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집사가된다는 것

이곳은팜교입니다.

by 도토리





마당 냥이를 돌보는 사람들이 있듯이 나에게는 마당 식물이 있다. 아니면 반려식물이라고 해야할지도.

애석하게도 집은 아니고 회사 마당이지만, 그리고 더 정확하게는 마당이라기보다 화단이라는 게 맞는 표현일거다.



지난 겨울 회사는 이사를 했다. 판교역 근교의 자연과 도시의 경계에 있는 곳으로. 비워져있었던 건물이라

화단은 정리가 되어있지 않았다. 원래 정원이었던 곳을 보도블록을 깔아 주차장으로 만드는 공사를 막 끝낸터라 더욱 엉망이었다. 그 겨울에 나는 지저분한 화단의 흙을 정리했다. 인테리어 진행을 담당했고 자주 공사중인 현장에 다녔는데, 나는 여기 흙을 갈아엎고 농사를 짓겠노라 선언했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 말이다. 정말 할거냐며 괜한 일만들지 말라던 대표님은 나중엔 마음대로 하라 하셨다. 아니 심지어 나무와 모종을 가장 많이 갖다 심은 분이 되었다.

그리고 봄이 되어 식목일을 끼고 있는 볕좋은 그 달에는 각종 모종을 데려다 심었다.



처음엔 수박과 오이 그리고 사과나무를 심었는데, 사과는 두 종류로 홍옥과 부사를 한 그루씩 심었다.

쿠퍼티노의 애플 사옥은 못돼도 애플이 있는 사옥을 만들고 싶... 은 마음이랄까?

빠알갛게 익은 사과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일로 받은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또 올리브와 레몬나무도 있는데, 얘네들은 각각 화분에 심어두었다. 비주얼도 훌륭하거니와 올리브와 레몬이라는 작물의 특성과 어울리는 이태리 토분으로 골라서 심기위해서. 왜냐하면 올리브와 레몬나무는 유~럽 스타일을 감상하고 싶어서 선택한 작물이므로. 이국적인 매력이 가득해서 예전 유럽에 갔을 때 봤던 싱싱한 올리브나무를 떠올리며, 떠나지 못하는 이 상황을 슬피 여기며 여기가 바로 남부 이탈리아다~ 여기가 포지타노다~ 하고 상상하는 시간을 가진다.

가을이 오고 열매 수확 시즌이 될 즈음에는 꼭 회사 카페의 바 테이블에서 마티니를 만들어 마실거니까.





사과, 올리브 그리고 반려수박..❤




봄부터는 온갖 곤충들이 마당에 등장했고, 사과나무에 생기는 진딧물을 잡기 위해 천연 살충제라는 막걸리를 부지런히 뿌리고 비료를 주었다.(당연히 다른분이..) 유기농으로 키우고 싶은 우리의 소망때문에 누군가는 점점 부지런해질 수 밖에 없었다.

나의 아침 출근 후 루틴은 자리에 가방을 두고 커피를 내린 뒤 마당에 나와 작물 투어를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다행히 노동의 경우 나보다 적극적인 분이 더 많이 하시기 때문에, 나는 주로 관상을 하는 쪽이다. 그래서 나는 일과중의 휴식시간에도 작물을 돌면서 말을 걸곤 한다.

' 야.. 수박 너 또 컸네?' '우리 올리브 귀여워.' '우와-오이 또 열렸니?' 이러다 혼자 웃기도 하는데 만약 다른 사람이 본다면 쟤 왜 저래 이럴 수도 있을지도.. 요즘 느끼는 건데 어쩌면 'ㄸㄹㅇ 질량 보존의 법칙'을 우리 회사에 적용한다면 그게 나겠구나.. 싶다. 인정한다.


오이가 자라는 걸 보면 정말 귀엽습니다.

시간은 늘 빠르고, 어느새 여름이 되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가장 먼저 반려 수박의 크기를 확인한다. 엄지손톱만 하던 수박은 손가락 두마디를 합친 것만 하더니 어느새 주먹보다 커져서 볼 때마다 너무 대견하다.

그리고 요즘에는 제법 수확의 기쁨을 주는 작물이 있는데, 그 주인공은 바로 오이.

오이는 벌써 몇 개나 수확하고, 피클을 만들어서 함께 먹기도 했다.

그러고도 또 자라고 자라서 오이는 대나무를 감고 위로 위로 올라가는 중인데 지금은 그 끝에 손이 닿지 않을 정도다. 마치 재크와 콩나무의 콩나무처럼 하늘에 닿을 것처럼 쑥쑥 자라고 있다.

도토리와 오이 나무라고 해야 할까..? :P










각각 스토리가 있는 해바라기, 호박, 수박 새싹




사진 속 해바라기는 에피소드가 있다.

흙에 어떤 씨앗이든 던져두면 싹이 난다는 이론을 직접 경험하게 한 게 다름아닌 이 해바라기였다. 이른 봄에 새모이용으로 구입해 화단에 뿌려둔 (아래링크) 해바라기에서 싹이 났고, 그 자리는 이제 해바라기 밭이 되었다. 자꾸자꾸 싹이 쏙쏙 올라오더니, 쑤욱 자라서 지금은 내 목 높이까지 자랐고, 꽃망울이 맺힌 상태가 되었다. 7월말쯤에는 개화하지 않을까 기대하며, 판교 해바라기밭 명소가 되겠다고.. 혼자 선언을 한 상태. ㅋㅋ 새 모이용으로 팔려왔던 해바라기가 뜻밖에 화단에서 해바라기밭으로 완성되는 스토리랄까. 새모이용 씨앗이라고 정해진대로 살 필요는 없나보다. 운명 무엇!






또 그런 해바라기 씨앗들 사이에 엑스맨처럼 숨어있다 나타난 아이가 사진 속 호박이다.

왜 얘만 싹 모양이 다른가~ 했는데 자라면서 보니 호박이라서, 마치 미운오리새끼에 나오는 미운오리 같아서 짠하고 애착이 간다. 아니 사실은 모두 사연이 있다. 결국 하나하나 애착이 가는 식물들이다.

호박도 요즘 수박에 질세라 덩굴을 길게 늘어뜨리고 꽃을 피웠는데, 이제 벌들이 열일을 해서 호박을 열리게 해줘야 할 텐데 장마가 와버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리고 가장 인기인 수박은 가장 오른쪽은 마트에서 사 온 수박을 먹은 뒤 그 씨앗을 땅에 묻은 건데, 벌써 사진만큼 자라났다. 모종을 사다 심은 수박처럼 쑤욱 크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엄청 대견한 아이.

만약 날이 추워질때까지 크지 못하면 내가 하우스라도 쳐줄거야.

맨날 싹의 생장 상태를 확인하는데 절로 혼잣말을 한다. 아. 귀엽잖아.. 라고.


그리고 요즘 손꼽아 기다리는 새싹이 있는데, 그건 바로 자두다.

자두를 먹고 씨방을 열어서 씨앗을 사과나무 아래에 심어두었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

이 여름이 가기 전에 자두 새싹을 꼭 보고싶다.



사실 학교다닐 때 사실 생물 과목을 별로 좋아하진 않았었다. 생물 교과서 속 삽화도 사진도 좀 징그러운 것 같고. 꽃을 아주 근접해서 그리기로 유명한 화가 '조지아 오키프'의 작품을 좋아하지만 무섭기도 했던게, 자연이 만들어낸 겹과 곡선이 주는 뭔가 의미심장한 파워가 있어서였다.

그런데 식물을 직접 키우다 보니까 얘네들 자라는 모습이 너무나 귀엽다. 그 생명력이 놀랍기도 하고 경외스럽다고 해야할까? 이런 기분을 다른 어떤 단어로 대체해야 할까?

야외활동을 맘껏 못해서인지.. 매일 컴퓨터 앞에서 하는 일이 지친 건지.. 번아웃 때문인지 헷갈리지만, 적어도 심심한 요즘의 삶에서 가장 생생한 일들인 것만은 확실하다.



혹시 일상이 우울하거나 반복되는 삶이 지겨우시다면 식물을.

그중에서도 열매가 열리는 식물을.

꼭 식물을 키워보시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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