우면서 그러는 게 나아. 나중에 운전 잘하면서 그러면 패닉 와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미리 경험했다 생각해요. 이런 경험은 배울 때 하는 게 좋아. 혼자 있을 때 그런 것도 아니고 옆에 나 있을 때 그러는 게 차라리 낫지. 나중에는 안 그러면 돼요. 괜찮아. 울지 말고."

강사는 위로인 지 아닌 지 모를 말을 건넸고 귀가 닫혀 여전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눈물이 나는데 왠지 소리는 나지 않았다. 손끝부터 떨려왔다. 죽었을까 하는 생각에 뒤를 돌아보려 했다.

    "뒤 돌아보지 말아요. 죽어도 어쩔 수 없어. 고양이 피하려다 하마터면 우리가 다칠 뻔했어요.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실제 사고에서도 그럴 때 속도를 확 줄여버리면 인명사고 나요. 인명사고."

    "운전 못하겠어요. 대신해 주시면 안돼요?"

    "안 돼요. 오늘이 마지막인데 내가 하면 다시 해야 돼. 그냥 해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천천히 가면 돼. 심호흡하고. 천천히."

호흡을 고르니 떨리는 손끝과 심장의 박동수가 조금은 줄어들었다.

    "잊어.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어요. 아무도 모르잖아. 친구한테도 말 안 하면 몰라. 이런 일은 말 안 해도 돼. 누구한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야. 나도 몇 번 그랬어요. 괜찮아. 그래도 다 운전하고 살아. 이런 일은 다른 교통사고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야."

꿈처럼 흐르는 강사의 말 중에 몇몇 단어가 귀에 들어왔다. 그의 말처럼 나만 말 안 하면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천천히 호흡을 고르고 시동을 켰다.


    도로주행까지 무사히 수료하고 운전면허 시험을 한 번에 통과했다. 민아는 운전면허증을 받자마자 미리 와 계신 부모님과 함께 중고차를 사러 갔다. 한껏 흥이난 민아가 같이 보러 가자며 제안을 했지만 나는 왠지 내키지 않았다. 수능 보려고 찍은 증명사진이 운전면허증에 있었다. 주민등록증 이후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두 번째 증거였다. 스스로 책임져야 할 것들이 세상으로부터 증명되는 순간들이었다.


    민아는 몸을 잘 쓰고 운동하는 것을 좋아해 적성을 살려 지방의 한 대학에서 체육학을 전공했다. 관련된 각종 자격증을 다 따고 나라에서 운영하는 꽤 규모가 큰 곳에 수영강사로 취업했다. 누가 봐도 민아에게 딱 어울리는 직업이었다. 나는 수능성적에 맞춰서 서울의 한 대학교에 입학했다. 운 좋게 관심 있어하던 사학과를 졸업했지만 마땅한 직업을 찾지 못하고 백수가 되었다. 가끔 선배의 부탁으로 학원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지만 직업이라고 말할 순 없었다. 우리에겐 공평한 시간이 주어졌지만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교통 인프라가 거의 갖춰진 서울살이를 하다 보니 자동차의 필요성을 못 느꼈다. 그 덕에 수능을 보고 바로 딴 운전면허증은 남들이 말하는 그 흔한 장롱 면허증이 되었다. 반면에 민아는 운전면허증을 따자마자 바로 중고차를 구입하고 얼마 전 새 차를 구입했다고 했다. 여태 무사고 운전이라 했다. 며칠 전 전화통화를 할 때 민아는 일 끝나고 경주로 드라이브 가는 중이라 말했다. 신나고 다이내믹한 민아의 삶이 부러워졌다. 따분하고 지루한 서울생활은 때론 새장에 갇힌 날지 못하는 새 같았다. 새장을 활짝 열어줘도 나는 법을 잊은 새가 꼭 나 같았다. 민아는 서울이 환상의 도시라고 했지만 나는 늘 살아보고 말하라고 핀잔을 주었다. 물론 찾아보면 주변에 볼거리도 놀거리도 많은데 즐기지 못하니 아무 소용이 없었다. 어렸을 적 우리는 비슷한 사고와 가치관을 가졌다 생각했었는데 우리가 선택한 환경은 닮았던 많은 것들을 다르게 만들었다. 먹는 것, 입는 것, 생각하는 것 등 사소한 것에도 취향이 달라져 있었다. 


    "너 쉴 때 내려갈까 하고 얼굴 안 본 지도 꽤 됐고."

    "그래, 너 편할 때 와. 일 할 때 와도 돼. 번호 알려줄 테니까 와서 쉬다 가."

시골집 인근의 소도시에서 자취하는 민아의 집은 언제나 열려있었지만 한 번도 가 본 적은 없었다. 집에 내려갔다가 잠깐 들른 적은 있었지만 자고 온 적은 없었다. 물론 부모님 집에는 11시라는 통금시간이 있어서였기도 했지만 잠은 집에서 자야 된다는 보이지 않는 나만의 선이 있었기에 일탈을 할 순 없었다. 그런 생활은 서울에서도 이어졌다. 약간 여유롭게 자정이 되기 전에는 하루를 꼭 마무리했다, 그런 나를 두고 민아는 농담 삼아 유교 걸이라 불렀다.


 민아네 집에서 일주일 있다 오기로 맘먹었다. 엄마한테는 말하지 않기로 큰 맘을 먹었다. 생에 첫 외박이었다. 어쩜 너무 늦은 나이 스물다섯. 민아는 오피스텔에서 꽤 비싼 관리비를 지불하고 살고 있었다. 수영강 사라 편하게 옷을 입고 다닐 법도 한데 단정한 옷차림에 7센티 하이힐을 신고 다녔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으로 단련된 탄력 있는 몸 때문에 갖춰 입은 그녀의 모습은 또래에서는 발견하지 못하는 성공한 여자처럼 보였다. 물론 자신감 있는 그녀의 행동이 그녀를 더 멋스럽게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 가끔 친한 친구이긴 해도 속으로는 열등감이 싹트고 있었다. '공부는 내가 더 잘했는데, 대학도 내가 더 좋은데 같은데, 돈은 내가 더 못 버네.' 하면서. 민이가 퇴근하는 금요일 저녁에 우리는 2박 3일 일정으로 경주로 놀러 가기로 했다. 그녀가 사는 도시에서 경주까지는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이 걸렸다. 이런 봄날에는 고속도로보다 시골길이 더 운치 있다면서 익숙하듯 지방도로를 달렸다. 길가에는 벚나무가 하얀 순두부같이 몽글몽글한 꽃을 품고 있었다.


    "좋다. 이래서 시골이 좋아. 난 어떨 땐 이런 소똥 냄새도 그립더라고."

    "소똥 냄새 아니고 비료 냄새야."

    "어쨌든. 이 냄새든 저 냄새든 좋아. 좋겠다 너는. 가고 싶은 데 가고. 맘대로 하고 살 수 있어서."

    "너도 맘대로 하고 살잖아. 네가 너를 꽉 죄고 있어서 그렇지."

민아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새 장의 문은 열려 있는데 날지 못하는 건 나니까. 붙잡고 있는 건 나니까 할 말은 없었다. 금방 어스름이 내려앉았다. 시골 출신인 우리에겐 전혀 무섭지 않았다. 민아는 차가 없어서 속도를 조금 높였다. 그 순간 길 잃은 시골 개 한 마리가 쿵 하고 부딪혔다. 

    "꺄악. 뭐야? 괜찮아? 뭐였어?"

순간 놀랐지만 숨을 고르고 민아에게 물었다. 민아는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동물 같은데. 밟았어?"

    "몰라. 모르겠어. 안 밟은 것 같은데. 그냥 갈까?"

민아는 고민하고 있었다. 순간 익숙한 나의 모습이 떠 올랐다. 고양이를 밟던 자동차 뒷바퀴에서 내 온몸을 타고 전해졌던 그 물컹한 순간. 다행히도 지금은 그런 것과는 달랐다.

    "밟은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냥 부딪힌 것 같아. 내려볼까?"

    "아니, 무서워."

뭐든 잘하던 민아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민아를 우선 안심시키고 차에서 내렸다. 나의 직감이 들어맞았다. 다행히도 죽진 않았다. 어디를 부딪혔는지는 모르지만 가쁜 숨을 쉬고 있었다. 

    "안 죽었어. 살았어. 이대로 두면 로드킬 당할지도 몰라. 우리 병원에 데려다 주자."

    "무슨 병원?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는데. 병원도 문 다 닫았을 테고."

    "그럼 시청에 전화해봐. 거기다 데려다 주면 알아서 하겠지. 당직서는 사람 있을 거야."

민아가 시청에 전화를 하는 동안 나는 개를 감싸 안아 차에 탔다. 밀폐된 차 안에는 돌보지 않은 개의 냄새와 피의 냄새로 가득 찼다.

    "토할 것 같아. 문 열고 가자."

민아는 자신이 개를 쳤기 때문에 차에 개를 태워 시청에 데려다주는 것을 반대하지는 못했지만 불편한 내색은 했다. 평소 동물을 가까이 하진 않았지만 순간 무슨 용기였는지 마치 동물 애호가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시청에 도착하니 문이 닫혀있었다. 다시 한번 전화를 하니 당직자가 다른 통로의 문을 알려주며 거기다 두고 가라고 했다.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은 당직자는 십 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개는 여전히 가쁘게 숨을 쉬고 있었고 민아도 이제 한 시름 놓았는지 가던 길 가자고 재촉했다. 다시 한번 당직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다렸는데 안 오셔서요. 꼭 살려주셔야 돼요. 저희가 여기까지 데리고 온 거 헛되지 않게 해 주세요."

당부를 하고 차를 타고 내려왔다. 사이드 미러로 보이는 시청 불빛에 사람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고 민아는 근처 세차장으로 갔다. 자신이 잘못했지만 좋은 일도 했으니 목욕재계를 하고 싶다고 했다. 당장 자신의 몸은 씻지 못하니 차라도 목욕재계를 해야 한다고 했다. 민아는 차 안에 남아있는 냄새를 없애고 싶은지 실내 청소를 꽤 오랫동안 했다. 그리고 이 모든 건 비밀이라고 죽을 때까지 지켜달라 말했다.


    눈을 떠 밖을 내다보니 보문호는 온통 벚꽃 천지였다. 천국의 입구는 왠지 이렇게 생겼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치여 죽인 고양이가 몽글몽글한 꽃 사이로 보이는 것 같았다. 그 위로 새 한마리가 자유롭게 날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나만의 비밀. 평생이고 가야 했을 죄책감이 흩어지는 꽃잎을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경주의 봄은 환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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