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 출처 : pinterest >
어느 웹사이트에서 '기쁨을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약점이 된다. '라는 글을 보았다.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는 글을 인터넷 밈(Internet Meme)으로 해석했을 것이다. 그 글을 보고 순간 격한 공감이 되었다.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치원에 다니는 조카는 "맛있는 건 나눠먹어야지" 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하리보 젤리를 선뜻 나에게 나눠준다.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엄마랑 아빠랑,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삼촌 다 같이 여행 갈 거야. 다 같이 가야 재밌지."라고 하며 다가오지도 않은 기쁨을 벌써부터 나눠준다. 얼마나 기특한지 아이의 순수한 마음은 찌든 나의 마음을 맑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아이의 마음을 비틀어 듣는 경우는 없을 텐데 어쩌다 우리는 순수한 의도를 한 번 비틀어 보게 되었을까. 언제부터.
눈에 보이는 데로만 믿고 살아가면 참 단순할 텐데 그렇지 않으니 말하는 이의 진심이 닿을 리 없다. 관계가 더 나아갈 리도 없고 우드 블록을 하나 빼면 위태해지고 마는 젠가가 되고 만다. 어쩌면 관계가 단단하지 못하기 때문에 진심으로 축하할 수도 없고 마음을 다해 위로해 줄 수도 없는 게 아닐까. 나누는 마음의 밀도가 높은 사이라면 뭐든 다 주어도 아깝지 않고 곁을 내어주는 게 쉬울 텐데 말이다. 내리사랑은 대가가 없지만 의도가 있는 사랑은 언제나 의심받고 만다. 정말이지 순수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는 게 제일 힘들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그들이 말하는 '우리'라는 울타리에 들어가지 못하면 일단 의심을 하고 본다.
"고향이 어디예요?"
"어느 학교 나왔어요?"
"어디 살아요.?"
"결혼은 했어요?"
"부모님은 뭐하셔?"
...
아무렇지 않게 던져지는 수많은 호구 조사 속에서 이미 선은 그어진다.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을 때 이방인이 되고 만다. 그들이 그어놓은 선 안에 들어가지 못한 나는 모든 게 낯설게만 느껴진다. 잘해 왔던 일상도 스스로 의심하게 되고 경계하게 된다. 그렇게 관계가 흘러가다 보니 진심을 보이고 나누는 게 힘든 일이 되었다.
기쁨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 슬픔을 나눌 수 있다는 것,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건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는 것과 같다. 좋은 향기를 뿜어내는 꽃에는 나비가 찾아든다. 마음을 얻는 건 이와 같아서 내가 먼저 마음을 열어 편견 없는 진심을 갖고 볼 일이다.
[편견]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