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의 초단편소설
"사랑이 머물다 간 자리에 뭐가 남는 줄 아니?"
미현이 아주 진지하고 약간은 거만한 얼굴로 물었다.
"이별 뒤에 남는 게 뭐가 있겠니. 쓰라린 마음과 상처 받은 영혼. 뭐 그런 거 아니겠어?"
"아니, 사랑이 머물다 간 자리엔 새싹이 돋아나."
"뭔 또 개소리야."
어이없는 표정과 시니컬한 말투로 자연이 대답했다.
"흔적이 남잖아. 뭐든. 상처도 아물면서 자국을 남기고. 사랑도 결국은 상처야."
계속된 미현의 말에 자연은 점점 흥미를 잃었다. 또 잘난 체 할 준비가 된 그녀의 말에 대꾸가 하기 싫어졌다.
"어떤 사랑의 형태든 결국 이뤄지지 않으면 상처가 되잖아. 그 상처는 결국 흔적을 남기고."
"응."
"아프고 피도 나고 쓰라리고 하면서 상처가 아물잖아. 시간이 지나면서 새살도 돋아나고."
"근데?"
"결국 사랑도 똑같다는 거야. 네 말처럼 쓰라리고 아프고 한 다음에 새로운 사랑이 찾아온다는 거지."
"음."
"그래서 결론은 아파하지 말라는 거야.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 두고. 시간이 지나면 사랑이 또 오겠지."
나름 미현의 방식대로 자연의 지난 상실에 대해 위로하고 있었다. 자연은 몇 개월 전 우식과의 이별을 했다. 이별한 뒤의 상실감은 여느 노래 가사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결국 덜 사랑해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게 자연의 생각이었다. 금세 잊힐 것 같은 우식과의 이별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선명해져 갔다. 출퇴근하는 지하철 안에 손깍지를 낀 연인을 볼 때 문득, 점심시간에 우식이 좋아하던 삼계탕이 나왔을 때 문득, 자전거를 타는 어떤 남자의 뒷모습을 볼 때 문득 생각이 났다. 그런 장면들이 하나하나가 쌓여 일상을 침범해갔다. 우식과 인연이었을 때는 그런 모습들을 봐도 전혀 눈길이 가지 않았었는데 헤어지고 나서 그가 했던, 그가 닮았던, 그가 좋아했던 것들을 볼 때마다 기억 속 우식의 행동들이 자연의 생활을 침범해갔다. 하루, 이틀은 이별 후유증이려니 생각하니 견딜 수 있었지만 곱씹고 기억할수록 더 선명해져 가는 우식과의 추억들이 하루 종일 자연을 괴롭히고 있었다.
"나? 안 아픈데? 생각도 안나."
자연은 애써 담담한 척 자신은 사랑에 울고 불고 아파하는 부류가 아니라는 듯 미현에게 대답했다.
"그래? 그럼 말고. 뭘 애쓰냐 다 보이는데."
미현은 자신의 위로를 거절하는 자연에게 풀이 상해 더 이상 그만하기로 마음 먹었다. 자연은 어떤 일이든 일상을 차분하게 정리하고 뭐든 가르치려고 하는 미현이 아니 꼬았다. 미현은 분명 선의의 의도였을지는 모르나 들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자연에게는 눈에 거슬리는 말과 표정이었다. 어쩌면 누가 봐도 잘난 미현을 향한 약간의 열등감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미현은 남의 상처를 후비고 파서 피를 봐야만 직성에 풀리는 성격인지도 모를 일이다.
어제 봄 비가 내리더니 온 세상이 렌즈를 낀 것처럼 맑게 잘 보였다. 아직 마르지 못한 여분의 수분 때문인지 세상이 촉촉하고 맑게 보여 자연의 마음에도 묶은 먼지가 걷히는 기분이었다. 며칠 디톡스를 한 덕인지 연잎차를 개운하게 우려 마신 것 같은 정화된 상태였다.
"자연 씨, 우리 식후 땡 어때?"
간만에 찾아온 맑은 정신과 몸에 목적지 없이 흩어져버릴 담배연기를 담긴 싫었지만 습관처럼 담배를 물었다. 자연이 태우는 담배 연기는 언제나 우식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