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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Oct 1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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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이 제법인듯 #7



홍당무처럼 붉어진 얼굴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여자는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모자를 내려쓰며 지나갈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서정적인 BGM을 플레이하던 핸드폰을 떨어뜨린 줄도 모른 채 어서 이 상황이 종료되기만을 간절히 바랬다.




옆으로 지나 편의점으로 들어가는 그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모자와 이마가 사이좋게 충격을 나누었음에도 머리에 종이 울리듯 깊이 전해진 고통이 사고를 마비시켰다. 역시 늘 창피함이 먼저다. 그리고 아파. 오늘 어쩐지 되는 일이 별로 없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시작은 좋았는데...

그제서야 정신도 들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아픈데 어쩜 괜찮냐는 말 한마디 없이 지나간담? 생각해보니 너무하네..에이씨..  

아니다. 차라리 말을 걸어오지 않는 편이 좋다. 뭐라고 해. 아프다고? 아냐아냐. 여자는 마치 연극이라도 하듯 홀로 내적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러다 왜 기분이 찜찜한 지 떠올랐다. 아까 그 사람이 지나갈 때 어렴풋이 코웃음처럼 들리는 바람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풋, 뭐 이런 비슷한 소리였는데...아니겠지.

거기까지 생각하고 여자는 왠지 억울하고 조금 화도 났지만 모자를 잘 고쳐쓴 뒤 '당기시오'라고 적힌 손잡이를 조심스럽게 당겨열고 편의점으로 걸어 들어갔다. 당당하게 작은걸음으로.



"어서오세요."



앞선 상황을 모르는(혹은 알아도 관심이 없을 것만 같은) 편의점 아르바이트 남학생이 조금 심드렁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오늘따라 누구도 친절하게 굴지 않는구만이라고 잠깐 생각하며 곧바로 술이 들어있는 냉장고 쪽으로 향했다. 맥주를 사야겠다. 부드러운 거품이 가득한 맥주를 벌컥벌컥 마셔서 거품으로 망신스러운 기억을 말끔히 씻어내버리겠다. 오늘은 그 맥주를 전리품으로 취해야겠어. 보드카 토닉과 가을밤의 정취는 이마의 충격과 동시에 기억상실증 환자처럼 말끔히 지워진 것 같았다. 언제 고민같은 걸 했었냐는 듯 짧은 시간동안 그걸 꼭 가져야겠다고 다짐까지하면서.


라면 진열대 코너를 돌아 술냉장고 쪽으로 향했다. 돌아보니 술냉장고 앞에 아까 그 사람이 서있는 뒷모습이 보였다.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편의점에는 그 사람과와 나 그리고 알바 뿐이었으니 아마 맞을거다. 그 사람은 뭔가 깊은 고민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그러거나말거나 여자는 목표로 삼은 맥주가 냉장고에 얌전히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에 몸이 저절로 냉장고로 향할 뿐이었다. 오...드디어 너란 맥주를 만나는 구나. 그렇게 구하기 힘들더니 오늘은 그정도는 가질 수 있지 내가. 여자는 냉장고 손잡이를 열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눈앞에서 맥주가 사라졌다.








{미지근한 매거진}에서 연재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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