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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삼 남매는 겨울 방학이면 자주 김밥을 싸 먹었다. 농사를 짓는 부모님 덕에 늘 쌀은 풍족했다. 대신 부모님은 농한기라는 겨울이 되어도 늘 바쁘셨다. 그 당시 부모님은 참외 농장을 하고 있었다. 겨울이면 항상 참외 모종과 호박 모종을 접붙이고 매시간마다 온도와 습도를 조절해야 하기 때문에 아주 예민하게 그 추운 겨울에도 비닐하우스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보냈다. 우리 삼 남매를 재정적으로 키운 건 참외 덕이었지만 먹인 건 김밥이었다. 겨울방학이 되면 점심 한 끼는 바쁜 부모님 대신 우리끼리 해결해야 했다. 지금은 편의점이나 택배가 잘 되어있지만 가게도 없었던 우리 동네는 '대호 아저씨'라는 만물상 아저씨가 '없는 게 없는' 1톤 트럭을 앞세우며 우리 면을 돌았다. 매일 오전 9시쯤 동네로 들어왔는데 대호 아저씨 목소리가 먼 도로에서부터 스피커를 타고 흐르면 내복을 입은 채로 잠바 하나 걸치고 나갔다.
10살 때부터 밥 정도는 동생들 차려 줄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은 갖췄다. 어깨너머로 배운 것도 있고 김밥 정도는 완벽하지 않아도 일단 넣고 말면 되니까 나름 쉬운 편이었다. 김 하나 펼쳐 넣고 맨밥을 듬뿍 넣어 주걱으로 살살 폈다. 단촛물을 하지 않은 맨밥이라 잘 펴지진 않았지만 그 위에 큰 단무지 하나, 긴 분홍 소시지 하나, 살짝 볶은 오뎅 하나 넣고 오이는 수분도 안 빼고 그냥 넣었다. 그때는 절이는 걸 어떻게 하는지 몰랐기도 했고 금방 먹을 거니까 그냥 말았다. 별 것 없는 단출한 김밥이었지만 동생들이랑 나눠먹고 도시락도 싸서 엄마, 아빠한테 가져다 드리면 예민한 공기가 흐르던 비닐하우스에도 금방 웃음꽃이 폈다. 그 모습이 좋아 어느 겨울에는 자주 김밥을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는 슈퍼우먼이었다. 고된 농사일을 하면서도 먹성 좋은 우리 삼 남매의 끼니를 챙기는 게 보통 힘든 일은 아니었을 텐데 부족함 없이 먹여 키웠다. 엄마는 외할머니를 닮아 손맛이 참 좋았다. 운동회를 하면 우리 엄마표 도시락이 제일 크고 양도 많고 맛있었다. 난 그래서 봄, 가을 운동회가 제일 기다려졌다. 엄마의 김밥은 고슬고슬하게 지어진 밥 위에 소고기와 당근이 들어간 요즘 스타일의 김밥이었다. 달큼한 시금치와 계란도 들어가 먹기가 아까울 정도로 예뻤고 김밥을 말을 때도 태극무늬 기술이 들어가 모양마저 훌륭했다. 우리 엄마 김밥은 금세 동났다. 그때, 내가 괜히 뿌듯했다.
부모님은 시골집에 계시지만 삼 남매는 경기도로, 대전으로, 경주로 흩어져서 산다. 일 년에 일정을 조율해서 밥 한 끼 먹는 게 큰 일처럼 되었다. 어렸을 땐 당연했던 일들이 커 가면서 더 이상 당연하지 않았다. 당연하게 다 같이 아침밥을 먹고 다 같이 웃고 울고 하는 하루를 보낼 줄 알았다. 복작복작거리던 자식들은 커서 부모의 품을 떠났고 삼 남매는 산다는 핑계로 부모를 찾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어렸을 땐 당연했던 일상들이 이제는 간절히 바래야 이뤄질 수 있는 것이 되었다. 해야 할 일을 잊고 산 건 아닌지 오늘 저녁으로 먹은 김밥을 보며 엄마 생각이 났다. 우리 가족이 바라는 소소한 일상을 당연한 일들처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워졌다.
석가모니 태어났다던 전날 밤, 엄마가 태어났다. 엄마는 어쩜 부처보다 더 위대할지도 모른다. 오는 초팔일 전날, 다 같이 모이면 김밥 싸 먹어야겠다.
[김밥]
김 위에 밥을 펴 놓고 여러 가지 반찬으로 소를 박아 둘둘 말아 싸서 썰어 먹는 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